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함께 보는 그림책 본문
방학이 시작될 때 소미에게 방학 동안 읽을 책을 마련해주었다. 10권의 책을 사고 한 질의 책을 소미의 친한 친구 집 책과 통째로 바꿔다 놓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한 10권의 그림책 중 소미와 내가 고른 빼어난 그림책 두 권을 소개한다. 말하자면 ‘초등학생이 보기 좋은 그림책’이다.
<파란상자 파란막대> ***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지음
길쭉하고 큰 그림책이 생긴 것부터 특별하다. 앞뒤가 모두 책 표지다. 한쪽은 <파란상자> 한쪽은 <파란막대> 두 가지 이야기가 책 가운데서 손을 잡는다. 이야기의 뼈대는 아홉 살짜리 소년이 집안에서 대대로 남자아이들에게 물려주는 ‘파란상자’를 가지고 놀면서 자기보다 앞서서 이 상자를 가지고 놀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가 담긴 공책을 읽어간다. 또 아홉 살짜리 소녀가 집에서 대대로 여자아이들에게 물려주는 ‘파란막대’를 가지고 놀면서 자기보다 앞서서 이 막대를 가지고 놀았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어간다. 똑같은 비중의 두 이야기가 각기 양방향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 그림책은 온갖 장난감과 값비싼 교구, 교재의 홍수 속에 아이를 두고 흐뭇해하는 많은 부모들에게도 크나큰 메시지가 되리라 생각한다. 아이의 창의력이란 단순한 데서 출발하는 것인데 끊임없이 채워 넣으려 한다. 부족하고 비어있는 가운데 아이들의 생각은 자란다는 생각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린 시절 우리 집에 놀러 와서는 빨래건조대에서 뺀 빨래집게 한 세트를 종일토록 지치지도 않고 가지고 놀던 조카 생각이 났다. 또 얼마 전에 밥 먹다가 흘린 밥풀덩어리를 뒤늦게 떼어내서 그걸 손 안에 넣고 꼬질해지도록 오전 내내 이것저것 만들며 가지고 놀던 소은이 생각도 났다. 소미는 이 책을 커서도 계속 자기 책꽂이에 꽂아두고 싶은 책으로 꼽았다.
<루비의 소원>은 빨강색을 좋아했던 한 중국소녀 이야기다. 중국의 풍물이 섬세하게 표현된 속 그림도 마음에 들었으나 나는 먼저 강렬한 빨강색 표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신문물이 들어왔으나 남녀차별이 컸던 근대 중국을 배경으로 집안에서 그 차별을 당당하고 차분하게 풀어나가 독립적으로 자기 삶을 여는 루비의 이야기다. 요즘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성장과정에서 여자아이라고 특별한 교육적인 차별을 받지 않지만,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어린 소녀의 자세가 아주 좋아보였다. 차별을 들추어내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권위의 상징인 할아버지 앞에서 무서워하지 않고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차분하고 예의 바르게 말하는 태도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잘 만들어진 그림책은 언제고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도 충분히 빼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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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방학이다. 소미와 소은이, 그리고 나는 모두 방학의 하이라이트를 보내고 있다. 두 아이는 방학 전부터 할머니 댁 가기만 기다리고, 할머니 역시 내내 손녀딸 오기만 기다리는 가운데 드디어 지난 토요일 대전의 할머니 댁으로 갔다. 나는 일주일간 날마다 집에서 했던 두어 가지 공부나 숙제를 모두 다 쉬라 했다. 일기장 한 권씩과 책 대 여섯 권만 싸들고 갔다. 위에 소개한 저 그림책을 포함하여…
남편은 아침 일찍 부대로 출근하고 지금은 이렇게 나만 오도카니 집에 남았다. 한 6일 에어컨 안 틀어도 시원한 휴가다. 올 여름은 다른 어느 해보다 유난히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세월 보낸다. 그러나 이 시간이 솔직히 너무 아까워서, 이게 가끔 한번씩 핥기만 하는 가난한 아이들의 하나뿐인 눈깔사탕 같다. 지난 6월 말부터 제주를 시작으로 그렇게 싸돌아다니면서 놀고, 이렇게 또 쉬면서도 '가난한 아이들의 눈깔사탕' 어쩌구저저꾸 하면서 복에 겨운 소리를 하니 여러분들에게 혼나겠다. 그래도 몇 마디만 더....
밥? 거의 안 하고 안 먹겠다. 청소? 월요일인 어제 딱 한번 말끔하게 집안 치웠으니까 애들 올 때까지 안 치우겠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나 읽겠다. 고상한 음악 좀 듣겠다. 탱자탱자 뒹굴뒹굴 무위도식 하면서 지내겠다. 그러나 밤에는 쫌 놀겠다. 어제 밤엔 <친절한 금자씨>를 만나 더위를 몰랐으니 오늘은 쫌 쉬고, 내일쯤은 다른 영화를 찾아보고, 모레는 ‘안치환과 자유’ 콘서트 갈 계획이고 글피에는 남편이 <웰컴투동막골> 보고 싶다 하니 심야에 거기에 또 동참할 수밖에. 크크크… 나 조회해보니 여기서 가까운 한 극장에서만 2년 동안 40여 편의 영화를 보았더라. 연말에 이사 가기 전까지 한 50편 채워볼까 한다.(ㅎㅎㅎ~) 난 딸들이 보는 그림책도 좋고 극장에서 보는 ‘움직이는 그림’도 무지 좋다. 중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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