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별빛이 쏟아지는 '특별구' 본문
"너희 동네는 이런 거 없잖아. 많이 먹어 둬."
철원은 외로운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적잖이 소외된 지역이란 생각도 든다. 이 곳에 사는 내가 외롭다거나 소외되었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지만 그저 사람들의 연상 이미지나 말속엔 강릉이나 속초보다 더 먼 곳으로 밀려난 느낌은 더욱 강하다. 그런데 난 왜 농담으로든 진담으로든 서울이나 그 언저리에 있는 도시에 갔다가 이런 소리를 듣게 되면 재혼해서 전남편 자식 데리고 들어온 어미 같은 심정이 되어 철원을 감싸고 싶어지는지 모르겠다.
난 고작 여기서 일 년 살았다. 분단세대도 아니고 실향민도 아니며 그렇다고 실향민의 자식쯤 되어서 부모님이 늘 애끓게 고향을 그리는 것을 보고자란 것도 아니다. 바쁘게, 화려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보다 이런 한적한 시골동네에 쉽사리 익숙해지는 데는 나의 태생적 본능 같은 것 덕분이라 여기지만, 여기는 유난히 추운 겨울이 좀 나다니기 어려워서 그렇지 정말 맑고 아름다운 동네다.
밤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이곳에 이사온 후 흐린 날만 빼고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우수수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별 때문에 탄성을 지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시 또 짐을 싸야 하지만 이 별 때문에도 애틋한 심정이 된다 하면 지나친 호들갑일까.
군인가족들이 가엾은 건 어디를 가든 '여긴 내가 잠시 머무는 곳이다' '여긴 내가 뿌리를 내릴 곳이 아니다' '또 얼만 안 있다가 갈 텐데' 하는 마음이 늘 정서적으로 자기 안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온전하게 그 마을, 그 지역의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데 있다. 한 발은 빼서 늘 다른 곳에 두고 사는 셈인데 그게 늘 서글프다.
특히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남편을 따라서 이런 최전방까지 와서 살아야 하는 경우는 좀체 마음을 붙이기 힘들다. 가까운 이웃, 서로 같은 처지의 이웃과 교류하면서 그 정으로 마음을 붙인다고 할까. 애매하게 외진 곳이기 쉬운 군인관사는 언제나 그 지역 중에서도 외로운 곳에 속하는 편이니 남편에게 의지하고 이웃에게 의지하고 사는 삶이 절반 이상이다.
그러나 난 지난 해 1월 이곳에 와서 그다지 깊게 사귄 이웃을 만들지 못했다. 그냥 어찌어찌 하다보니 혼자 무엇을 하고, 아이들 유치원 간 점심에도 나 혼자 밥 먹고 하루를 지내는 일이 대부분인데, 그게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것도 이 동네가 나와 어느 정도 결이 맞았다는 기분 때문이다. 나 역시 나서 자란 곳이 여기서 멀지 않다.
군인가족들, 군인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이 동네는 이들에겐 그냥 이심전심인 곳이다. 짧게 있든 길게 있든, 군인 아니면 민간인 정도로 단순하게 나누며 사는 삶이라도, 다른 곳보다 군인의 자리가 큰 것이 당연하고 군인이 얕잡아 보이지도 않는 곳이다. 사람끼리도 아닌 군인과 철원 사이엔 어딘가 닮은 점이 많다. 어딜 가도 내가 오래 살아야 할 동네처럼 생각하자며 주위를 둘러보고 마음을 주느라 애쓰지 않아도, 외로우면 외로운 그 느낌 그대로, 남들 시선이 별나라 보듯 뜨악하면 뜨악한 대로 그 쓸쓸함이 그대로 닮아 마음에 닿는다.
얼마 전 민통선 안을 돌아보았다. 남편이 신분증을 여러 번 꺼내 보이면서 들어갈 수 있었던 마을, 철원평야 위로 철새들이 허공에 무늬를 그리며 날았다. 남방한계선을 바로 옆에 두고 녹슬어 쓰러져 도무지 기차 같아 보이지 않는 기차가 멈춘 월정리역, 빨간색 넓은 판이 군데군데 하늘을 향해 서있는 비행기 월경방지 표지판, 저 멀리 보이는 OP들만 아니면, 하늘 그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땅, 위험한 땅에 대한 표시는 없다. 누군가를 눈감기고 데려가서 여기 내려놓고 남쪽 어디쯤 곡창지대, 드넓은 평야라 해도 믿을 곳이다.
관절리를 따라 다시 민통선 밖으로 나오자마자 노동당사가 있다. 그 오래된 의미 있는 건물보다 내 눈을 끄는 건 그 앞에 해방당시 철원 시가지를 그려놓은 조감도였다. 내가 서있던 노동당사는 정확히 그 철원 시가지 가장 가운데 있었다. 이념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는 접어두더라도 화려하지 않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구수했을 이 땅의 영광을 조금 보는 듯했다. 민통선 안에서 보았던 허름한 농산물 검사소, 곡물 창고, 제4공장 같은 유적이 그제야 무엇을 말하는지 환히 알 수 있었다. 옛 철원의 활력과 생활이 남긴 흔적이었고 상처였다.
이제는 아들 군에 보내놓고 노심초사 애간장을 녹이며 눈과 귀를 모으게 되는 땅, 보통 사람들 생각으론 언제라도 총탄이 튀어 오갈 것 같은 살벌한 땅, 그저 살풍경하고 춥고 긴 겨울이 상징이 되어버려 측은지심이 저절로 솟는 땅이다. 어딜 가도 사람 사는 땅이거늘 이곳으로 전출 명령이 났을 때는 군인가족들조차도 어린애들 데리고 그 추운 곳, 그 산골짝 최전방에서 어찌 사느냐고 걱정을 한 곳이다. 산이 둥글게 마을 전체를 감싸고 외지로 나가는 세 갈래 길 중 두 군데는 구불구불한 재를 넘어야 한다.
그래도 한 며칠 다른 곳에 다녀올 동안에도 난 이곳이 다시 그립다. 차창을 열어두고 재를 넘으면 확실히 다르게 다가오는 그 맑고 싸한 공기가 금방 그리워진다. 쏟아질 듯 가깝게 선명한 별들이 그리워진다. 맑은 물이 흐르는 긴 하천과 누런 논 사이로 길게 난 둑길이 걷고 싶어진다. 아무리 춥다 해도 사람들의 마음까지 얼지 않았고 강원도이긴 하지만 서울 가는 직통버스가 한 시간 반이면 간다. 총부리만 겨누고 있는 곳도 아니고 늘 검문검색으로 살벌하고 괴로운 곳도 아니다. 사람 사는 곳으로 그 따뜻함이 충만한 곳이다.
나는 여기서 못해도 한 2년쯤 살고 싶었는데 그건 또 마음대로 안 된다. 늘 떠날 마음을 먹어야 하고 어디에도 붙박이로 살지 못하는 생활이 슬픈 건 이렇게 좋은 동네를 만났을 때이지만, 쉽게 사는 곳에 대한 권태가 없고 온 우리 땅을 하나씩 돌아보는 맛이 그만이라 군인아내 삶이 그리 나쁘지 않다. 나는 이제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 곧 그리워질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 다시 이곳에 올 것이다. 그때까지.... 안녕 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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