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사랑보다 우선하는 인내 본문
소미가 오랜만에 미술학원을 갔다. 꼭 일주일 만이다. 환절기 감기는 지난 열흘 간
우리 세 모녀를 무척 힘들고 지치게 했다. 아직도 후유증이 여기저기서 너덜거리는
것 같지만 이제 안심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왔다.
두 아이 모두 일 주일 가까이 좀체 열이 내리지 않았다. 조제약 안에 해열제가 들었으니
따로 쓸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아예 듣지 않은 날이 이틀, 의사와 상의하여 하루
네 번 약을 먹이는 사이사이 따로 시럽 해열제를 또 쓸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열이 올랐고 밤엔 40도를 넘나드는 고열도 서슴지 않아
경기가 올까봐 노심초사했었다. 요즘 유행하는 감기가 열이 좀체 내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다. 하도 안 내리니까 애꿎은 의사 탓만 하며 속을 태웠다.
거기다가 소미의 기침은 곧이라도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한 짐
안을 정도로 쉴새없이 심했다. 나중에는 약에 내성이 생긴 것인지 아예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배와 꿀을 중탕하여 짜낸 즙도 먹이고 가습기도 틀어주는 등 요모조모 힘을
쏟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참으로 지독한 감기였다. 아무리 제대로 걸렸구나 싶어도 약 먹은 지 이틀이 지나면
진정 기미를 보이기 마련인데 이번 감기는 무엇 하나 똑 부러지게 좋아지는 것이
없었다. 겨우내 콧물이야 났지만 심하게 앓은 적 없이 지내온 소미가 아주 심했다.
거기에 언니와 동생의 처지가 완전히 바뀐 병치레는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소은이가
제 언니보다 덜했다고는 했지만 소은이 역시 열은 계속 있었고 기침에 가래도 많이
끓었다. 그런데 소은이는 크게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40도 가까운 열이 오르는
밤에도 보채거나 우는 경우가 없이 앓는 소리만 간간이 했다.
아파도 그럭저럭 밥도 잘 먹고 간식도 찾았다. 잠에 골아 떨어진 아침, 자고 있는
그 늦잠꾸러기에게 병원 가자고 옷을 서둘러 입히고 막 깨워도 우는 법 한번 없이
신발을 신고 나섰다. 그리고 그 며칠 내가 거의 소미를 안거나 업고 병원을 찾을 때
소은이는 걸어서 따라 들어왔다. 자기를 안아 달라거나 업으라거나 하는 법이 없이 없었다.
소미는 해열제를 먹고 열이 내려 조금 살 만해도 얼굴을 좀체 펴지 않고 징징댔다.
병원에 가는 아침에 몸을 일으켜 세울 때마다 울고, 늘 업거나 안고 병원을 가고
대기실에 서있었다. 발을 잠시도 땅에 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되게 아픈가보다
싶어서 역시 미열에 시달리고 있는 소은이는 저만치 밀어두고 소미만 붙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나는 속으로 오명(?)을 쓰고 싶진 않았다. 에미가 평소에 아이에게 잘 못해주었기
때문에 아픈 것을 틈탄 아이가 계속 엄마 찐드기로 늘어붙는 거라는. 평소 동생 때문에
소홀한 엄마의 관심을 붙들고 싶어서 견딜 만하게 몸이 회복되어도 계속 더 아픈 것처럼
끙끙대는 것이라는.
모두 맞는 해석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걸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소미에게 평소
소홀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다가 아프니까 그러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내가 소미에게 무얼 그리 못했던가 싶은 생각을 곱씹으면서도, 아이가
열이 완전히 잡힌 주말께도 계속 그러는데 정말 이게 시위성 엄살인가 싶은 게 참으로
괴로웠다.
그러다가 슬슬 내 몸도 피곤에 절게 되니 소미의 행동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있다거나 평소보다 조금 까다롭거나 예민하게 구는 정도라면 좋겠지만, 쉴새없이
안고 있으라거나 짜증을 한껏 내면서 내 몸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게 가장 피크를 이룬 날이 금요일 저녁이었다.
열은 이제 그날부터 완전히 잡히고 기침만 심했다. 그리고 이제 살만하니 심심해했다.
