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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

키워드로 따라가는 특별한 제주여행 (2)

M.미카엘라 2005. 7. 6. 17:34

 

 

* 스타일

사람들마다 여행하는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어디에 중요함을 두느냐에 따라 보는 것도 조금씩 다르고 느끼는 것도 다르고 추억도 다르다. 나와 남편은 자연경치 보는 것을 좋아하고 좀 느끼거나 배울 만한 볼거리를 찾는 편이다. 아이들이 커가니까 억지로 이 여행을 통해 교육시키겠다, 배우게 하겠다는 팍팍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부모로서 자연스럽게 챙기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젠 좀 아이들도 자연풍경만 휘~이 둘러보고 오는 길이라도 짜증을 덜 내고, 눈을 확 사로잡을 볼거리가 없어도 웬만한 거리는 즐겁게 잘 걷고 잘 따라온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주도하게 된 분은 우리와는 좀 달랐다. 앉아서 쇼 같은 걸 보는 거 좋아하시고 걸어서 구경하고 그런 일엔 관심이 덜하셨다. 물론 우리들의 의견을 들으시니 크게 불만은 없었고 갈등 같은 건 더더욱 없었지만, 제주에 처음 내려서 찾아간 곳이 중국기예단의 쇼무대였다. 고난도 공중묘기에 좁은 철제 원 안에서 보여준 오토바이 묘기는 아슬아슬 발바닥을 간질이고 등골을 서늘하게 했지만, 제주 땅을 밟자마자 칙칙하고 퀴퀴한 냄새나는 반 지하 공연장에 머무르는 게 어쩐지 상큼하지는 않았다.

 

아이들 때문에 어찌 되었든 쉬엄쉬엄 가는 여정을 택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의가 없었다. 좀 걸어야 하는 여행지를 갔다면 다음은 좀 앉아서 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충분히 동감하는 부분이었지만 이틀째 되는 날, 비자림을 갈 때는 참 눈치가 보였다. 이번에 여러분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니 만큼 우리 식구가 가본 곳만 간다 하더라도 좋겠지만 비자림과 마라도는 꼭 가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해두었었다.

 

비자림은 비자나무가 2천여 그루 빽빽한 원시림이었다. 그 숲에 난 오솔길을 따라 한 2킬로 쯤 걸었다. 걷다보니 다른 집 아이들에겐 무리가 되는구나 싶어서 미안하고 조금은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비자림 자체는 너무 좋았다. 길은 녹두알만한 자잘한 벽돌색 원예용 돌 같은 것이 쫘악 깔려있어서 걷기 좋았다. 그냥 흙길도 좋았겠지만 조금만 비가 와도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길 테고 질척거릴 거라 생각하니, 어차피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바퀴 걷고 돌아가는 곳이니 이런 배려도 나쁘지 않았다. 숲이 우거져 그늘이 짙고 서늘한 기운, 조용한 오솔길 모퉁이마다 간간이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아있으려니 바람에 부딪치는 비자나무 소리가 오감을 깨우고 내 몸과 정신 구석구석을 씻어주는 느낌이었다.

 

남편과 소미는 진작부터 신발과 양말을 벗어들고 앞서 걸으면서 부녀지간에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수령 813년 된 ‘할아버지 비자나무’(소미표현)를 정점으로 한바퀴 돌아 나오는데 다음에 우리 식구끼리 오게 되면 또 오자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긴 입장료도 없고 사람도 적어서 참으로 좋았다. 중국기예단 공연관람을 추진하셨던 분은 3D입체영화관에 못 가신 걸 내내 아쉬워 하셨다지만 그건 서울 어디쯤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 초콜릿

