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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원

우리는 최전방으로 간다

M.미카엘라 2001. 12. 8. 08:48
남편의 전출 명령이 났다. 우리 가족은 이제 한 달 후면 철원으로 간다. 오늘은 그래도 좀 났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도 기가 막히게 예상을 벗어난 지역이라 우리는 한참 황망하고 속이 상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아기 낳는 일과 군인들의 진급이라지만, 이제 아기는 초음파의 발달로 임신 초기부터 환히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군인의 진급과 거기에 하나 더 보태어 군인들의 전출지야말로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우리는 강원도 인제군 원통에서 살다가 98년 6월 26일 지금의 이천으로 왔다. 소미의 돌을 한 달 남겨두고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커다란 옷상자 하나 풀어 그 안에 먹을 것을 주어 놀게 한 후 살림을 정리했다. 이제 소은이까지 낳아 이만큼 키울 정도로 살았으니 참 여기서 오래도 살았구나 싶다. 남편은 이제 어딜 가도 여기서처럼 오래 사는 일은 없을 거라 했다.

그런데 또다시 강원도 철원이라……. 철원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지만 군은 경기 북부 정도로 인식한다는 말도 들렸다. 원통에서 산 시간은 소중했다. 원통으로 가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이렇게 지금처럼 심란하지도 않았다. 설악산과 동해를 가까이 두고 산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히 가슴 벅차고 흥분되는 일이었으니까.

사실 사람이 어디 가서 산들 못 살 까닭은 그다지 많지 않다. 시골이라서? 오지라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없어서? 대형 쇼핑센터가 없어서? 아이들 교육 때문에?… 쿠쿡! 다 우스운 변명이다. 다 살아지게 마련이란 걸 나도 잘 안다. 정붙이고 추억 쌓으며 그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 수 있으리란 것도 안다. 철원 아니라 그 어떤 다른 곳으로 결정이 났다 해도 이사를 앞둔 이의 심정은 적응할 때까지는 심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연말, 그것도 겨울의 한가운데서 최전방 가장 추운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할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다. 10월부터 오리털 파카를 입고 다닌다, 문밖으로 아이들 데리고 나올 생각은 말아야 한다, 봄, 가을이 실종된 동네다. 겨울옷도 다 못 벗었다 싶은데 어느새 여름이 온다 등등, 철원지역의 겨울날씨에 대한 구설은 분분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얼마 전 코트를 사지 말고 무스탕을 살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그건 정말 따뜻하던데.

난 다른 건 아낄 수 있어도 정말 기름값 아끼기가 죽기보다 어려운 사람이다. 추위를 너무 타서 겨울의 낭만을 말할 여유가 마음속에 없는 난데, 거기 작은 군인 아파트에서 두 아이와 온전히 하루를 보내며 겨울을 나야 할 일이 아마득하다. 이곳에 이사왔을 땐 초여름이라 사람 사귀기도 쉬웠고 활동하기도 더없이 좋았는데.

기관지가 너무 약해 지금도 기침을 하는 소미는 그래도 빨리 이사가고 싶다고 한다. 변화를 느끼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 넌 군인의 딸이구나 싶은 생각에 그래도 이사 절대로 안 가고 싶다고 징징대는 것보다는 낫다 싶었다.

이웃들은 처음엔 아이구, 어쩜 좋아, 하필 왜 철원이야, 이 추운데, 애들하고 어찌 살꼬, 참 꼭대기로도 올라가네, 하면서 함께 심란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건 그들이 먼저다. 이웃들은 추운 겨울날씨만 빼고는 거기서 살아서 좋은 점을 일일이 늘어놓으며 위로했다. 하긴 어쩔 것인가. 군인이 가라는 곳으로 가는 수밖에. 내가 마음을 달리 고쳐먹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

그래, 아이들은 어릴수록 자연 속에서 자라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내가 시골 태생인 게 자랑일 것은 없지만 내 정서는 늘 어릴 때 자라던 친정동네에 자주 머물러 나를 지배하고 있다. 내가 아스팔트 키드였다면 나는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내면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논둑길, 가지밭, 미군 비행장, 시냇물, 찢어진 산봉우리, 개암나무와 산딸기, 보리수와 삭정이 나무단, 빨강 엑슬란 내복을 입고 뛰어다니던 뒷산으로 이어지는 끊일 줄 모르는 기억의 편린은 내 정서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나를 받쳐주고 있음을 자주 느낀다.

그래, 친정도 조금 가까워지지 않았느냐. 나의 친정은 그리 평화롭고 편하지는 않지만 이제 그리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자주 들게 하는 엄마가 계신다. 돌아가신 후 마음의 한을 남기지 않으려면 그래도 그 정도 가까이 살면서 엄마에게 드릴 수 있는 건 다 드리자. 난 더구나 국가고시를 합격한 몸 아니더냐, 운전면허를 땄으니 엄마를 모시고 온천도 다니고 맛있다고 소문난 집으로 모시기도 하자.

그래, 내겐 또 역마살이 있다. 여기 저기 쏘다니길 좋아하는 내가 이 철원지역을 소홀히 했으니 가본 적이 두어 번 될까. 거긴 분단의 아픔을 생생히 볼 수 있는 안보유적지도 많지만 도피안사나 충렬사지, 성제산성 같은 문화유적지도 있다. 또 순담계곡이나 고석정, 삼부연폭포, 직탕폭포 같은 빼어난 자연환경도 있다. 다 돌아보자. 샅샅이 구경하자. 그리고 래프팅의 명소로 이름이 높은 곳이니 여름엔 래프팅도 하고 더 젊게 즐겁게 살아보지 뭐.

후후, 이 정도 생각하고 나니 좀 그럴싸해 보인다. 용기가 났다고나 해야 할까. 남편은 남편대로 의외의 전출지에 한참 황망해하면서도 소미에게 스케이트 태워주겠다, 눈썰매 태워주겠다, 고드름 가지고 놀게 해주겠다, 아빠랑 눈 많이 오면 산에서 비료부대 타고 내려오자 해가면서 시린 속을 달랬다. 야전으로 나가야 평정도 좋아지고 많은 일을 배울 수 있으니 오히려 긴 군생활을 생각하면 잘 되었다. 난 야전체질인 것 같다, 인사장교가 무슨 깊은 뜻을 두고 날 그리로 보낸 것 같다 하면서 스스로 위로하는 게 역력했다.

한 달 후면 우리는 간다. '우리는 제네바로 간다(영화제목에 이런 게 있었지 아마!)'가 아니라 '우리는 최전방으로 간다.' 분단국가가 아니었으면 그저 평범한 중부지방이었을 철원 땅으로 간다. 생각해보니 참 그 곳은 궁예가 수도로 삼고 싶어했던 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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