날씨도 좋고 집에 붙들고 있다고 기침이 좋아지지도 않길래 잠시 미술학원에서 놀다오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얼굴에 생기가 돌더니 집 앞 학원으로 내달렸다. 나는
그동안 소은이를 데리고 성당에 가서 부활절달걀에 그림을 그리고 돌아왔다.
남편은 당직이었고 선재, 채구네가 우리 집에 왔다. 오후에 시내를 다녀온 그들에게
내가 기침에 좋다는 알로에베라 원액 주스를 부탁했었는데, 그걸 사들고 집에 왔다가
남편들의 저녁식사가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고 더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소미의 기침은 안쓰러웠다. 알로에 주스를 먹이고 좋아지길 기대하는데 소미는 저녁
내내 얼굴을 펴지 않고 찡찡댔다. 어디가 또 아프냐, 불편한 데가 있냐, 엄마가 뭘
해주면 좋겠느냐 하면서 좋은 말로 갖은 비위를 다 맞추는데도 말은 제대로 하지
않고 저만 안고 있으라고 했다. 안고 있어도 못마땅한 얼굴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방으로 데리고 가서 조근조근 알아듣게 이야기했다. 이제 열도 내리고 무엇도
좀 먹을 정도로 정신이 났으니 다른 이모들도 왔는데 얼굴 좀 피거라, 병원 다닐
때도 엄마가 너만 안고 가고 소은이는 걷지 않았느냐, 그리고 소은이가 언니에게
양보도 많이 하지 않느냐, 엄마도 많이 힘드니까 소미가 엄마 좀 봐주려무나 하면서.
말을 할 때는 알아듣고 잘 하겠다고 하더니만 방밖으로 나와서는 도로마이타불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젠 소은이까지 안아 달라고 했다. 선재 엄마가 안아주겠다고
했는데 싫다고 했다. 두 아이를 한 무릎에 앉혔는데 둘이 서로 밀어내면서 짜증을
섞어 울고불고 난리였다. 결국 소은이가 밀려나서 울고 나는 소파에서 소미만 안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그 전날 저녁 성당으로 고백성사를 하러 가느라 아이 둘을 잠깐 선재네 두고 갔었는데,
그날도 소은이가 소미에게 모든 걸 양보하더라며 놀랐다고 선재 엄마가 전했다. 비디오
테잎도 보고 싶은 게 서로 달라 싸웠는데 선재엄마가 "소은아, 언니가 조금 더 아프니까
그냥 텔레토비 보자 응?" 하면 "네, 언니꺼?"하더란다. 다른 것도 대부분 소은이가
이해하면서 양보를 하는데 어찌 예쁜 줄 모르겠다고 선재엄마는 칭찬을 했다.
그랬는데 소은이를 밀어내고 난 소미는 쉬 마렵다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손을 이끌었는데 또 버티며 걸으려고 하지 않았다. 말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안고 가라는 표정으로만 잔뜩 찡그리며 찡찡거렸다.
나는 더 참지 못했다. 이끌던 손을 확 팽개치듯 놓고는 그 자리에서 손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펑펑 때려주며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어떻게 하라고 응? 더 어떻게 하라고? 엉? 이제 그만 좀 해. 웬만큼 하라고. 엄마가
방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엄마 부탁 그렇게 안 들어줄 거야?"
내 손이 다 아파질 정도로 사정없이 펑펑 때리고 나서 우는 아이를 소파에 휙 던지듯
앉혀놓았다. 나는 그 옆에 풀썩 앉아서 씩씩거리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썰렁한 사태를 파악하고는 곧 가려고 주섬주섬 챙기는 채구, 선재네에게 더 있다 가란
말은커녕 "그래, 선재야, 채구야 오늘은 그만 가야겠다. 누나 때문에 안 되겠어. 미안해"
하며 등 떠밀어 보냈다. 너무 마음이 안 좋아서 보내고도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집안은 고요했다. 아이들도 코 빠뜨리고 쥐 죽은 듯 가만있었다.
조금 있다가 청소를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정리하고 쓸고 닦기만 했다. 소미가
조금 쉰 목소리로 "엄마, 그래서 소미하고 이젠 말도 안 할 거야?" 했다. 순간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부드럽게 받았다.
"아니, 그래도 말은 할 거야."