셋째 날은 오후에 두 개의 박물관을 갔다. 초콜릿 박물관과 테디베어 박물관. 초콜릿 박물관은 폐교를 개조해 만든 것 같은데 갈색 돌들로 중세시대 성처럼 감싼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겨우 겉에서 사진 두어 장 찍었는데 카메라 배터리가 다 되는 바람에 실내에서 찍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여기서 아이들이 참 좋아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초콜릿의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 외국 초콜릿, 우리나라에 만들어진 초창기 초콜릿, 초콜릿과 어울리는 다양한 양초, 인형 같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자판기 커피를 빼거나 초콜릿을 사서 먹으며 맘껏 쉴 수 있는 예쁜 카페, 두꺼운 통유리를 통해 방부제 없는 수제초콜릿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맛볼 수 있는 가내공장(?) 등 어느 것 하나 아이들 눈을 사로잡지 않는 게 없었다. 수제초콜릿은 아릴 정도로 달아서 싫은 시중의 초콜릿과 달리 단맛이 훨씬 덜하고 은은하게 고소한 풍미가 더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에겐 작지만 눈으로 먹어도 아까울 예쁜 초콜릿 하나씩을 사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박물관은 한 은행에 근무했던 여성이 20여 년간 가진 열정적인 취미로 탄생시킨 것이다. 해외를 자주 드나들었던 남편 덕분에 그녀의 취미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되어 나왔지만, 이런 일은 단순히 부유하거나 돈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입장료도 없고 초콜릿 조금 팔아서 무슨 영화를 보겠는가. 물론 삶의 여유가 있으니 이런 일도 하겠지만 일단은 정말 좋아하고 미치지 않았으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한 사람의 경제적인 풍요가 부럽고 인상적이기보다 그 사람의 열정이 엿보여 더욱 아름다운 곳이었다.


 

 

 

 

 

 

 

 

 

 

 

 

 

 

 


 

 

 

 

* 곰 인형

중문단지에 있는 테디베어 박물관은 2년 전 와본 곳이었지만 다른 집 아이들을 꼭 보여주고 싶어서 내가 가자고 은근하지만 집요하게 부추겼다. 곰 인형 몇 개 갖다놓은 곳 뭐 볼게 있겠느냐 하시는 의미로 안 가고 싶어 하셨고 정작 엄마들도 크게 호응하지 않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저희 아이들은 2년 전에 와서 보았다, 저희는 안 보아도 되지만 규빈이, 지우, 채연이에게 잊을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다, 꼭 보게 해주고 싶다, 가보면 어른들이 더 즐거워한다, 고 말했다. 남편도 거들었다. 아이들 생각한다면서 거길 안 가면 어딜 가냐고. 일단 가자고.


 

그런데 공교롭게도 멀리 제주도에 와서 위기의 날을 맞아야 하는 곰 인형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네 살짜리 지우의 낡은 곰 인형이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손에 놓지 않고 끌고 다녔다는 작은 곰은, 코고 입이고 다 닳아서 낡디 낡았건만 지우는 이 먼 제주도까지 손잡고 데려왔다. 빨지도 못하게 해서 잘 때 몰래 빨아서 머리맡에 던져둘 정도라고 한다.
“클났다 이 곰인형! 거기 가면 깔린 게 곰 인형인데 오늘 운명의 날을 맞았구나!”

우리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박물관엘 갔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정신이 없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테디 베어로 재현해놓은 군인 곰 인형에 지우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독일통일, 영국의 홍콩반환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곰 인형들로 섬세하게 재현한 것은 물론, 비틀즈,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테레사 수녀님 같은 역사적 인물 또한 완벽한 의상으로 표현해서 아이들보다 어른들을 오히려 사로잡았다. 나는 전에도 그랬지만 이 박물관의 입장료 6천원이 아깝지 않았다. 대기업 쪽에서 세운 박물관답게 돈을 아깝지 않게 만들었다. 우리는 재작년에 와서 볼 수 없었던 기획전이 크게 열리고 있어서 더욱 좋았다. 소미는 이번 제주여행도 여기가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기념품 가게는 크다. 그야말로 온통 곰탱이 상품이 넘쳤다. 우리는 지우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큼직한 갈색 곰을 턱 집어 들더니 이거 하겠단다. 아, 헌 곰이 버려지는구나 하는데, 지우는 헌 거 새 거 두 개 다 하겠단다. 아빠가 살살 달래서 작은 곰으로 바꿔 사주고 돌아왔다. 그런데 재밌는 건 지우가 그날로 새 곰을 버렸다는 사실이다. 자기는 그래도 낡은 곰 인형 하겠다고 하더란다. 정말 귀여운 녀석이다.

