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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울타리

충격 보고(!) 그녀의 인간관계

M.미카엘라 2006. 5. 22. 11:47
 

 1999년 10월에 컴퓨터를 처음 사서 전화모뎀으로 더듬더듬 인터넷을 쓰고 있을 때 중학교 은사이신 미루 선생님의 달콤한 권고에 취해 지금 이 딸들의 성장일기는 시작되었다. 실시간까지는 아니라도 그래도 꽤 라이브하게 6년을 넘게 중계해온 시간을 돌아보면, 내가 이 일기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자식을 키웠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큰 차이가 있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일기를 썼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을 일도 생각하게 되었고, 건성으로 넘어갈 일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다섯 번 화내며 소리칠 일도 두어 번으로 자제할 수 있는 힘도 얻었다. 기쁠 때는 함께 기뻐해주시고, 슬픈 일에는 함께 슬퍼해주시고, 웃긴 일에는 폭소를 참지 않으셨던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은 딸들의 성장일기를 이만큼 이어올 수 있는 대단히 큰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배터리와 같았다. (하하~ 쓰다보니 무슨 고별인사 같은 분위기가 나는데 그건 아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아무래도 좋은 일, 기쁜 일, 우리 아이 예쁘다고 칭찬해주실 일을 주로 쓰게 된다. 좋지 않은 일, 야단칠 일도 간혹 쓰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독자가 될 내 딸들에게 아름답고 좋은 추억들이 많은 어린시절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 평소 심각하게 팥쥐엄마 같은 내 모습이나 못 말리는 짱구 같은 아이들의 모습은 자제해온 면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팥쥐엄마 이전에 나 역시 지구상 수많은 곳에 분포해있는 고슴도치 엄마라, 미운 짓 가운데서도 예쁜 짓이 은근히 배어나는 모습을 주로 담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난 주 솜손네 학교도서실로 봉사하러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 봉사하러 온 학부모들은 아이들 틈에서 같이 급식으로 점심식사를 하는데 나도 사서선생님이 먼저 식사하고 오신 후 급식실로 가게 되었다. 마침 소은이네 반 아이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줄 앞부분에 서있던 소은이는 그 짱짱한 목소리로 나를 보고 반갑게 알은 체를 했고, 나는 반 아이들 줄의 뒤쪽으로 가서 한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앞에 섰다. 그리고 누구인지 궁금한 눈길을 보내는 몇몇 아이들에게 내가 소은이 엄마라고 정식으로 인사했다.

 

 그런데 그 다음 즉각 터져 나온 두세 명의 아이들의 공통된 반응에 나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은이는 잘난 척 쟁이예요.”

 “소은이 잘난 척 되게 해요~”

 나는 순간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으응…, 그러…니?’하고만 어렵사리 겨우 대답하고 식판에 밥을 타는데 그때 이미 입맛이 다 달아난 상태였다.

 

 4월 초에 학교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방과 후 혼자 교실에 계신 담임선생님을 뵈었을 때, 선생님은 소은이를 자기 할 일 똑 부러지게 잘 하고 책임감도 강해서 소은이에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뭘 맡겨놓아도 안심이 될 정도로 교사에게는 더없이 좋은 학생이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양보하고 협조하는 마음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고 하셨었다.

 

 내가 익히 우리 소은이를 아는 바, 선생님의 그러한 지적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머리를 조아리고 가정에서도 많이 지도하겠다고 하고 돌아왔다. 내가 소은이를 잘 알고 선생님도 조금 우려 섞인 목소리를 하셨지만 그래도 그간은 내내 자잘한 잽만 맞은 폭이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입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되는 냉혹한 평가는 나를 휘청하게 하는 강펀치가 되기에 충분했다.

 

 소은이가 평소 입에 자주 이름을 올리는 친구인 채원이와 예인이 앞에서 밥을 먹으면서 나는 두 아이에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얘들아, 소은이가 그렇게 보기 싫게 잘난 척하니?”

 예인이는 잘 모르겠다고 하고 채원이는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라고 예쁘게도 대답한다.

 “근데요 소은이 아줌마, 소은이는요 남자친구들이 소은이한테 뭐라고 막 그러면 나쁜 말도 막 해요.”

 잘 모르겠다던 예인이가 한마디 했다.

 “나쁜 말? 어떤 말인데?”

 “‘너 죽을래?’ 이런 말이요.”

 아이들이 왜 거친 말이나 욕설을 듣지 않겠는가.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욕이 안 섞이면 말이 안 되는 아이들이 많다던데…. 그런데도 소미는 욕이나 나쁜 소리를 거의 안 한다. 자기도 듣고 많이 알지만 안 한다는 것이 소미 말이다. 소미가 욕설이나 나쁜 소리를 듣고도 쓰지 않고 소각용 쓰레기봉투에 담아 용도 폐기한다면, 소은이는 잠시 분리수거했다가 그대로 재활용한다.