그 후 조금 지나서 내가 먼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심상하게 말을 붙이니 소미는
그때부터 기분이 나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은이에게도 닭살 돋게 친절하고 내게
거는 말마다 정이 뚝뚝 묻어나는데 시끄러울 정도였다. 나는 더 이상 훈계하지 않았다.
말은 아까 방에서 했던 것으로 충분했고 아이는 내가 화낸 까닭을 알기 때문에. 소미는
그 후부터 징징대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잠든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했다. 세수를 하고 부르튼
입술에 벅벅 보습제를 바르며 거울을 보고 있자니 왈칵 눈물이 났다. 다른 가족들도
있는데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그렇게 손을 댄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다. 가뜩이나
작은 체격인데 앓느라 살이 내려서 소미의 손목은 너무 가늘어졌다. 잠든 두 아이
얼굴에 볼을 비비대고 뽀뽀를 해도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쉬 가시지 않았다.
아이를 기르는데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덕목이 '사랑'이라고 누구나 생각하기
쉽지만, 내 보기엔 '인내'가 더 한수 위지 싶다. 참을 인(仁)자가 두 개만 되었어도
감정이 실린 매질을 피했을 터인데, 내겐 한 개 정도도 생기다 말았는가 보다. 늘
이렇게 터뜨리고 후회하는 이 못난 에미를 소미는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약은 똑 끊어버리고 알로에 주스를 먹인 후 기침이 눈에 띄게 줄어들며 효과를
보이는 게 너무 신기하고 다행스러웠다. 진작 언니 말을 듣고 먹였으면 긴 고생을 면했을
것을.
우리 세 모녀를 무척 힘들고 지치게 했다. 아직도 후유증이 여기저기서 너덜거리는
것 같지만 이제 안심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왔다.
두 아이 모두 일 주일 가까이 좀체 열이 내리지 않았다. 조제약 안에 해열제가 들었으니
따로 쓸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아예 듣지 않은 날이 이틀, 의사와 상의하여 하루
네 번 약을 먹이는 사이사이 따로 시럽 해열제를 또 쓸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열이 올랐고 밤엔 40도를 넘나드는 고열도 서슴지 않아
경기가 올까봐 노심초사했었다. 요즘 유행하는 감기가 열이 좀체 내리지 않는 특징이
있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다. 하도 안 내리니까 애꿎은 의사 탓만 하며 속을 태웠다.
거기다가 소미의 기침은 곧이라도 피가 섞여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한 짐
안을 정도로 쉴새없이 심했다. 나중에는 약에 내성이 생긴 것인지 아예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배와 꿀을 중탕하여 짜낸 즙도 먹이고 가습기도 틀어주는 등 요모조모 힘을
쏟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참으로 지독한 감기였다. 아무리 제대로 걸렸구나 싶어도 약 먹은 지 이틀이 지나면
진정 기미를 보이기 마련인데 이번 감기는 무엇 하나 똑 부러지게 좋아지는 것이
없었다. 겨우내 콧물이야 났지만 심하게 앓은 적 없이 지내온 소미가 아주 심했다.
거기에 언니와 동생의 처지가 완전히 바뀐 병치레는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소은이가
제 언니보다 덜했다고는 했지만 소은이 역시 열은 계속 있었고 기침에 가래도 많이
끓었다. 그런데 소은이는 크게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40도 가까운 열이 오르는
밤에도 보채거나 우는 경우가 없이 앓는 소리만 간간이 했다.
아파도 그럭저럭 밥도 잘 먹고 간식도 찾았다. 잠에 골아 떨어진 아침, 자고 있는
그 늦잠꾸러기에게 병원 가자고 옷을 서둘러 입히고 막 깨워도 우는 법 한번 없이
신발을 신고 나섰다. 그리고 그 며칠 내가 거의 소미를 안거나 업고 병원을 찾을 때
소은이는 걸어서 따라 들어왔다. 자기를 안아 달라거나 업으라거나 하는 법이 없이 없었다.
소미는 해열제를 먹고 열이 내려 조금 살 만해도 얼굴을 좀체 펴지 않고 징징댔다.