 

 


 

 

 

* 참외 얼굴

마라도 가는 길은 험난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파도가 좀 셌다. 밥 먹고 10시 배를 타자고 차에 오를 때부터 영 낯빛이 안 좋았던 소은이는 급기야 토하고 말았다. 어린 지우 역시 종알종알거리며 유쾌하게 타더니만 곧 토하고 말았다. 나는 가만있었으면 괜찮았을 것을 휴지 가지러 간다 뭐한다 하면서 고약한 냄새 맡으며 흔들리는 배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더니 속이 메슥거려 헛구역질을 몇 번 했다. 남자도 얼굴이 허옇게 변할 정도였으나 그 난리 중에도 쌩쌩한 아이들이 둘 있었으니 소미와 규빈이었다.

 

소은이는 다 토하고 나서 게슴츠레한 눈을 들어 내게 물었다.

“엄마, 내 얼굴 참외 얼굴이야?”

"응. 근데 괜찮아. 지금 다 참외 얼굴이야.“

 

30여분을 타고 도착한 햇빛 좋은 마라도에서 우린 감탄하긴 커녕 이리저리 널브러져서 한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병이 나서 알토란같은 온전한 이틀의 시간을 엄마와 고스란히 호텔에서 보낸 9개월짜리 순수 생각이 났다. 누나인 채연이는 엄마와 순수 없이도 둘째 날은 아빠와 함께 우리를 따라나섰지만, 마라도 가는 셋째 날은 순수네 식구 네 명이 모두 호텔에 남았다. 우린 차라리 채연이는 안 오길 잘했다고 입을 모았다.

 

남편과 나는 금방 좋아졌다. 뭉게구름이 가득한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초록색 너른 목초지가 펼쳐진 마라도는 작기 때문에 쭈욱 걸어서 구경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맑은 공기 마시며 걸으면 다들 좀 나아질 것 같아서 좀 걷자 했지만 남편 말고는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탄 것이 섬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오토바이 택시였다. 여덟 명이 다 탔다. 아, 이런 거 타고 후다닥 빙 돌면 재미없는데……. 그런데 애들은 바로 그때부터 생기가 나기 시작했다. 흐흐. 오토바이를 모는 아저씨는 이곳이 고향이라는데 오늘 같은 날은 뱃사람들도 멀미하는 날이라고 하셨다. 돌아갈 때는 파도를 거스르지 않고 타고 가니까 덜할 거라며 안심시키셨다.

 

작은 섬 마라도에서는 전교생 네 명인 가파초등학교 마라분교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할 수 있다면 이 네 명의 아이들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요렇게 작은 학교에서 두 명씩 마주 앉아서 무슨 생각하고 어떤 꿈을 꿀까. 작은 섬에서 나고 자라서 요 섬만한 크기의 꿈 안에 갇혀 있을까, 아니면 섬 바깥으로 펼쳐진 바다만큼 큰 꿈을 가지고 있을까.

 

돌아오는 길에 또 잠시 참외얼굴이 될락말락했던 소은이는 다시는 배를 안 타겠다고 다짐했다.

 

 

 

여행 내내 칭얼대지도 않고 생글대며 종알종알 쉴새없이 말하던 지우가 멀미로 완전히 말을 잃었다. 아빠 손에 이끌려 선착장에서 마라도로 오르는 지우.

 

 

 

이런 날은 뱃사람도 멀미 한다는데, 멀미로 지친 우리는 만원 주고 여덟명이 이 오토바이 탔다. 애들은 이 오토바이 타고 멀미 안녀~엉 했다.


 

 

 

 

마라분교 앞 세계를 향한 특별한 이정표.

 

 

 

* 밥

우린 이번 여행에서 먹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했다. 삼시 세끼 밥 꼭 챙겨 먹어야 다니는 게 즐거운 분들이 집집마다 있어서(우리 집은 소미) 그야말로 매번 성찬이었다.

 

“난 어릴 때 밥을 너무 굶어서 지금은 밥을 꼭 먹어줘야 돼.”

