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시애틀에서 오신 손님 본문
8월 말, 한 통의 이메일은 나를 충분히 놀랍고 설레게 만들었다. 미국 시애틀에 사는 독자라고 밝히셨는데 우리나라에 오시게 되었다며 소미, 소은이에게 작은 선물을 전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자세히 보니 비교적 최근 몇 번 여기서 꼬리말을 올려주신 ‘jj’님이셨다. 메일에선 ‘조약돌’이라는 닉네임으로 당신을 소개하셨다.
이 분은 나와 메일로나 뭐로나 개인적으로 교류가 전혀 없던 분이다. 그러나 그 먼 데서 소미, 소은이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하셨다니, 나로서는 약속장소인 영등포역 부근이 아니라 그 어디라도 두 아이 데리고 갈 참이었다. 내가 번거로우면 택배로 보내주시겠다 하셨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꼭 감사인사를 드리며 받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9월 1일에 만났다. 아! 참 얼마나 고운 분인지 몰랐다. 유난히 잡티 하나 없으신 하얀 피부도 돋보였지만, 이민 생활 30여년이 다 되어가고 직장생활 25년째라 하시는데 그 풍파와 역경의 흔적은 어느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 시간 조금 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궁금증을 조금 풀 수 있었다. jj님은 친정식구들이 모두 피부를 타고 났다고 하셨지만, 밝고 쾌활하고 따뜻하고 낙천적인 성품과 밖으로 유연하게 열린 마음이 해답이었다.
해마다 고국 발걸음을 하신 지 7년째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교포 가운데 어떤 분들은 “한 해만 한국에 안 가도 이것저것 사고 싶은 거 다 사고 살 수 있겠다”한다는데, 정작 jj님은 영 그런 거엔 관심도 욕심도 없다 하셨다. 이곳을 다녀가는 일에 ‘숨통 트이는 일’ ‘일상 탈출’ 같은 의미를 부여하셨다. 조카들, 친지들 선물을 작은 것으로라도 일일이 다 챙겨서 오시는 일이 너무 즐겁다고 하셨다. 2002년 월드컵 때는 자원봉사까지 하러 오셨다고 하니 그 분의 평소 삶의 자세가 어떠한가를 어렴풋 감 잡을 수 있었다.
“할머니, 피부가 고우세요. 점도 하나 없으시잖아요.”
“소미야. 그런 것도 아니?”
jj님이 소미와 소은이를 손녀처럼 예뻐하시는데 정말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 사진을 제법 가지고 나오셔서 가족을 한 분 한 분 소개해주셨는데, 거기 이제 세 살이 된 아주 귀여운 첫손녀의 사진도 있었다. 보통 할머니들은 당신에게 손녀가 있으면 다른 집 아이들은 잘 눈에 안 들어올 텐데, 정말 소미, 소은이는 복도 많다 생각했다.
“얘가 우리 손녀인데 꼭 소은이처럼 자랄 것 같아요. 말도 잘 하거든. 그리고 여기 이 사람은 우리 영감!”
내가 사진을 보려고 하자, 소은이가 톡 튀어나와 하는 말.
“어디 영감? 나도 보여주세요.”
에구구~ 나는 순간 민망했는데 jj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응, 여기… 할머니 영감. 다은이 할아버지.”
jj님은 내게 기본이 되어있는 아이로 기를 것, 필요할 때 엄격한 건 좋지만 억누르지는 말 것(특히 소은이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 아이는 엄마와 전혀 다른 개인이라는 점을 잊지 말 것 등을 당부하셨다.
“소미야, 소은아, 이리 모여 봐. 할머니가 너희들 주려고 뭘 좀 가져왔거든. 이거 보고 할머니 말 잘 들어. 여기 이 상자에 있는 초콜릿들은 두 개씩인 게 하나도 없거든. 모두 다른 종류로 딱 한 개씩이다. 그러니까 둘이 싸우지 말고 하나씩 뜯어서 반씩 나누어 먹고 어떤 게 맛있었는지 나중에 할머니한테 말해줄래? 그러면 이 다음에 할머니가 한국에 다시 올 때 그걸로 많이 사다줄게.”
