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엄마의 틀 본문
아이들을 어머님 집에 보낸 지 한 사흘 되었다. 아이들 방학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머님도 좋아하시고 나 역시 집에서 휴가를 맞은 기분이 되니 앞으로 한동안 여름과 겨울 두 차례 한 일주일씩 이런 시간을 보내게 될 듯하다.
그런데 이번 ‘휴가’는 좀 남다르다. 먼저 한 해를 보내고 다시 새해를 맞는 특별한 시간에 혼자 있게 되었다는 점과, 때맞춰 내 육아스타일을 호되게 점검하는 기회를 맞았다는 점이다. 소미와 소은이에게 “우리 딸들 내년에 만나! 소미는 여덟 살 소은이는 여섯 살 되어서 만나는 거야”하면서 헤어지고 나서 남편과 나는 같은 생각으로 함께 우울해지고 있었다.
아이들이 할머니 집에 가기 전, 나와 남편은 한 아이씩 붙들고 한글공부 하는 교재의 뒷부분 도와주고 있었다. 나는 방에서 소은이를, 남편은 거실에서 소미를 앞에 두고 분위기 좋게 놀이 하듯, 수다 떨듯 그렇게 공부를 했다. 저녁을 먹고 좀 늦은 시간에 시누이집으로 가는 차 속에서(시누이가 아이들을 어머님 집에 데려다 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잠들고, 남편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요지는 오늘 소미를 가르치다 보니 한 가지 문제점이 보이더라는 말이다. 교재가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게 구성되어 자유로운 상상력을 끄집어내주기에 크게 부족하지 않은데도, 소미는 지나치게 정답만 찾으려고 하고 지극히 사실적인 대답 한 가지 이외에는 더 생각을 끄집어내지 못하더라 하는 것이었다.
몇 차례 남편이 이 책은 정답이 없다, 소미 네가 말하는 게 모두 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도 소미는 어른들이 원하는 대답만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맨 뒷장에 해답이라고 해놓은 부분을 자꾸 슬쩍슬쩍 보고 싶어했단다(내가 이 교재에서 가장 맘에 안 들어 하는 부분이다. 엄마의 이해를 돕자고 해놓은 것인데 아이들에게는 도리어 해가 되는 것 같다).
이 문제는 아무리 남편의 말이라도 처음 듣고 처음 생각해본 문제라면 나도 흘려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두어 달 전부터 나도 소미에게 그런 부분이 두드러져 보인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 또래의 아이다운 상상력이 적고 원칙적이고 어떤 틀에 쏙 들어가는 생각은 잘 하는데 정답과 완벽을 고집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지난 번 칼럼에서 맏이의 원칙주의 성향을 아무리 고려한다 해도 아직은 어린애인데… 싶은 것이 맘에 걸렸다.
한글 선생님과 유치원 선생님의 소미에 대한 말씀도 비슷하다. 아주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잘해서 나무랄 데가 없는데 너무 잘하려고 하다보니 선생님의 조그만 지적이나 다른 의견에도 상처를 받는 것 같다는 말을 조심스레 하셨다. 한번은 유치원에서 70점 맞은 받아쓰기 시험지를 들고 와서는 내가 몇 차례 괜찮다, 잘했다고 하는데도 한참 속이 상해 어쩔 줄 몰랐다. 우리글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틀리기 쉬운 게 많다, 어른들도 이 문제로는 백점 받기 힘들다, 학교도 안 들어간 어린이가 이 정도면 훌륭한 거다 하면서 위로를 하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때에 갑자기 여고 때 한 친구가 내게 했던 나에 대한 한 문장의 평가가 새삼 떠올랐다. 내가 직접 들은 건 아니고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으며 또 그다지 나쁜 평가는 아니었는데도 은근히 오랜 세월 마음에 짐이 되었던 그 말은 '재형이는 교과서적이다’라는 것이었다. 좋게 말하면 바른생활하는 논리적인 사람이라 평가될 수 있지만 나쁘게 들으면 이론만 내세우며 창의력 없이 답답하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내가 그때 후자로 해석했던 건 당연하다.
요즘 들어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 뼛속 깊이 찌르는 건 소미가 이런 내 영향을 지극히 많이 받았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반성은 아이와 어떤 일로 일전을 벌이고 나서 곧 후회하는 다소 형식적인 평소의 흔한 자책과는 좀 다르다. 근본적으로 내 육아스타일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교과서적이다. 그리고 교과서적인 틀 속에 아이를 가두고 있다. 내가 남들에게 어떤 엄마로 보일 것인가에 신경을 많이 쓰며 아이의 즐거움과 행복과 여유를 가로채고 내 식대로 우격다짐으로 끌고 온 부분이 많았다. 성정이 급한 부분도 한몫을 해서 빨리 빨리 해주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윽박지르고 어르고 한 부분은 또 얼마인가.
