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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원

도깨비 빤스

M.미카엘라 2003. 10. 14. 12:52

우리 나라가 키울 산업이 어디 IT산업뿐인가 싶다. 나는 섬유산업이야말로 탁월한 경쟁력을 가진 키울 산업이라 생각한다. 대구가 섬유박람회를 유치하면서 세계 섬유도시로 발전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저 그런가보다 하는 게 사실이다.

 

나는 어제 밤 두 시간에 걸쳐 딸들의 팬티를 손봤다. 무려 아홉 장의 팬티에 고무줄을 넣었다. 비온 날 다음날 미끄럼을 타서 벌건 녹물 흔적이 좀 남아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분홍팬티, 노랑 팬티, 하양 팬티 골고루다. 요것들이 일제히 시위하듯 고무줄이 늘어지기 시작했는데 허리고무줄은 물론이고 다리를 넣는 부분까지 다 다시 해 넣어야 했다.

 

만 3년을 넘긴 팬티도 몇 장 되었는데 고무줄이 그렇게 망가졌는데도 팬티 자체는 멀쩡하니 버리기도 아깝고 버려서도 안되겠다 싶었다. 비칠 듯 얇아진 부분도 있었지만 여간해서는 쉽게 구멍이 날 것 같지 않다. 일기 초반부터 뜬금없이 섬유산업 운운했던 까닭은 바로 이 질긴 팬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깨비 빤쓰는 질기고도 강해요. /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었어요. / 질기고도 강해요. / 천년을 입어도 끄떡없어요. / 질기고도 강해요."

 

학교 다닐 때 뭐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낄낄대기도 했는데 어젯밤 팬티 고무줄을 끼우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어서 다시 혼자 낄낄댔다. 그러면서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내 바지에서 떨어진 호크, 남편 군복 바지 주머니에서 떨어질랑말랑하는 단추, 소미 원복에서 떨어진 단추, 구멍난 소은이 타이즈까지 완전히 재정비했다.

 

나는 정말 우리 나라 옷의 소재가 좋다는 걸 자주 느낀다. 특히 아이들 옷의 면제품은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옷을 기준으로 볼 때 미국 면제품, 영국의 면제품, 일본의 면제품을 두루두루 얻어 입히거나 디자인에 끌려 인터넷에서 사 입히거나 해보았지만, 역시 우리 나라 면보다 못했다. 너무 뻣뻣하거나 너무 후들거리거나 해서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어디서 난 목화로 어디서 가공했느냐(요즘 하도 중국이나 동남아 여러 나라에 OEM방식의 생산이 많긴 하다), 몇 수 면이냐, 어떤 브랜드냐를 꼼꼼히 따지자면 더 복잡해지지만 일단 'Made in'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특히 아기들 내의나 속옷 제품의 면은 우리 나라 제품이 아주 좋다. 살이 비칠 듯한 얇은 면도 쫀쫀하고 톡톡한 느낌이 강하다. 아가방이나 베비라 같은 브랜드 의류는 말할 것도 없고 아주 값싼 제품만 아니라면 품질이 고른 편이라는 생각이다. 외국에 사시는 교포들이 우리 나라에 오면 아기들 옷은 물론이고 어른들 속옷이나 내의 종류를 많이 사 가지고 간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분들이 그 나라에 그런 제품이 없어서 고국에서 사가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소미와 소은이는 짱짱하게 새로 고무줄 넣은 팬티를 보고 갑자기 팬티가 많아졌다고 좋아했다. 먼저 한두 개 늘어진 팬티를 따로 두었다가 이것들까지 일제히 다 손을 봐서 내놓으니 최근 잘 안 입던 것들이 새삼 반가운 눈치였다. 정말 두서너 개 남겨놓고 팬티가 모두 이 지경이었던 터라, 어서 고무줄을 끼워 넣어야 하는데 하고 마음만 바빴던 일을 드디어 해치우고 나니 나도 마음이 시원하다. 적어도 앞으로 1년 이상은 너끈하리라 생각한다. 정말이지 대한민국 빤쓰는 도깨비 빤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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