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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

또 만났네!

M.미카엘라 2003. 2. 16. 15:44
누구나 그렇지만 정말 군인가족들은 이웃간에 서로 '웬수'를 지면 안 된다. 꼭 어디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길 확률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사이가 아주 안 좋았는데 다음에 어디선가
다시 만나면 그것보다 더한 악연은 없다 싶지만, 너무나 잘 지냈던 사이였는데 다시 만나면
그것처럼 또 기쁜 일도 없다. 우리는 이사를 와서 아주 반가운 이웃을 만났다.

소미네 집 이야기를 꽤 오래 전부터 쭈욱 읽어온 분들은 기억할 것이다. 소은이의 영원한
맞수 쌈닭 선재! 철원 이전의 둥지 이천에서 만나 이웃하며 살았던 머스마 유선재 말이다.
이제는 9개월 짜리 동생 '후재'(실제이름은 '수환'인데 남편과 나는 선재엄마가 임신했을 때
아이 이름을 '선재' 동생이니까 '후재'라고 하라고 농담했다가 지금도 가끔 이렇게 부른다)까지
태어나 두 형제가 오붓하게 잘 지내는데 그 집이나 우리 집이나 반갑기는 마찬가지였다.

선재와 우리 집에서 먹는 밥.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날은 사골 푹 우린 국을 내놓았는데, 소금,
후추, 파, 말고도 김가루를 듬뿍 넣었다. 그런데 선재가 그 국을 보더니 먹을 생각은 않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한다는 말.
"충성국이다, 충성국!"
"응? 선재 뭐라구?"
"충성국!"
"충성국? 그게 뭐야?"
발음은 '충성국'이 분명했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선재엄마에게 뭐냐고 눈짓했다.
"으응, 충성국, 얼룩덜룩한 전투복 무늬만 보면 그래. 이 국이 지금 꼭 그런가봐."

나는 그 순간 깔깔 폭소를 터뜨렸다. 김가루, 그것도 파래김이라 드문드문 퍼런 색이랑 거무스레한
색이 뒤섞여 풀어진 사골국은 영락없이 군인의 전투복 무늬였던 것이다. 선재는 그렇게 얼룩덜룩한
무늬에는 모두 '충성'자를 붙여서 다시 명명을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기발한 발상에 무릎을
쳤다. 그날 이후 소미와 소은이, 나는 김가루를 뿌려서 먹는 곰국, 떡국을 우리는 모두 충성국이라며
낄낄대며 웃었다.

선재네는 사실 여기서 진작 떠났어야 할 사람들이지만 선재아빠가 가 계신 부대 군인아파트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세 모자가 우릴 만난 것이다. 어른들도
어른들이지만 아이들은 정말 껌뻑 넘어가게 서로를 반기고 너무나 좋아했다. 소미와 소은이는
3월 유치원 입학 때까지 집에서 콕 박혀 나와 시간을 보내야 할 처지였는데, 뜻밖에도 선재를
만나고 나니 심심할 겨를 없이 신이 날대로 났다.

네 아이는 하루는 우리 집, 하루는 선재네 집에서 몰려다니며 논다. 선재는 1년 전보다 쑤욱
커서 한층 형다운 면을 과시했지만 말은 여전히 어눌하고 귀여운 수준에서 크게 못 벗어났다.
그러나 서로 조금씩 커서 만났는데도 그때 그 시절처럼 선재는 소은이와 여전히 쌈닭처럼
싸운다. 선재의 파워와 소은이의 악바리 근성이 만나 뜯어말리지 않으면 무슨 일이라도 날
것처럼 치열하다. 특히 선재가 소미를 참 좋아하는 게 종종 문제가 된다. 소미와 소은이가
티격태격하면 선재는 꼭 소미 편을 들어서 소은이 손에 든 물건을 빼앗거나 때리거나 한다.
소은이로서는 성질이 날 대로 나서 그야말로 방방 뜬다.

엊그제 발렌타인 데이에도 소은이가 초콜릿을 가지고 선재에게 갔다. 간단히 오늘 왜 초콜릿을
주는지 설명하고는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며 내가 손에 들려 보냈다. 오후를 좀 잘 지내려니
기대했는데 웬 걸, 선재엄마에게 전해 듣고 내가 뒤늦게 갔다가 목격한 바 멱살 드잡이를
하고 쥐어뜯고 물고 아주 난타전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선재 너하고 안 놀아. 너어! 너어! 우리 집에 오지 마."

이러면서 악을 쓰지만 문을 박차고 집에 가겠단 소리는 죽어도 안 한다. 오히려 내가 때가
이때다 싶어서 "소은아, 그럼 우리 이제 집에 갈까"하고 말해보지만 안 간다고 또 소란이다.
선재는 "어떡해에! 어떡해에!" 이러면서 우리가 갈까봐 조바심을 하니 도대체 싸움은 왜 하는
거고, 안 가겠다고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오래 전부터
싸우면서 정든 것이 분명하다.

얼마 전엔 이천에서 같이 어울렸던 채구네가 이제 네 살이 되어 놀러왔다. 채구 아빠는 지난해
가을 전역하여 이제는 '민간인'이 되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살고 있으니 맘만 먹으면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일단 꼬맹이 후재는 빼고 한 살 많은 선재보다 말을 또박또박 더 잘하는 채구까지
다시 뭉친 네 아이는 하루종일 들고뛰고 노느라고 땀 범벅이 되었다. 소미, 소은이에게는 어린
시절 처음 친구로 오랫동안 기억될 선재와 채구를 위해 나는 이 날 집 앞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어른들이 맘먹고 부지런히 서로 연락하고 만나지 않으면 자칫 잊히기 쉬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
에게 붙잡아주고 싶은 소중한 시간이다.


* <사진1> 이천시절(세 살) 선재와 소은이.
* <사진2> 다시 만난(다섯 살) 선재와 소은이.
* <사진3> 2003. 2. 5. 다시 만난 네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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