이뿐이 아니었다. ‘니모를 찾아서’ DVD와 내게 주시는 커피, 아이들에게 쓰셨다는 편지 석 장까지. 정말 낯설다면 낯선 먼 타국에서 오신 손님께 그냥 감사하단 말밖에 뭐라고 더 드릴 말씀이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가슴 한켠이 내내 뜨거워 식을 줄 몰랐다. 빈손으로 간 것(핑계라면 내가 jj님에 대해 무엇 하나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선물준비가 좀 막막했다)과 디지털 카메라를 안 가져간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아래는 항공사 로고가 선명한 편지지에 jj님이 소미, 소은이에게 비행기 안에서 쓰셨다는 편지다. 조금 늦게 뒷장에 내게 쓰신 편지까지 발견하면서 다시 한번 보너스 같은 즐거움이 마음 안에서 출렁거렸다. 손글씨 편지가 주는 감동은 메일과는 또 다르지 않은가. 이 자리를 빌어서 편지를 공개할 수 있게 허락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2004년 가을 문턱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을 이 조그만 성장일기 안에서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소미 소은.
예쁘고 귀여운 소미, 소은!
내가 누구냐구? 이름이 많은 할머니란다.
엄마,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 천주님께서 주신 베로니카, 미국 친구가 지어준 jj(제이제이), 근배 엄마, 진경 엄마, 이제는 다은이 할머니, 태완이 할머니, 그 외에도 아주 많구나. 또 인터넷의 조약돌.
할머니는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이름이 아주 많다고 생각해. 너희들 생각은 어떠니? 누구 고모, 누구 이모, 누구 외숙모, 누구 숙모, 누구 아줌마… 아휴! 많다! 그렇지?
너희들은 할머니를 모르지만, 할머닌 너희들의 예쁜 얼굴, 똑똑하고 야무진 것도 많이 안단다. 할머니도 예쁜 2살 반짜리 손녀가 있고 이제는 8개월 된 손주가 있단다.
할머닌 지금 비행기 타고 한국에 간단다. 할머니가 미국에 살거든. 왜 먼데 사느냐구? 나도 모르겠어. 처음엔 힘들었단다. 엄마가 보고 싶고 언니가, 동생이 보고 싶어서 많이 울었었지. 이제는 괜찮아. 오래오래 살았더니 이젠 살 만하단다.
지금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 오빠, 언니들이 생일인 분들을 위해 기타치고 풍선 불어주며 축하해주는 잔치를 하고 있구나.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행복하고 즐겁구나. 승무원 오빠에게 농담으로 신분증 봐야만 파티해주냐니까 이 할머니를 위해 특별히 해준다면서, 오클랜드의 두 남녀가 사랑을 했는데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노래를 할머니 옆에서 기타치고 노래 불러주고 케이크도 주어 이 할머니 아주아주 행복했단다. 다른 분들의 생일 노래에도 손뼉 쳐주며 야~야~ 해주었단다.
소미, 소은아!
지금 너희들의 감정 그대로 표현하며 자신을 키우거라. 할 수만 있다면 만나고 싶네. 할머닌 Washington state에 있는 Seattle에 살거든. 엄마, 아빠랑 지도에서 한번 찾아봐. 나무가 많은 곳이야. 그래서 늘 푸르다 하여 Evergreen인 곳이라고 한단다.
엄마의 일기를 통하여 너희들을 보면서 할머니도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었었어. 할머니는 멀리서도 소미, 소은이 커가는 모습을 볼 거야. 글 잘 쓰고 예쁜 엄마, 씩씩한 군인인 아빠, 나라를 굳게 지키는 아빠가 계신 우리 예쁜이들 행복하거라. 멀리에서 귀여운 너희들을 보며 행복한 웃음을 웃는 할머니가. 안녕~ 베로니카 할머니가.
양재형씨!
떠나오면서 이메일 봤더니 답이 없더군요. 이해해요. 허지만 사랑이 많은, 아니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천주교인이더군요. 그래서 더 반가웠고. 난 베로니카, 아들은 빈첸시오, 며느린 모니카, 손녀는 니콜라, 손주도 유아영세 시킨다고 하네요. 영감은 아니라우. 딸도.
글을 보면 지나온 세월이건만 내가 표현해내지 못했던 나의 삶, 생각들인 것 같아 동감도 반성도 한답니다. 그래도 잘 살아왔다 생각하는 자만심도 있다우. 잘 자라준 남매. 비록 사회적으로 유명한 직업인은 아닐망정 나름대로 삶을 개척해 나가주며 건실하니 그것이 성공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 기회에 인연이 없다면 언젠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듯이 만나게 되겠지요. 거꾸로 읽어 나가는 카테고리, 점점 매력이 생겨요. 건전한 생각들이 빠르게 번져나가는 인터넷을 통해 모두들 따뜻한 마음, 사랑이 되는 사회가 되길 기도해요. 베로니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