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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충전소

원칙을 지키는 일의 어려움

M.미카엘라 2002. 9. 2. 16:43
"소미, 아까 마리아 아줌마하고 대모님 집에 갈 때 잘 걸어갔지? 아줌마한테 업어
달라고 하지 않았니 ?"
"네."
"정말? 거기까지 걸어갔단 말이야? 우리 소미가?"
"아니요. 안고 갔어요."
"뭐라구? 집 앞에서부터 거기까지 안고 가셨단 말이야?"
"아니요."
"그럼 어디서부터 안고 가셨어?"
"타탕집(사탕가게)에서. 막대타탕 집에서."
"집에서부터 사탕집까지는 걸어간 거야? 그리고 아까 엄마가 경혜 언니 사탕이라고
또 먹지 말라고 했던 그 막대사탕 아줌마가 사주신 거니?"
"네."
소미는 점심을 먹지 않았다. 사탕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이었다.

오늘 점심 초대를 받은 집이 있었다. 약간 언덕진 곳 위에 있는 아파트를 벗어나서
조금 걸어 내려가면, 관사 몇 채가 따로 있는데 그 중 한 집을 가게 되었다. 두
아이 챙기느라 정신없는데 같이 가실 이웃 한 분이 오셨다. 아이를 예뻐하셔서 어디
같이 갈 일이 있으면 소미를 챙겨서 먼저 문을 나서주시길 잘해 늘 고맙게 생각
하는 분이다. 그 분하고 가면서 있었을 이야기를 물었던 것이다.

내가 조금 뒤이어 가보니 소미는 벌써 사탕 한 개를 다 먹어가고 있었다. 한 손에
는 또 하나를 들고 나를 반기는데 '에휴, 오늘 점심은 다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이가 예쁘다고 사 들려주신 걸 뭐라고 타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엄마들은 누구나 자기 아이를 기르면서 나름대로 원칙이나 규칙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자기 마음속에 두고 되새기는 것도 있을 것이고, 아이가 지켜주어야 할 것이
있다면 때마다 말로 일깨워줄 것이다. 나도 소미에게 몇 가지 원칙 내지 규칙을
가지고 있다.

첫째, 밥은 다 먹거나 먹기 싫어서 그만 먹으려고 할 때까지는 한자리에 앉아서
되도록 일어나지 말라고 말하지만, 거의 안 먹다시피 하고 돌아다녀도 절대로 밥그릇
들고 따라 다니며 먹이지 않는다. 그리고 물어봐서 안 먹겠다고 하면 그냥 치운다.
설사 두 끼니를 그런다 해도.

둘째, 엄마가 소은이를 안고 있는데 동생을 밀어내며 무릎에 앉혀서 책 읽어달라고
고집부리지 말 것(그렇지만 소은이가 잘 때는 꼭 무릎에 앉히고서 읽어준다).

셋째, 자기 전에 손이나 얼굴, 발은 안 닦아도 이는 꼭 닦는다. 충치 도깨비 안 만나려면.
넷째, 온통 방을 어질러 놓고서 다른 상자에 잘 정리되어 있는 블럭이나 하드보드지로
만든 인형놀이 상자를 꺼내달라고 조를 때, 어질러진 것들을 통이나 상자에
담지 않고서는 꺼내주지 않는다(너무 많아서 좀 가혹하게 느껴지면 내가 도와주거나
얼추 정리만 되면 눈감아준다).
다섯째, 밥 먹기 전에는 사탕, 과자, 껌, 아이스크림은 절대로 주지 않는다. 울면
울게 내버려둔다.

뭐 이런 것들인데 소미 저도 이제는 떼써도 엄마에게 안 통한다는 것을 아는지
지나치게 고집을 부리지 않는 편이다. 좀 시도하다가도 곧 포기하는 걸 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그런데 이런 원칙들이 남의 집에 갔을 때나 다른 또래들과 섞여 있을 때는 지키기
힘들다. 특히 먹는 것을 가지고는 더 어렵다. 다른 아이들은 맛있게 먹는데 자기 혼자만
못 먹게 하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으니까. 오늘도 친구 다혜가 함께 먹고 있었다.
다혜 엄마도 그런 고민을 속으로 했을지 모를 일이다. 또 아이한테 지나치게
엄격하게 하면 사주신 분이 오히려 미안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아직 소미가 어려서 그런 걸 악용해 집에서도 밥 먹기 전에 사탕 먹겠다고 떼쓴
적은 없지만, 이런 일이 잦으면 좀 커서는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이래저래 원칙을
지키는 일, 부모가 일관성을 갖는 일은 정말이지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그 순간 최선을
다할 뿐 왕도는 없지 싶다.

"소미야, 마리아 아줌마는 소미를 예뻐하셔서 늘 안아주고 싶어하시지만, 안아주시
겠다고 해도 '괜찮아요. 걸어갈게요' 그래야 돼. 소미가 언니가 된 후 아주 많이 커서
오래 안고 걷기가 힘들거든. 알았지?"
"네."

아이들은 업거나 유모차에 의지하지 않고 걸려서 데리고 다니기 좋다 싶을 때쯤
이상하게 안 걸으려고 하는 시기와 맞물린다더니 소미가 요즘 그때를 만난 것 같
다. 도통 걸으려고 하질 않는다. 우리집이 1층인 게 너무 다행이다.

소은이 낳은 뒤로 습관되면 동생 못 업게 하고 저만 업어달라고 떼쓰니, 안아주긴
해도 업어주지 말라는 친정어머니 충고로 '업지 않기' 원칙이 하나 더 늘었다. 하긴
소은이도 좀 많이 업었다 싶은 날엔 밤에 허리가 아파서 몸 뒤척이기 힘드니 소미
업어줄 힘이 남아있지도 않다.
에휴, 우리 소미 동생 일찍 본 죄로 가엾게 되었구나. 날마다 뽀뽀와 숨막히는 포옹을
남발하는 이 에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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