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어느새! 그러나 홀로 꾸는 꿈 본문
아주 잠깐씩이지만 이제 소미와 소은이는 나 없이 둘이서도 잘 지낸다.
작년 이때만 해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PX(요즘은 어엿하게 '충성마트'란 간판을
달고 있는데 여간해서 입에 붙지 않는다)를 가려면 소미 옷 입히고 신발 신기고, 소은이
옷 입혀서 들쳐업고 손엔 지갑과 장바구니를 움켜줘야 했다. PX에서 쇼핑하는 시간보다
옷 입히고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 때문에 추울 땐 한번 집밖을 나서는 일이
끔찍할 정도였다.
그래서 남들에게 부탁하거나 남편이 퇴근한 후 문닫을 시간에 임박해서야 총총 다녀오기
일쑤였다. 또 소은이를 재워놓고 소미만 옷 입혀서 데리고 나서기도 잘했다.
헌데 이제 소은이는 손을 흔들고 소미의 "엄마, 빨리 다녀오세요. 나 안 울 거예요.
또 소은이 잘 데리고 있을 게요"하는 배웅을 받으며 문을 나서는 데까지 발전했다.
처음엔 한 15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전화가 온다면? 누가 집 문을 두드린다면? 하는
가정 아래 일장 교육을 하고 나서도 마음이 그리 느긋하지만은 않았다.
혹시 소은이가 울지 않을까 싶어서 서둘러 돌아오면 두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엄마!"하고 반기거나, "엄마 나 울지도 않고 잘 있었어요" 하거나, 잠깐 반기긴 하면서도
서로 지들 놀던 대로 희희낙락했다. 그렇게도 낯가림이 심하고 잠시잠깐도 나와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하더니만 '어느새!'하는 생각에 주춤 놀랐다.
일요일엔 남편과 소미, 소은이가 안성에 갔다. 오후 2시에 집을 나서서 저녁 8시가
다 되어 돌아왔는데, 아이들도 생기가 있고 남편도 아이들 때문에 힘든 기색은 없었다.
물론 안성을 갈 땐 어머님과 외할머니(남편의 외할머니)가 동행하시고 돌아올 때만
셋이었지만, 소은이가 나를 그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서 보내긴 처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은 소미를 안고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런 말을 했다.
"소미야, 넌 참, 넌 참 착하고 데리고 다닐 만하다. 하나도 나무랄 일이 없어."
나는 소미 걱정은 안 했던 터라 소은이는 어땠느냐고 채근을 했다. 어느 정도 예상대로
먹을 것 주면서 데리고 다니니 그저 신이 난 눈치더라고 했다. 카시트에 앉혀놓고
안전벨트도 매지 않았는데 까불거리다가 앞에 이마를 꽁 부딪친 것 말고는 좋았다고
했다. 갈 땐 '이박사' 노래를 좋아해서 그걸 틀어주니 고개도 까닥거리고 다리도 흔들거리더라
했다. 합격점이었다.
그리고 오늘 낮. 성당에 새로운 교우가 이사를 와서 여럿이서 가정방문을 해야 했다.
잠시 놀던 바로 옆집에다가 소은이를 두고 한 시간만에 돌아왔는데, 또렷한 소리로
"엄마다!"하면서 나를 반겼다. 소은이는 참 순하다고 이웃의 아기엄마가 말을 해주는데
'음, 그래 이제 좀 순한 걸 알겠다' 싶었다.
좀 있다가 바로 소미가 미술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어 집으로 오려다가 이내
생각을 바꿨다. 내 어찌 하나 보자 하고 다시 소은이를 둔 채 소미를 데려 오자 하고
나왔는데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런데 소미가 또 걸작이었다.
"엄마, 초이가 엄마한테 허락 받고 우리 집에 놀러온댔어요."
"그래? 그럼 어쩌지? 소은이가 수정이 이모네 있는데. 엄만 소미랑 같이 갔다가
조금만 더 놀다 오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수정이 이모네 간 거라서."
"그럼 엄마만 가세요."
"정말? 그래도 돼? 혼자서 초이 기다린다고?"
"그럼요, 초이가 우리 집에 온댔는데요. 나요, 혼자도 잘 있어요."
요즘 과시하는 걸 꽤 즐긴다.
"그래? 그럼 좋아. 하지만 초이가 좀체 안 오면 그냥 문 잘 닫고 수정이 이모네로 와.
알았지?"
