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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손의 솜씨

리틀셰프의 꿈

M.미카엘라 2009. 9. 16. 13:46

 

 

“나도 이제 늙나보다. 아이들 것만 눈에 띄니…”

수녀언니가 20여 일 간 로마를 다녀와서 나를 만나 하는 말이다. 솜손이 보면 좋아할 물건들만 눈에 들어오더라며 쇼핑백 하나에 들고 온 아이들 선물이 너무 재미있다. 소미에겐 조촐하고 소박한 작은 천사상을 안겨주었다. 보자마자 딱 소미 생각이 나는 분위기였다며. 눈, 코, 입은 없지만 그래서 더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소미는 너무 예쁘다고 수녀이모가 가고 나서도 몇 번이나 쓰다듬으며 자기 책상에 자리를 잡아준다.

 

 

소은이에겐 갖가지 모양의 파스타와 작은 요리도구를 몇 가지를 안겼다. 며칠 전 토요방과후학교 <리틀쉐프 교실>에서 첫 요리로 고구마피자를 만들고 온 소은이는 급흥분 상태로 입이 함박만 해져서 다물 줄 모른다. 특히 달걀모양 손잡이를 가진 작은 거품기를 들고 이리저리 만져보고 볼에 부비며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무당벌레 조리알람기가 두루 요긴할 것 같다. 일단 스파게티 한번 삶으면 꺼내서 먹어보고 잘라서 타일에 던져보고 하길 두어 차례 했는데, 봉지에 표시된 파스타 삶는 시간을 이 알람을 맞춰놓고 하면 그런 번거로움이 없을 것 같다. 모두 60분까지 조절할 수 있으니 다른 요리를 할 때도 시간을 깜빡하기 잘하는 내가 좀 사용해야겠다.

 

 

우리는 또 몇 개만 먹으면 배가 부를 것 같은 아기 주먹 만한 소라모양 파스타를 보고 너무 신기해서 이리저리 봉지를 들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면서 소은이가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그게 결국 다 우리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느냐, 사실 이게 다 우리 거다 뭐 이러면서 소미와 나는 낄낄거렸다.

 

소은이는 이것저것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이모에게 묻는다. <세계명문직업학교>라는 책을 한 권 샀더니 거기에 소개된 요리학교 사진을 보면서 프랑스로 갈까, 일본으로 갈까, 아니면 이탈리아로 갈까... 초등학교 졸업도 안한 것이 벌써부터 세계유수의 요리학교로 유학 갈 생각에 빠진 소은이가 이거 이모 덕분에 이탈리아 쏠림현상이 부쩍 심해지겠다. ㅋㅋ

 

 

 

 

 

그런데도 얼마 전 소은이는 속으로는 좀 다른 고민이 살짝 깔려있는 속내를 비췄다.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국영화를 볼 때다. 탄광촌에 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한 소년이 소녀들 틈에서 쑥스럽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다가 결국 그 재능을 알아본 발레선생님이 다툼 끝에 극적으로 아버지를 설득해 로열발레학교에 입학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걸 본 소은이가 ‘난 요리하는 게 너무 좋지만 계속 끝까지 요리를 잘하면서 살 수 있을지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한다. 저렇게 어린 나이에 발레를 평생 하겠다고 딱 결정하는 일이 너무 어려울 것 같은데 빌리는 참 대단하다는 거였다.  

 

저런 부분이 소은이의 소심하면서도 내성적인 면모다. 뭔가 한 가지 결정하는 일을 어려워하고 생각이 많다. 하다못해 어디 여행 갔다가 작은 기념품 하나 고르는 일에도 다른 사람이 지겨워할 정도로 시간을 많이 쓴다. 그렇게 결정한 문제에 대해 후회도 곧잘 한다. 대범하고 결정이 빠르고 별로 후회하지 않는 소미와 아주 대조적이다.

 

 

며칠 전엔 소은이가 한 달 넘게 묵주기도 하다가 좀 힘이 들었는지 그날 기도 시작 전에 좀 툴툴댔다. 그랬더니 대번에 소미가 한 소리 했다.

“넌 그러면서 어떻게 요리사 하다가 나중에 수녀님 되겠다고 그래? 수녀님 될 사람이 이 정도 기도도 진득하게 못하면 되겠어?”

그랬더니 소심한 목소리로 소은이가 이렇게 받았다.

“수녀님은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 그리구 (여기서 갑자기 목소리 톤을 확 신경질적으로 높이더니) 어떻게 열한 살에 인생을 다 결정하냐?”

나는 맞다, 맞다 하면서 폭소했다. 저 의외의 소심쟁이가 요리학원 다니며 요리 배울 때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삼아 이야기하면 아주 싫어하고 부담스러워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안심시켰다. 발레와 달리 요리는 그렇게 일찍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요리사가 안 되어도 괜찮다, 요리를 열심히 하다가도 다른 걸 할 수도 있는 거다, 너도 무릎팍도사에서 봤지만 안철수도 의사하다가 컴퓨터 일 하다가 다시 교수님 되었다, 평생 한 가지 직업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직업을 바꿔서도 잘 살 수 있다, 그러니 부담 갖지 말아라… 뭐 그런 말로. 푸핫…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정말 어떻게 열한 살에 인생을 결정하겠나. 세상은 넓고 직업도 무수히 많은데….

 

 

손금아, 부담 갖지 말아라. 요리사가 되지 않아도 요리를 즐긴다는 건 분명 귀중한 능력이 될 거다, 인생이 한층 따뜻해질 것 같거든. 더 생각하면 무엇이 되는가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엄만. ***

 

 

아, 저 띄어쓰기 완전 무시한 다닥다닥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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