우스개 소린지 진짜인지 모르지만 지우 아빠의 이런 소리에 모두 웃고, 제주갈치조림, 오분자기가 쬐끔 들어간 해물뚝배기, 냉면과는 또 다른 특이한 밀면, 세 번째 날 저녁에는 황돔 회까지 거하게 먹었다. 규빈이나 지우는 아빠가 밥을 다 먹지 않고는 자리에서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참 좋은 점은 확실히 밥을 잘 챙겨먹으니 아이들도 입만 깔깔한 주전부리 덜하고 기운 내서 잘 따라다닌 것 같다. 아이들이 고만고만 어린 것에 비하면 정말 칭얼거리는 녀석 없이 너무 잘 다녀줬다.

 

회를 먹은 날 밤엔 순수가 잠든 후 호텔 지하 노래방에서 놀았다. 꿋꿋하게 가져온 군납 캔맥주 들고 연신 건배! 얌전하고 숙기 없던 통통구리 네 살짜리 채연이의 현란한 춤 솜씨에 우리 모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날렵하진 못해도 춤사위가 요즘 트렌드와 딱 맞았다.

 

 


* 축하

제주에서 3일째 되는 날. <국방일보>에 우수교관 표창에 대한 기사가 사진과 함께 났다. 그 이후 전국에서 ‘이 냥반’들을 아는 국군들의 축하메시지가 쇄도했다. 문자메시지에 전화에. 누구는 얼굴 크게 나와서 좋겠다는 둥, 누구는 이마하고 ‘머리통’만 나왔다는 둥, 신문 한 장을 들고 세 남자가 난리였다. 생전 매스컴 탈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 감격하는 눈치다. 나? 나도 좀 나왔다. 눈 아래로 내리깔고 빡 긴장한 얼굴. 감격하진 않았다. 뭘 그 정도 가지고스리… 촌스럽게… 흐흐.


 

 

* 옥의 티

아, 좋았다. 너무 좋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날(1일) 아침 제주 ‘공수보급소’(‘공항’이라고 하지 않고 공수보급소라 하더라)에서 전화가 왔다. 중부지방에 호우주의보 내리면서 기상악화로 서울까지 갈 수 없단다. 김해공항까지만 가서 내려줄 테니까 알아서 가시라나? 아니 이런 배신이 있나.... 그럼 부산에서 버스 타고 가라고라?

 

그러나 일단 ‘뭍’으로 가는 것이 중요했다. 8시 20분. 12시 비행기라 해서 여유 있게 눈 떴는데 9시 반까지 공항으로 나오라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건 거의 짐을 쓸어 담는 수준으로 가방을 챙겨 나왔다. 구경보다 중요한 밥? 그거 그날 아침은 못 먹었다. 다들 제 몸 돌볼 사이 없이 짐을 쓸어 담아 나온 이후 공수보급소에서 빵하고 우유를 먹었다. 제주공항 이쪽 끝에 있는 화물공항에서 비행기가 출발하는데 그 주변엔 상점이 없건만 남자들이 어디서 봉지 빵을 구해왔다.

"말하자면 기분 나쁘것지만 우린 ’화물‘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린 빵을 먹으면서도 연신 농담을 하면서 킬킬댔다.

 

10시에 비행기가 떠서 부산 김해공항에 내리니 비구름이 바로 부산에 덮친 꼴이었다. 기차역과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우리를 데려다주려고 대기하고 있는 공군버스를 타자마자 그렇게 비가 퍼부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 뜰 당시 제주만 해도 햇빛이 반짝였는데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터미널에서 표를 끊고 아침 겸 점심을 먹는데 뉴스에서 민항기도 몇몇은 결항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웬 걸, 경남을 벗어나자 길은 보송보송하고 해까지 비췄다. 아깝지만 어쩌랴. 평일이라 길도 안 막히고 빗길에 미끄러운 길 걱정할 일도 적으니 쏟아지는 잠에 내리 몸을 맡길 수밖에. 휴게소도 안 내리고 우리는 그렇게 잠 속에 빠져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아무튼 이번 여행은 육,해,공 모두를 이용한 특급여행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 7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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