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본문
아이들 방학이 종반으로 접어드니 마음이 조급해지고 괜히 내가 할 일이 많은 것 같이 분주하다. 아무리 늦더위가 기승이라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벌써 아침저녁으론 견딜만하게 더위의 기세가 완만하게 내려앉았다는 생각이다. 입추도 지나고 다음엔 처서가 끼어있다.
소미는 할머니 댁에서 돌아온 이후 조금 있다가 양평 중미산 천문대에서 주최하고 모집하는 천문과학캠프를 2박3일 다녀왔다. 방학이면 영어캠프, 과학캠프, 예절학교, 수영캠프 등등 수많은 캠프가 난립하며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손짓을 하지만 나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방학 전부터 아파트 내 소미의 친구 하현이 엄마가 중미산 천문대 캠프가 좋다는데 두 아이 같이 보내보지 않겠느냐 제안을 해왔다. 긍정적인 답변을 해놓긴 했지만 평소 관심이 적었던 터라 막상 방학을 하고 나도 별로 적극적으로 알아볼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가 7월 말경에서야 홈페이지 들어가서 꼼꼼히 알아보게 되었다. 천문대 자체에서 주최하여 몇 년째 이어오는 캠프이며 그동안 안전사고가 없었다는 점, 한 모둠별 선생님이 모두 그곳 천문연구원들이라는 점,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다는 점, 또 집결하고 해산하는 장소가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라는 점, 게시판에 오른 참가자들의 소감이 좋았다는 점 등이 두루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미가 그 전부터 별자리나 우주에 대한 질문을 내게 해온 적이 많았고 그 부분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는 점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유치원에서 일곱 살 때 한 달 동안 한 주제를 가지고 조금씩 알아가는 교육과정이 있었는데 우주, 태양계 같은 것을 주제로 삼았던 그 한 달이 소미에겐 잊히지 않는 시간이었던 듯싶다. 자주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물었지만 내가 아는 건 소미도 아는 것이었으니(토성이 띠를 두른 행성이고 달은 지구 주위를 돌고 뭐 그러는 것...) 도무지 거기서 더 아이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1학년 때 별자리나 우주 그런 게 너무 신기하고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천문대 한번 가보자 하기만 했지, 또 그 뒤로 그 일을 추진해볼 생각을 못했다. 그런 아이에게 천문대 캠프에 가겠느냐 물으니 집안이 떠나갈 듯 환호하고 하현이랑 같이 가라고 했더니 폴짝폴짝 뛰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네가 집 떠나서 소은이와 둘이 할머니 댁은 다녀와도 식구 한 사람 없이 뚝 떨어져서 남모르는 사람들과 두 밤씩이나 자고 올 수 있겠느냐 싶었는데, 그래서 좀 의외였다.
더 놀라운 건, 이웃인 두 친구가 캠프참가를 희망해도 캠프 주최 측에서는 두루 한 명이라도 더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게 한다는 뜻으로 두 친구를 같은 조에 넣지 않는다더라 했더니, 하현이는 그럼 안 가겠다고 하고 소미는 하현이가 안 가도 혼자라도 가겠으니 보내 달라 한 점이다. 평소 야무지고 똘똘하겠다 소리는 들어도 소미는 소은이보다 나를 더 닮아서 한 소심하고 좀 낯도 가리고 쭈뼛대길 잘하니 나는 그저 신통방통하기만 해서 ‘진짜? 솜솜 혼자라도 갈 거야? 진짜? 가는 날까지 맘 변하기 없기다!’ 이러면서 재차 삼차 확인했는데 한번도 망설이지 않았다.
결국 두 아이는 함께 떠났다. 하현이는 가는 날까지 하느님께 소미와 한 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버스 두 대가 서있는 집결지에서는 두 아이 똑같이 마냥 들떠서 엄마나 동생들과 헤어지는 아쉬움 같은 건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캠프 가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비가 쏟아 붓고 맑아지는 듯하다가도 와락 쏟아지고 하는 통에 안전문제를 걱정하기보다 그야말로
‘별’ 보러 갔다가 ‘별’ 볼 일 없이 돌아올까 싶어서 그게 걱정이었다.
다행 3일간 날은 너무 좋았고 ‘하늘이 열릴 거 같지 않더니 갑자기 머리 윗부분이 활짝 열리며 백조자리, 거문고자리, 독수리자리 등 여름철 별자리가 고개를 내밀었다’는 천문대 홈페이지의 선생님 글을 읽고 ‘복 받은 소미’라는 생각을 했다. 혹 날씨 때문에 천체망원경으로도 별자리를 볼 수 없는 일이 생기면 1년 안에 가족끼리 와서 구경할 수 있는 쿠폰을 줘서 보내겠다는 말도 들었지만 그래도 천문 캠프인데 지금 봐야 제 맛 아니겠는가.
소미는 그저께 건강하고 즐거운 얼굴로 잘 돌아왔다. 가슴에 한 아름 이런저런 캠프의 결과물을 들고 와서 설명하기에 바빴다. 나는 도통 듣지도 못한 별자리를 줄줄 꿰면서 딸 얼굴 제대로 보기 전에 ‘응, 응, 그랬어? 잘했어! 정말 좋았겠다!’ 이러면서 맞장구치기에 바빴다.
나는 이번 여름방학에 소미의 조금 새로운 면을 보았다. 좋아하는 일에 대단히 열정적이며 노력형이라는 사실이다. 앞서 캠프만 해도 그렇고 수영장에 갔다가 사촌 도연이와 노는 모습을 보고도 그랬다. 동갑내기 사촌인 도연이는 2년간 꾸준히 수영을 배워서 그야말로 물찬 제비처럼 이런저런 종목을 아주 잘했다. 얼마나 그 모습이 예쁜지 내가 다 감탄을 해서 도연이 보고 접영도 보여주라, 평형도 보여주라 이러면서 주문을 하고 박수를 쳐주었다.
그런데 소미는 평소 같으면 욕심은 있지만 ‘치이~’ 하면서 샘이나 내고 말 것을 도연이가 하라는 대로 잡아주는 대로 배우려고 하고 가르쳐 달라하고 했다. 그러더니 두 시간 만에 물에 떠서 폼도 꽤 그럴싸하게 한 다섯 번 정도 팔을 휘저으며 나가는 걸 보고 놀랐다. 금방 되었던 건 아니고 안전요원이 쉬는 시간을 알리는 호루라기 불기 전까지는 좀체 밖으로 안 나오면서 멀찍이 한 구석에 가서 그렇게 열심히 혼자 연습을 하는 걸 봤다.
그 모든 걸 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만큼은 이 열정, 이 노력 그대로 쭈욱 가지고 갈 수 있길 바란다. 그래야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위기나 어려움 속에서도 힘을 내고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분명 열정은 있는 사람 같은데(뭐에 하나에 빠지면 정신 못 차리고 스스로 빠져나오는 데까지 시간도 꽤 걸리는데, 남편도 그걸 쫌 두려워하는 듯 ^^*) 그걸 안으로 울고 웃으며 즐기는 단계에서 그칠 뿐, 그 에너지를 치열한 노력으로 치환시키지 못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점이 소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내 이력이다.
내가 낳았지만 딸은 분명 나와는 다르다. 내가 낳은 딸들은 너무 신중하거나 너무 소심하거나, 용기가 없거나, 눈치를 보거나, 아니면 너무 게으르지 말고 때때로 화끈하게 저지르고 펼치고 일으키고 그러면서 교통정리하고, 그렇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내가 그렇게 하도록 더욱 살살 부추겨야 할 필요를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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