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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원

웃음 너머

M.미카엘라 2011. 12. 22. 02:39

 

 

소미와 소은이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를 어릴 때 보고 아주 재미있어 했다. 대사도 말소리가 아닌 자막 처리된 무성영화인데도, 찰리 채플린이 공장에서 기계부품처럼 이리저리 혹사당하는 게 어린 눈에는 재미있는 놀이처럼 보였는지 깔깔대며 쓰러지고 엎어지며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어떤 땐 자꾸 공장에서 일하는 장면만 다시 보여 달라고 하여 뒤에는 더 이상 보지 않고 그것만 보다가 만 경우도 있다.

 

얼마 전에 <모던 타임스>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는데 소은이가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찰리 채플린이 영화에서 아주 웃기기만한 사람 같았는데 지금 보니까 좀 슬퍼. 저 사람 웃는데도 꼭 우는 것 같애.”

나도 모르게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많이 컸다. 웃음 뒤에 있는 눈물을 볼 줄 아는 거 보니 훌쩍 컸다는 실감을 한다.

“그게 그렇게 보이면 이제 찰리 채플린 영화를 제대로 보는 거야. 우리 소은이 많이 컸네.”

 

 

 

 

일본의 피겨 선수인 아사다 마오가 외국에서 훈련 중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는, 코앞에 있는 큰 대회를 포기하고 급거 귀국했으나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상을 치른 후에는 자국에서 열리는 피겨대회에 바로 출전하기로 결정해서 동료 선수들과 팬들이 격려하고 응원했다고 한다.

“아사다 마오가 엄마 돌아가시고 바로 피겨대회 나온다는데 소은이는 어떻게 생각해?”

“안 됐다. 불쌍해.”

김연아의 팬이었던 소은이는 아사다 마오를 주는 거 없이 미워했던 터라 대답도 맹목적으로 그 연장선에서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다.

 

“그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막 뭐라고 욕하던데…. 독하다는 둥, 금메달에 목숨 걸었다는 둥, 지금 스케이트가 타지냐는 둥 하면서.”

“스케이트 탄다고 독한 건가? 안 슬프고 마음이 안 아프고 아무렇지도 않아서 스케이트 타겠어요? 그냥 그거라도 안 하면 더 슬프고 참을 수 없을 것 같으니까 하겠지. 그리고 내가 아사다 마오라면 돌아가신 엄마가 꿋꿋하게 스케이트 계속 타는 걸 바란다고 생각해서도 그럴 것 같아요.”

 

진짜 생각 밖의 대답이었다. 열린 방문으로 이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소미가 소리쳤다.

“에이, 엄마! 안 운다고 안 슬픈 게 아니라니까요. 전에 우리 식구가 <각설탕>영화 보러갔을 때 극장에서 소은이는 슬프다고 막 울었는데 난 하나도 안 울었다고, 엄마가 소은이는 감성이 풍부한가보다, 소미는 좀 냉정하다 뭐 그러실 때 제가 그런 말 했던 거 기억 안 나세요? 꼭 운다고 슬프고 안 운다고 안 슬픈 건 아니라고.”

 

생각이 난다. 소은이 고 쪼끄만 게 영화 보면서 펑펑 우는 게 신기해서 한 며칠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어느 날 저녁 나한테 소미가 그렇게 말했던 게 기억이 난다. 하긴 겉으론 눈물을 흘리면서도 속으론 안 슬픈 사람들이 당장 저 북한 땅에도 제법 있을지 모른다. 맞다. 맞다. 그날은 아이들 말이 구구절절 맞다. 다른 사람의 웃음 너머에 있는 슬픔과 아픔의 한 자락을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이 아주 다 커버린 것 같다. 꼭 어른하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묻고 싶은 게 있었지만 이 말은 그냥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럼 너희는 현주이모의 웃음 너머 슬픔과 아픔을 읽을 수 있니? 어른들도 가끔 웃음만 읽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도 하듯 오늘 소은이가 성탄카드를 앞에 놓고 고민을 하며 중얼거린다.

“아, 이모한테 뭐라고 쓰지? 성탄카드는 보통 즐거운 말 쓰는데 그럼 안 되고,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고… 아, 너무 조심스러워. 아, 뭐라고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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