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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울타리

입추대길(立秋大吉) 소원성취

M.미카엘라 2007. 9. 6. 14:14

 

 

정치권에서만 선거바람이 부르는 게 아니다. 바야흐로 초등학교에도 다시 반장선거철이 도래했다.

 

“나, 이번에 반장 안 되면 1년 동안 울 거야.”

 

2학년짜리 작은 딸 소은이가 1학기 반장선거에서 떨어져서 집에 와 펑펑 울었던 지난 글을 기억하는 분이 있으실 거다.(3월 9일 ‘정말 힘든 하루’) 그리고 여름방학을 마칠 즈음 저런 소리를 해대는 통에 내가 다 개학하면서 불안 초조가 엄습했다. “엄마, 나 2학기 때는 반장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를 뽑겠다는 애들이 많아. 내가 좋대” 이러면서 야무지게 김칫국부터 마셨다가도, “반장 안 되면 부반장도 괜찮은데...”이러면서 갑자기 약해지는 모습까지 두루 보면서, 1년 동안 울 심란한 딸을 생각하니 머리가 미리 아팠다. 지난 학기 때는 아직 소은이의 진가를 모르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으니 2학기 때는 될 수 있을 거라 위로했는데, 이번에 떨어지면 뭐라고 위로해야 하나... 진짜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드디어 화요일에 반장선거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소은이는 6명의 후보 중 2위를 다섯 표차로 따돌리고 반장에 당선되었단다. 경사났다 경사났어. 내 고민이 한 방에 날아갔으니 경사났다. 나는 그게 더 기뻤다. 좋아해주고 축하해주고 그 감격의 선거과정만 귀 열고 들어주면 되었으니까. 선거 전날 더 깨끗이 신경 써서 목욕하고 손톱에 봉숭아물 들이고 한껏 마음이 두근거리며 잠들었는데 아침보다 그 오후에 빨간 봉숭아물이 든 손톱이 더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한껏 축하해주었다.

 

나는 소은이가 노력했던 것을 잘 안다. 작년 5월 즈음 <충격 보고, 그녀의 인간관계>라는 글을 통해서 심각한 잘난척쟁이에다가, 떡 주무르듯 친구들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소은이 때문에 고민했던 글을 쓴 적도 있었을 만큼 소은이의 친구관계는 그렇게 매끄럽지 않았다. 2학년에 올라와 반장선거 패배로 이어지면서 자신의 패인을 나름대로 분석한 모양이었다. 물론 옆에서 나도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보통 사람들은 어떤 친구를 좋아하는지, 엄마는 어릴 때 어떤 친구를 좋아했는지 같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주었다.

 

그리고 소은이는 간간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슬쩍슬쩍 내게 보고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의 반응도 들려주고, 선생님의 칭찬도 들려주었다.

“엄마, 우리 선생님은 이제 내가 말할 때 좀 작게만 말했으면 좋겠대. 그것만 고치면 될 것 같다고 그러세요.”

 

아, 그런데 그 타고난 목청을 어쩌랴. 그냥 말해도 짱짱한 것을. 그래서 그 짱짱한 목소리로 반장 유세를 어떻게 했나 물었더니 의외로 구체적이고 소박하다.

“정화가 친구들을 칭찬하는 말을 잘 하거든요. 나한테도 칭찬하는 말을 했는데 그게 듣기 좋았어요. 그래서 나는 반장이 되면 친구들에게 친절하고 칭찬하는 말을 많이 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어려운 친구들을 먼저 돕는 반장이 되겠다고도 했어.”

 

잘했다 잘했어 내 새깽이... 이러면서 궁뎅이를 두드려주고 축하를 했는데, 이튿날 나는 더 기분 좋은 소식을 들었다. 소은이는 지난 6월부터 날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세워두고 협박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자기 반에 간식을 사서 넣어주는 문제였다.

 

“엄마, 다른 엄마들은 우리 반에 간식 잘 넣어주시는데 엄마도 그거 한 번 하시면 안 돼요? 지금부터 고르세요. 내 생일이 있는 주일에 해주시던가, 2학기 때 반장 되면 그때 해주세요. 어, 근데 생일 때 안해주셨는데 반장 못 되면 어떡하지?”

 

해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혼자서 김칫국을 얼마나 마시는지 모른다. 생일 안 해주고 슬쩍 넘어왔는데 그럼 반장 턱을 내야 한단 말인가. 그건 내가 아주 싫어하는 명분이다. 여러 차례 블로그에서 ‘반장 턱’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보였던 내가 여러분들이 안 보신다고 슬그머니 딸 반장당선 턱을 내? 소미는 자긴 반장 세 번이나 했지만 한 번도 해달란 말도 해주신 적도 없는데 무슨 당선 턱이냐고 난리다. 이 문제를 무슨 말로 이해를 시켜서 넘어가나 고민을 하던 차에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소은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엄마, 우리 선생님이 반장 부반장 이런 거 됐다고 절대 간식 같은 거 내지 말래요. 절대. 그럼 반장 당선된 거 취소시키신대.”

우히히힛.....

소미도 한 마디 한다.

“엄마, 우리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반장 취소시키고 그 많은 음식도 다 돌려보내시겠대.”

푸히히힛.....

 

아, 이렇게도 일거에 고민이 해결되는 경우도 있구나 싶어 너무 마음이 가볍다. 아무래도 교사회의나 학교방침에서 그런 결정이 난 것 같은데 백번 환영한다. 이번 소은이의 반장당선이 이래저래 기분 좋은 이유가 이렇게 많다. ***

 

 

 

 옛날엔 콩잎으로 손가락을 쌌는데... 오늘은 비닐.

 

 밀가루 반죽을 손톱 주변에 붙인다.

 

 그러면 손톱만 예쁘게 물든다.

 

 

어찌 우리 조상님들은 이 꽃물이 손톱을 예쁘게 물들인다는 것을 아셨을꼬?

 

애들 손톱은 확실히 물이 더 잘 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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