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시험감독 본문
국가대표 축구팀 차기 감독의 적임자가 누구냐를 두고 가장 많은 네티즌들이 추천한 사람은 누구일까? (두구두구두구~~~) 헉! 임권택 감독이란다. 세계적인 명장의 반열에 들기 때문이라나? ㅋㅋ 네티즌들의 유머와 재치는 요즘 소미 같은 청소년들 말로 ‘완전 쩐다.’ 하긴 뭐 영화감독이나 축구감독이나 사람들을 지휘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총책임자의 역할은 같다. 그러나 스포츠와 영화는 워낙 판이하게 다른 분야라, 임감독이 아무리 명장이라 하시더라도 그 결과는 좀체 장담할 수 없으리라. ㅎㅎ
소미가 나흘에 걸쳐 기말고사를 보고 있는데, 나도 하루 감독하고 왔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감독이 아니라 그야말로 단순한 ‘감시역’이다. 모든 학생들을 문제적 컨닝 잠재주자로 보고 눈동자를 굴리자면 고약한 역할이지만, 학생들의 약한 마음(?)을 미리 잡아주고 그 약한 마음이 가져올 고약한 사태를 미연에 예방하는 역할이다, 라고 생각하면 좀 낫다. ㅋㅋ 꿈보다 해몽...
나는 하루 세 과목 시험 시간에 2학년 교실에만 들어갔다. 요즘 가장 핫(hot)한 나이가 15세, 중2 아니던가. 세상 무서울 것 없는 가장 무서운 십대로 중학교 2학년생을 꼽는다. 고등학교만 가도 철든단다. 하지만 우리 소미도 내년엔 2학년. 이쁘게 봐야지 하니 애들이 다 이뻐보인다.
1교시 수학시험.
공부 좀 한 녀석들과 공부 안하거나 공부에 취미 없는 녀석들의 차이가 분명하다. 공부 좀 한 아이들은 45분간 손이 쉬지 않는다. 서술형 시험까지 끊임없이 손이 쉬지 않고 시험지 위를 오간다. 하지만 좀 풀다가 연필 쥔 손을 책상 위에 척 걸쳐놓고 문제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녀석들. 과거에 한때 나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럽다.ㅎㅎ 얘야... 그런다고 답이 튀어나오지 않더라. 수학은 예나 지금이나 머리도 중요하지만 손노동이 더 중요하더란 말이지.^^
2교시 음악시험.
헉! 나 놀랐다. 음악을 듣고 푸는 문제가 네 문제나 된다.
‘이 곡의 작곡가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을 고르세요.’
‘이 곡은 어떤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까?’
문제가 이런 식이다. 뭔 음악인지도 모르고 베버의 <마탄의 사수>, 슈베르트의 <마왕> 뭐 그렇게 작곡가와 제목 짝짓기로 공부 끝나던 우리 때와는 완전 다르다. 2학년은 모차르트의 ‘아이네클라이네 나하트무지크’가 나왔는데, 1학년 소미네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교향곡> 4악장이 나왔다고 한다. 근데 문제는 누구나 잘 아는 ‘환희의 송가’부분이 아니라 4악장 도입부여서 아이들이 많이 틀렸다고 한다. 실제 곡을 알지 못하고는 음악 100점 맞긴 진짜 힘들겠다.
3교시 기술 가정 시험.
우리 때는 남학생은 기술, 여학생은 가정을 배웠는데, 두 과목을 합쳐 남녀 모두 함께 배운다니 이건 바람직하다. 근데 내 시력이 좋은 게 문제다. 안 보려고 해도 내 앞쪽으로 앉은 남학생의 문제지가 너무 잘 보인다. 내가 수학은 모르겠지만서두 가정문제야 주부 16년차로 쫌 자신있다. 녀석 단정하게 시험보는 자세하며 문제지에 쓴 예쁜 숫자가 대강의 성정을 말해주는데, 섬유의 성질에서 끝까지 고민한다.
‘마섬유의 특징으로 맞는 것은 무엇입니까?’
5개 문항 중 특징이 아닌 것을 지워나가는데, 2개까지만 자신 있어 보인다. 시험종료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답안지를 걷어간 후,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내가 살짝 물었다.
“이 문제 갈등했니?”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뭘 골랐는지 물어봐도 되니?”
“3번이요.”
“맞은 거 같다. 아줌마가 입은 이 원피스가 마섬유가 많이 섞여서 무진장 구김이 많이 가거든.”
“정말이요? 아싸~”
얼굴이 환해지는 녀석이 귀엽다.
이 학교 시험이 대체로 까다롭고 어려운데다 채점이 엄격하다고 주변에 소문이 자자하다. 옆에 다른 중학교로 진학한 소미 초등학교 친구 엄마는 여기 중학교가 아이들 점수를 주자고 내는 시험이 아니라 점수를 깎자고 내는 시험이라고 소문났다고 한다. 근데 좀 쉬워도 학부모들이 항의를 한다니 그건 좀 너무 했다. 변별력이 없어지는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가 본데, 그래도 애들이 자신감을 쉽게 잃을까 걱정이다.
시험시작 10분 만에 엎드려 있다가 백지 답안을 내는 여학생을 봤다. 두 반에는 무단 결시생이 세 명 있었다. 이 아이들의 문제가 시험 어려운 것과는 별개겠지만, 유독 눈에 띄는 빈 자리가 학교를 거부하는 15세 아이들의 휑하거나 불안한 내면을 비춰 보여주는 것 같아 쓸쓸하다. 이 아이들을 학교로 돌아오게 해야 할 선생님들의 어려움도 손에 잡힐 듯하다.
소미는 시험시작 하루 전날, 일요일부터 배가 아프고 토하고 설사를 하면서 급기야 밤에 응급실에 다녀왔다. 아, 꼭 이런다. 소미는 이상하게 병원도 다 문 닫은 휴일에 잘 아프다. 위염과 장염이 함께 왔는데 결석을 못하고 등교를 했다. 죽만 조금 먹었는데도 복통은 여전해, 1교시 수학시험을 서술형은 거의 손도 못 대고 식은땀을 흘리며 간신히 본 모양이다. 응급실에서 ‘내내 괜찮다가 얘는 꼭 이럴 때…’하는 생각에 은근히 짜증이 나기도 했는데, 죽만 먹고 얼굴이 반쪽이 되어 시험기간을 보내는 아이 얼굴을 보니 안쓰럽다. 저도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냐, 제 속은 오죽하겠냐 싶으니 학교에서 돌아오면 일단 죽과 약을 먹여 한숨 자라고 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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