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팔불출 작정기 본문
지난 한 주를 내내 힘나게 했던 일이 있다. 5월 내내 너무나 바쁘게 지내느라 가까운 식물원에 예쁜 꽃 한번 보러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그 일 때문에 왠지 모르게 한결 여유가 생기고 기분 좋다. 뭐 그거 한번 그런 거 가지고 그러느냐 놀리는 분 계실까봐 그냥 둘까 하다가 다시 입이 근지러워진다. ㅎㅎ
지난주에 아이들 학교에서 학부모공개수업을 했다. 학부모들의 참석을 높이기 위해 토요일에 했는데 전날부터 소미 소은이는 둘이 옥신각신했다. 아빠 엄마가 어떻게 나눠서 자기들 반에 와야 좋을지 다투다가 결국 지난 해 공개수업을 생각해내고는, 그때와 반대로 내가 소미네 반, 남편이 소은이네 반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고도 소은이는 절대 늦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아빠에게 자기네 반 교실 오는 길을 자세히 설명해주고 난 뒤 잠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교실 뒷문으로 살짜기 안을 살피니 선생님은 계셨지만 아직 수업 전이었다. 뒤쪽에 앉은 규리하고 효인이가 날 알아보고 먼저 반갑게 웃으며 고개를 까딱한다. 몇몇 엄마들이 교실에 있길래 들어갔더니 소미가 규리의 맞은편에 앉아 환한 표정을 짓더니 뭐라고 내게 급히 속삭였다. 잠깐 발걸음을 멈춰 응? 하는 표정을 했더니 “올백이예요. 시험 올백 맞았어요” 한다. 소미네 학교는 전날 학력성취도평가를 봤는데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네 과목을 모두 백점 받았다는 말이다. 난 너무 놀라고 기뻐서 진짜냐고 입모양만으로 물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참 기분이 좋았다. 순간 솔직히 수업은 뭐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나는 실실 웃음이 새나오는 걸 참느라 애먹었다. 공부 잘한다 하는 아이도 한 개 정도 실수하기 십상인데, 나도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못해본 걸 다 하다니, 저학년 때와 달리 4학년부턴 심화단계로 들어가 이 때 가장 어려워한다던데… 하는 생각부터, 시험문제가 너무 쉬웠나? 한두 개는 몰랐는데 객관식일 테니까 운이 좋아 맞췄겠지? 담임선생님이 반평균 높이려고 많이 신경 쓰셨나? 하는 생각까지, 참 너무 잘해도 믿겨지지 않고 평가절하까지 하려했다.
수업은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나중에 선생님도 인정하셨지만 주제 선정이 좀 진부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너무나 반듯한 모범 답안에 중복되는 답만 하는 통에 재미가 없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긴장해 실수는 적었지만 활기가 없고 웃음이 적었다. 수업참관 후기에도 그런 느낌과 함께 너무나 완벽하게 준비하지 말고 실수가 있더라도 즐겁고 유쾌한 수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썼다. 소미가 발표를 끝내고 들어가자 옆에서 잘 모르는 두 엄마가 속삭이는 소리만 내 귀에는 너무 선명하게 들린다.
“이 반엔 소미 하나가 이쁘네.”(^^)
수업 후에 아이들은 모두 나가고 선생님과 학부모 미팅이 있었다. 난 별로 할 이야기는 없었는데 참관후기를 늦게 쓰는 바람에 인사만 드리고 나올 타이밍을 놓쳤다. 열 명이 좀 넘는 학부모들이 둘러앉은 곳에 끼어서 이런저런 오가는 이야기만 듣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들이 전날 본 시험성적에 관심이 많았다. 올백 맞은 아이가 있느냐는 질문부터 나왔는데, 선생님은 ‘한 명 있다’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다시 한 개 틀린 아이들은 많고 반 아이들 학력이 다른 반보다 비교적 고르게 좋은 편이니,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면 잘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하셨다. 특히 아이들 앞에서 한 개 틀리고 두 개 틀리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지나친 교과목 선행학습을 위한 학원수강은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예체능이나 영어 정도만 필요하다면 따로 배우고 생활의 여유를 찾아주어야 생각하는 힘도 길러진다는 조언도 하셨다.
곧 이야기는 모둠별 수업방식으로 넘어갔는데 나는 여기서 사실 시험성적이 모두 백 점인 것보다 더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은 ‘특별히 한 아이 이름을 거론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지만’이라는 전제를 하시고는 이야기를 하셨다.
“모둠별 수업은 여러 면에서 아이들을 잘 알게 되는 수업방식입니다. 우리 반엔 몇몇 아이들이 우수한데, 특히 소미 같은 아이는 굉장히 뛰어난 아입니다. 소미가 들어가는 모둠은 그 평가가 전과 확연히 달라질 정도지요. 친구들과 협동하고 융화도 잘 되지만 리더십도 뛰어납니다.”
난 그날 무척 어지러웠다. 다 키워놓으면 아들은 기차 태워주고 딸은 비행기 태워준다더니,(이 말 맞나?) 그날 난 일찌감치 경비행기부터 점보여객기까지 비행기를 너무 고루 타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언니한테 이야기를 했더니 ‘저…제가 소미 엄마예요”하면서 배우처럼 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지 그랬냐고 깔깔댔다.
밖으로 나와 소은이 공부시간에 들어갔던 남편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우리 네 식구는 다들 그날 참 기분이 좋았다. 소은이는 제 언니 백 점 맞은 일이 자기 일인 것처럼 남들에게 소문내고, 소미는 그날 서울에서 만난 이모에게 돌돌 말리는 작고 예쁜 전자피아노를 선물 받고 완전히 날아다니는 기분으로 지냈다.
이렇게 완벽한 점수를 맞는 일은 한 번도 힘이 들고 한번만도 대단하지만, 자신이 이렇게까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한 번의 경험은 참 소중할 듯하다. 공부하다가 혹은 다른 일로라도 잠시 자신감을 잃었을 때, 이런 경험을 기억해낸다면 다시 힘을 낼 하나의 동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일로든 한 번쯤 ‘최고의 경험’은 그래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중에 필요하다면 이 날의 일을 기억하기 쉬우라고, 익숙한 글쓰기는 아니지만 하루 동안 있었던 자식자랑을 줄줄 기록한다. 에구구, 자식이란… 나름 꽤 이성적으로 자식을 길러보려는 이 에미를 단숨에 팔불출 만든다. 허나 내가 망가지는 게 뭐 그리 대수랴. ㅎㅎㅎ
오늘은 드디어 마음먹고 네 식구가 한택식물원으로 바람 쐬러 다녀왔다. 참 꽃도 예쁘고 나무도 예뻤다. 햇빛도 예뻤고 바람도 부드러웠다. 그리고 꽃들 사이로 뛰어다니는 우리 딸들이 더할 수 없이 예쁜 초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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