옆 통로인데다가 또 1층이라서 우리 집에서 찾아오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터라 안심하고
소은이에게로 돌아왔다. 우리 둘째는 여전히 잘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새 이렇게 크고 있었다. 소미는 벌써 다섯 살인데 잠깐 혼자 있는 게
무어 그리 대수라고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동생 일찍 본 탓에 어리광 많고 잘 삐지고
잘 울고 노여움 잘 타던 아이로선 큰 변화였다. 두 아이 모두 꽤 오랫동안 모유를
먹고 크느라 아기 때부터 좀체 나와 떨어지는 훈련을 할 기회가 적기도 했는데 말이다.
남편은 키재기 자 붙여놓은 데서 한 달에도 몇 번씩 아이들을 세워놓고 키를 재보지만
겨우내 두 아이는 실제 키보다 마음이 더 쑤욱 큰 것을 느낀다. 초이 엄마는 소은이를
봐 줄 테니(초이 동생은 또 소은이와 친구다) 운전면허 낼 수 있게 학원 다니라고
용기를 줄 정도가 되었다.
어떤 분은 마음이 가벼워지면서도 좀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내 친구도 네 살
딸애를 놀이방에 처음 보내는데, 가자마자 너무 좋아하며 자기가 가는지 마는지 신경도
안 쓰고 너무 잘 노는데 서운하더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자기가 그토록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는 자책과 함께.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사실 난 그렇지가 않다. 서운하지 않느냐고 묻는 말씀에 내
엄마노릇에 흠 될까봐 대답은 "네" 했지만, '나 이거 엄마 맞아?'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운함이 없었다. 그토록 내가 육아에 지쳐있었나? 언제나 '자유부인'이 되어보나
하고 안달 난 여자에게 어떤 빛이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아직 좀더 서운한 맛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까닭을 더 설명할 길은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소미, 소은이가 제법 컸구나
하는 걸 문득 깨달을 때면, 앞으로 아이들이 다 컸을 때 나를 위해 써야 할 많은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미리부터 마음속으로나마 손에 잡히지도 않는 준비를
한다고나 할까.
아직 뚜렷하게 구체적인 계획이 선 그 무엇도 없다. 그럴 시간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중년 이후의 나를 '빈 둥지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하고 쓸쓸하고 허전한 채로 늙게
만들진 않겠다는 생각만 있다. 늙은 나를 위로하고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일들을
찾아야 할 텐데 하면서.
바쁘다, 양재형! 아직도 손갈 일이 무수히 남은 두 딸 데리고 노후의 정신적인 허전함까지
챙기려 들다니. 쯧쯧, 피곤도 하겠다.
작년 이때만 해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PX(요즘은 어엿하게 '충성마트'란 간판을
달고 있는데 여간해서 입에 붙지 않는다)를 가려면 소미 옷 입히고 신발 신기고, 소은이
옷 입혀서 들쳐업고 손엔 지갑과 장바구니를 움켜줘야 했다. PX에서 쇼핑하는 시간보다
옷 입히고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 때문에 추울 땐 한번 집밖을 나서는 일이
끔찍할 정도였다.
그래서 남들에게 부탁하거나 남편이 퇴근한 후 문닫을 시간에 임박해서야 총총 다녀오기
일쑤였다. 또 소은이를 재워놓고 소미만 옷 입혀서 데리고 나서기도 잘했다.
헌데 이제 소은이는 손을 흔들고 소미의 "엄마, 빨리 다녀오세요. 나 안 울 거예요.
또 소은이 잘 데리고 있을 게요"하는 배웅을 받으며 문을 나서는 데까지 발전했다.
처음엔 한 15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전화가 온다면? 누가 집 문을 두드린다면? 하는
가정 아래 일장 교육을 하고 나서도 마음이 그리 느긋하지만은 않았다.
혹시 소은이가 울지 않을까 싶어서 서둘러 돌아오면 두 아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엄마!"하고 반기거나, "엄마 나 울지도 않고 잘 있었어요" 하거나, 잠깐 반기긴 하면서도
서로 지들 놀던 대로 희희낙락했다. 그렇게도 낯가림이 심하고 잠시잠깐도 나와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하더니만 '어느새!'하는 생각에 주춤 놀랐다.
일요일엔 남편과 소미, 소은이가 안성에 갔다. 오후 2시에 집을 나서서 저녁 8시가
다 되어 돌아왔는데, 아이들도 생기가 있고 남편도 아이들 때문에 힘든 기색은 없었다.
물론 안성을 갈 땐 어머님과 외할머니(남편의 외할머니)가 동행하시고 돌아올 때만
셋이었지만, 소은이가 나를 그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서 보내긴 처음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남편은 소미를 안고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런 말을 했다.
"소미야, 넌 참, 넌 참 착하고 데리고 다닐 만하다. 하나도 나무랄 일이 없어."