아이들 보내놓고 우리 부부가 참석한 가족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또 한수 배울 기회를 맞았다. 내가 애들을 잘 기르고 있다고 자부한 이면에 그것이 얼마나 내 식대로였는가를 뼈아프게 생각하게 한 일이었다.
남편의 친구들(결혼 전 성당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니 나에게도 그냥 친구 같은 사람들이다)과 가족모임이 있는 집을 가기 전, 먼저 다른 한 친구 집에 들러 같이 가기로 했다. 그 H씨 집은 소은이와 동갑내기인 남매쌍둥이가 있다. 그 중 여자아이인 다예의 옷입기에 문제가 생겼다. 다예는 잠자리 날개 같은 망사치마가 붙은 소매 없는 분홍색 드레스를 입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예 엄마는 “그거 추운데?”라는 말 한마디만 하고 분홍색 반소매 티셔츠 위에 그냥 입으라고 했다. 그리고 모자 달린 두툼한 패딩점퍼를 입혔다. 사실 너무 어울리지 않았지만 나는 순간 나라면…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면 그 옷을 입으면 안 되는 논리적인 이유 서너 가지를 내밀며 끝끝내 아이 눈에 눈물을 뺄지언정 그 옷을 못 입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옷은 외투를 벗으면 춥다, 이 옷을 입을 겉옷이 마땅치 않다, 이 옷은 그런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등등을 대면서 결국 내가 입히고 싶은 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혀 데리고 나갔을 것이다. 그 곳은 또 오랜만에 아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오는 특별한 자리 아닌가. 나 같은 경우 아이와의 갈등이 필연적인 사건이 될 만한 일이다.
내가 이런 느낌을 분위기가 무르익은 다음 여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다예 엄마에게 하니,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만 아니면 대부분 허용한다”라는 말로 받았다. 나는 사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아닌데도 그동안 지나치게 통제하고 엄격하게 굴었다. 그게 내 마음에 들고 그게 옳은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르고 옳은 일이라고 무조건 끌고 가르친 것이었다.
남편도 그날 있었던 일을 돌아오며 한 마디 했다. 친구 L씨의 딸 초등학교 2학년 딸 희완이가 아빠들끼리 재미로 하는 카드놀이에 끼어들 참으로 제 아빠 무릎에 앉더라는 것이다. L씨는 희완이를 내치기는커녕 “응, 그래, 이거 낼까? 아니면 이거?”하면서 아이와 속닥속닥 재미있게 의논을 하더란다.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우리 집에서 희완이가 고스톱을 제일 잘 하거든”하면서 씩 웃기까지 하는데, 남편은 거기서 나처럼 자기라면....했다는 것이다.
애들이 하는 놀이가 아니다, 저 방에 가서 놀아라 했을 것이고 자기는 즐겁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아이가 그래도 자꾸 무릎에 앉으려고 하면 ‘어허, 그래도?’ 하면서 꾸중하는 눈을 무섭게 떴을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애초부터 애들 앞에서 카드하는 것이 못마땅했지만, 무작정 오랜만에 만난 남자들의 놀이를 반대할 수 없어서 참았다고 했다.
L씨와 그의 부인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가장 쳐주는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온 부부다. L씨는 고등학교 현직교사인데 이 부부의 육아스타일은 느긋하고 여유 있고 소박하다. 우리 부부의 스타일이라면 카드놀이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면 아예 아이들 앞에서도 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 부부는 명절을 맞는 가정에서나 그날 모임에서나 그냥 가볍게 하는 어른들의 놀이, 원하면 가르쳐주고 함께 할 수 있는 그냥 보통의 ‘놀이’ 정도로 여기며 가볍게 즐겼다.
그 부부의 두 딸 육아법은 그렇게 편안하고 어른이 억지로 만든 틀이 없었다. 두 딸 역시 예의 바르고 구김이 없다. “소미, 소은이 없으니까 찬찬히 어느 집 애들이 제일 잘 컸나 봐야지”하면서 갔던 길, 나는 이 집 저 집에서 고루 두루 한 가득씩 배워오기만 했다. 나와 남편은 우리가 지나치게 우리 식으로 엄격했음을 시인했다. 아이들 없이 지내면서 다른 친구들이나 다른 이웃들의 자식 기르기를 객관적인 눈으로 관심 있게 지켜본 것도 도움이 되었다. 이제 만 4년 육아일기를 쓰면서 이곳에 드나드는 분들의 칭찬만 먹고 살다보니 내가 아주 잘 하고 있다는 즐거운 착각이 심했던 듯싶다.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되도록 많은 걸 허용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