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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

알밤 줍기

M.미카엘라 2004. 10. 4. 16:21
 

 재미가 ‘났다.’ 재미가 ‘있다’가 아니라 새록새록 ‘나는’ 거였다.

 명절 연휴 때 친정 가는 길을 아예 포기한 지 오래라 서운한 것도 없는데, 연휴 끝나자마자 30일 저녁에 친정에 갔다. 다음날이 군국의 날(남편은 휴무일이다)인데다가 소미네 학교가 추석을 끼고 지난 주 내내 쉬는 바람에 소은이만 유치원을 하루 쉬고 가는 마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친정 가까이 사는 큰언니네 집에 밤나무가 여러 그루다. 너무 잘 된 게 마침 맞게 1일 날 오전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서 탐스럽게 벌어진 아람 들이 후두둑 모두 떨어져 진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출발하기 전 언니에게 밤 주우러 가겠다고 해놓은 상태였는데, 아주 주워 담기만 하면 되었으니 그것처럼 수지맞은 일도 없다.

 큰언닌 소미, 소은이 줍는 재미 느끼라고 밤나무 주변에 불편한 것을 치우고 있었다.

 “현주는 저쪽 나무 것 주워갔는데 저건 좀 잘았어. 근데 이건 참 좋다 밤이. 너네 식구가 운 좋다.”

 소미 소은이는 신이 나서 소리 소리를 지르며 주워 담고, 축축한 땅에서 나온 지렁이들을 호들갑 떨며 야단스럽게 보고 난리였다. 나도 굵은 지렁이가 좀 징그러워서 한마디 했다.

 “으~ 진짜 크다. 징그러워!”

 소미가 그랬다.

 “그래두, 이거 지렁이가 있는 땅은 좋은 땅이란 뜻이잖아요.”

 “아이구, 우리 소미가 그런 것두 다 아네. 그래. 좋은 땅이야.”

 큰언니가 놀랍다는 투로 칭찬이다.

 “현주 니네 집에 자주 오니?”

 “아니, 별로. 전화로 다 하는 편이야.”

 “현주 너무 작은 밤 가져가서 좀 그렇다야. 가서 좀 나눠 줘. 삶아서 사무실 가져간다고 하던데.”

 히, 대답 안 했다. 늦어서 의정부 가다가 들를 계획도 없고 밤 때문에 현주언니가 우리 집에 오진 않을 거였다. 못 나눠먹을 게 분명하니…… 어쩔 수 없이 수지맞는다. 크크.

 밤 줍는 재미가 참 쏠쏠한 거 처음 느꼈다. 큼직한 대야 같은 곳에 두 그릇이나 주웠으니 얼마나 신이 난지 몰랐다. 그래서 재미가 ‘있다’는 말보다 재미가 ‘난다’는 말이 내 기분을 표현하는데 더 가깝다. 밤이며 도토리를 잔뜩 물어다가 파묻어 놓고 낙엽으로 슬쩍 덮어놓은 채 겨울을 느긋하게 기다리는 다람쥐가 된 기분이다. 삶은 밤 좋아하는 소미, 생밤 좋아하는 소은이 겨우내 일용할 간식이다. 그런데 남 퍼주기 좋아하는 나 때문에 겨울 문턱까지나 갈까 모르겠다.

 언니네 밤나무 덕분에 나도 가을에 발이 빠져 무릎쯤 물들었다는 느낌이다. 하늘이 참 파랗다.

 

알밤줍기, 아람

 

알밤줍기, 소은이

 

알밤줍기, 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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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밤줍기, 이모네토끼장

 

알밤줍기,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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