나는 소미 걱정은 안 했던 터라 소은이는 어땠느냐고 채근을 했다. 어느 정도 예상대로
먹을 것 주면서 데리고 다니니 그저 신이 난 눈치더라고 했다. 카시트에 앉혀놓고
안전벨트도 매지 않았는데 까불거리다가 앞에 이마를 꽁 부딪친 것 말고는 좋았다고
했다. 갈 땐 '이박사' 노래를 좋아해서 그걸 틀어주니 고개도 까닥거리고 다리도 흔들거리더라
했다. 합격점이었다.
그리고 오늘 낮. 성당에 새로운 교우가 이사를 와서 여럿이서 가정방문을 해야 했다.
잠시 놀던 바로 옆집에다가 소은이를 두고 한 시간만에 돌아왔는데, 또렷한 소리로
"엄마다!"하면서 나를 반겼다. 소은이는 참 순하다고 이웃의 아기엄마가 말을 해주는데
'음, 그래 이제 좀 순한 걸 알겠다' 싶었다.
좀 있다가 바로 소미가 미술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어 집으로 오려다가 이내
생각을 바꿨다. 내 어찌 하나 보자 하고 다시 소은이를 둔 채 소미를 데려 오자 하고
나왔는데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런데 소미가 또 걸작이었다.
"엄마, 초이가 엄마한테 허락 받고 우리 집에 놀러온댔어요."
"그래? 그럼 어쩌지? 소은이가 수정이 이모네 있는데. 엄만 소미랑 같이 갔다가
조금만 더 놀다 오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수정이 이모네 간 거라서."
"그럼 엄마만 가세요."
"정말? 그래도 돼? 혼자서 초이 기다린다고?"
"그럼요, 초이가 우리 집에 온댔는데요. 나요, 혼자도 잘 있어요."
요즘 과시하는 걸 꽤 즐긴다.
"그래? 그럼 좋아. 하지만 초이가 좀체 안 오면 그냥 문 잘 닫고 수정이 이모네로 와.
알았지?"
옆 통로인데다가 또 1층이라서 우리 집에서 찾아오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터라 안심하고
소은이에게로 돌아왔다. 우리 둘째는 여전히 잘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새 이렇게 크고 있었다. 소미는 벌써 다섯 살인데 잠깐 혼자 있는 게
무어 그리 대수라고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동생 일찍 본 탓에 어리광 많고 잘 삐지고
잘 울고 노여움 잘 타던 아이로선 큰 변화였다. 두 아이 모두 꽤 오랫동안 모유를
먹고 크느라 아기 때부터 좀체 나와 떨어지는 훈련을 할 기회가 적기도 했는데 말이다.
남편은 키재기 자 붙여놓은 데서 한 달에도 몇 번씩 아이들을 세워놓고 키를 재보지만
겨우내 두 아이는 실제 키보다 마음이 더 쑤욱 큰 것을 느낀다. 초이 엄마는 소은이를
봐 줄 테니(초이 동생은 또 소은이와 친구다) 운전면허 낼 수 있게 학원 다니라고
용기를 줄 정도가 되었다.
어떤 분은 마음이 가벼워지면서도 좀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내 친구도 네 살
딸애를 놀이방에 처음 보내는데, 가자마자 너무 좋아하며 자기가 가는지 마는지 신경도
안 쓰고 너무 잘 노는데 서운하더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자기가 그토록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는 자책과 함께.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사실 난 그렇지가 않다. 서운하지 않느냐고 묻는 말씀에 내
엄마노릇에 흠 될까봐 대답은 "네" 했지만, '나 이거 엄마 맞아?'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운함이 없었다. 그토록 내가 육아에 지쳐있었나? 언제나 '자유부인'이 되어보나
하고 안달 난 여자에게 어떤 빛이 보였던 것일까? 아니면 아직 좀더 서운한 맛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까닭을 더 설명할 길은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소미, 소은이가 제법 컸구나
하는 걸 문득 깨달을 때면, 앞으로 아이들이 다 컸을 때 나를 위해 써야 할 많은
시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미리부터 마음속으로나마 손에 잡히지도 않는 준비를
한다고나 할까.
아직 뚜렷하게 구체적인 계획이 선 그 무엇도 없다. 그럴 시간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중년 이후의 나를 '빈 둥지 콤플렉스'에 시달리게 하고 쓸쓸하고 허전한 채로 늙게
만들진 않겠다는 생각만 있다. 늙은 나를 위로하고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일들을
찾아야 할 텐데 하면서.
바쁘다, 양재형! 아직도 손갈 일이 무수히 남은 두 딸 데리고 노후의 정신적인 허전함까지
챙기려 들다니. 쯧쯧, 피곤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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