 

 나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저쪽에서 식사를 다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참외 한쪽을 거의 다 드신 듯한 선생님께 다가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들은 소리 때문에 놀라웠다며 선생님께 자리는 적당치 않았지만 짧은 시간 상담을 청하니 자리에 앉으라고 하신다. 이후 선생님을 통해서 들은 소은이의 학교생활은 놀라운 일이 더 남아있었다. 선생님의 표현에 거의 의지한 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현재 반에서 가장 기질이 강한 아이. 목소리도 큰데다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반면 뜻을 굽힐 줄 몰라서 친구들 사이에서 트러블이 많은 아이. 자기가 하기 싫거나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는 선생님의 심부름도 하기 싫다고 말하는 아이(선생님은 ‘약다’고 표현하셨다).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다하는 아이. 친구들을 돕거나 배려하는 것이 부족하고 손해 보려고 하지 않은 아이. 팀워크를 이루어야 할 모둠활동 때도 판을 깨는 아이, 친구들을 휘어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상처 줄 수 있는 아이. 결론적으로 고학년이 되면 집단따돌림을 당할 소지가 있는 아이.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자기 고집대로 하려고 해서 나와 입씨름을 하기는 해도, 어떤 1학년짜리가 선생님의 심부름을 ‘지금 하기 싫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기가 막히고 가슴이 답답했다. 편지나 일기 같은 글 쓰는 것 보고 제법이라고, 귀엽다고, 기특하다고 키득대며 보낸 요즘 시간들이 너무나 안일하게 느껴졌다. 적당한 자기주장도 필요한 거라면서 내심 그래도 밖에서는 남의 마음 헤아리고 눈치 있게 행동하여 괜찮겠거니 했는데 이젠 그것도 아니구나 싶었다.

 

 저녁 식사 후 소은이가 “엄마, 아까 낮에 우리 선생님이랑 무슨 이야기 그렇게 오래 했어?”하고 물었다. 나는 그냥 “이런저런 얘기, 소은이 얘기도 조금 했어” 했다. 무슨 이야기냐고 묻는데 나는 그대로 신랄하게도 말할 수가 없었고, 적당히 훈계조로 뭉뚱그려서 말하고 싶지도 않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심란한 마음도 달랠 겸 소은이 속마음도 볼 겸 두 아이에게 슬쩍 재미있는 거 하자고 말을 돌렸다. 즉석에서 순발력을 발휘해 만든 결론 없는 무규칙 심리테스트다.

 

 “엄마가 하는 말에 ‘정말 그렇다. 대체로 그렇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하면 고개를 위아래로 끄떡끄덕 해. 그리고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고개를 좌우로 살래살래 흔들어. 그리고 ‘잘 모르겠다, 그럭저럭 보통이다’라고 생각하면 눈을 크게 말똥말똥하고 입술만 병아리처럼 쪽 내밀어. 알았지? 이거 너네가 좋아하는 심리테스트야.”

 두 아이의 호기심에 잔뜩 빛나고 나는 몇 가지 문항을 만들어 물어보았다.

 

 1.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 말을 잘 듣는 사람이기보다 내가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다.

 2. 나는 내 생각을 친구들이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무진장 화가 난다

 3. 그래도 우리 반 친구 중 반 이상은 나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할 것이다.

 4. 나는 친구들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5. 나는 내가 하기 싫은 일도 친구가 원하면 잘 해준다.


이런 식의 문항을 한 열 개 정도 만들었는데 지금 다 기억나지는 않는다. 소미는 대략 자신을 잘 아는 편이었고, 소은이는 ‘이건 잘못된 행동이지만 내가 잘 알고 있다’는 듯 겸연쩍은 표정일 때도 있었지만 어떤 부분에선 완전히 자기 생각만으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결론 없이 그냥 ‘얘들아, 이런 거 재미있지?’하고 웃기만 하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날은 더욱 앞으로 소은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만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며칠간 나는 이 문제를 블로그에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오래 생각했다. 문제를 가진 아이 뒤에 거의 문제 부모가 있다는데, 나를 제대로 돌아다볼 겨를 없이 이 문제가 내 양육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부끄러움만이 썰물처럼 밀려와 내 몸을 적셨다. 또 그동안 은폐했던 내 치부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니… 그래도 자식 기르는데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나는 또 여러분들의 지혜도 빌려야겠기에 마음이 어지러웠던 지난주를 가감 없이 정리해보았다. 오버도 아니고 엄살도 아니다.

 

 지난 해 소은이를 생각하며 샀던 책. <내가 도와줄게-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법>한동안 밀쳐두었던 이 책이 다시 제 힘을 발휘해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천천히 읽어주어야겠다. 소은이에게는 선생님과 했던 이야기 하나하나 전하지 않은 게 잘한 일이란 생각은 든다. 엄마가 나를 교화하기 위해 오늘 이 책을 골랐구나 하는 느낌을 갖고 하는 아이의 책읽기가 싫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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