병원에 가는 아침에 몸을 일으켜 세울 때마다 울고, 늘 업거나 안고 병원을 가고
대기실에 서있었다. 발을 잠시도 땅에 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되게 아픈가보다
싶어서 역시 미열에 시달리고 있는 소은이는 저만치 밀어두고 소미만 붙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나는 속으로 오명(?)을 쓰고 싶진 않았다. 에미가 평소에 아이에게 잘 못해주었기
때문에 아픈 것을 틈탄 아이가 계속 엄마 찐드기로 늘어붙는 거라는. 평소 동생 때문에
소홀한 엄마의 관심을 붙들고 싶어서 견딜 만하게 몸이 회복되어도 계속 더 아픈 것처럼
끙끙대는 것이라는.
모두 맞는 해석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걸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소미에게 평소
소홀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아직 어린데다가 아프니까 그러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내가 소미에게 무얼 그리 못했던가 싶은 생각을 곱씹으면서도, 아이가
열이 완전히 잡힌 주말께도 계속 그러는데 정말 이게 시위성 엄살인가 싶은 게 참으로
괴로웠다.
그러다가 슬슬 내 몸도 피곤에 절게 되니 소미의 행동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있다거나 평소보다 조금 까다롭거나 예민하게 구는 정도라면 좋겠지만, 쉴새없이
안고 있으라거나 짜증을 한껏 내면서 내 몸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게 가장 피크를 이룬 날이 금요일 저녁이었다.
열은 이제 그날부터 완전히 잡히고 기침만 심했다. 그리고 이제 살만하니 심심해했다.
날씨도 좋고 집에 붙들고 있다고 기침이 좋아지지도 않길래 잠시 미술학원에서 놀다오라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얼굴에 생기가 돌더니 집 앞 학원으로 내달렸다. 나는
그동안 소은이를 데리고 성당에 가서 부활절달걀에 그림을 그리고 돌아왔다.
남편은 당직이었고 선재, 채구네가 우리 집에 왔다. 오후에 시내를 다녀온 그들에게
내가 기침에 좋다는 알로에베라 원액 주스를 부탁했었는데, 그걸 사들고 집에 왔다가
남편들의 저녁식사가 밖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을 듣고 더 머물게 되었던 것이다.
소미의 기침은 안쓰러웠다. 알로에 주스를 먹이고 좋아지길 기대하는데 소미는 저녁
내내 얼굴을 펴지 않고 찡찡댔다. 어디가 또 아프냐, 불편한 데가 있냐, 엄마가 뭘
해주면 좋겠느냐 하면서 좋은 말로 갖은 비위를 다 맞추는데도 말은 제대로 하지
않고 저만 안고 있으라고 했다. 안고 있어도 못마땅한 얼굴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방으로 데리고 가서 조근조근 알아듣게 이야기했다. 이제 열도 내리고 무엇도
좀 먹을 정도로 정신이 났으니 다른 이모들도 왔는데 얼굴 좀 피거라, 병원 다닐
때도 엄마가 너만 안고 가고 소은이는 걷지 않았느냐, 그리고 소은이가 언니에게
양보도 많이 하지 않느냐, 엄마도 많이 힘드니까 소미가 엄마 좀 봐주려무나 하면서.
말을 할 때는 알아듣고 잘 하겠다고 하더니만 방밖으로 나와서는 도로마이타불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젠 소은이까지 안아 달라고 했다. 선재 엄마가 안아주겠다고
했는데 싫다고 했다. 두 아이를 한 무릎에 앉혔는데 둘이 서로 밀어내면서 짜증을
섞어 울고불고 난리였다. 결국 소은이가 밀려나서 울고 나는 소파에서 소미만 안고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그 전날 저녁 성당으로 고백성사를 하러 가느라 아이 둘을 잠깐 선재네 두고 갔었는데,
그날도 소은이가 소미에게 모든 걸 양보하더라며 놀랐다고 선재 엄마가 전했다. 비디오
테잎도 보고 싶은 게 서로 달라 싸웠는데 선재엄마가 "소은아, 언니가 조금 더 아프니까
그냥 텔레토비 보자 응?" 하면 "네, 언니꺼?"하더란다. 다른 것도 대부분 소은이가
이해하면서 양보를 하는데 어찌 예쁜 줄 모르겠다고 선재엄마는 칭찬을 했다.
그랬는데 소은이를 밀어내고 난 소미는 쉬 마렵다며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손을 이끌었는데 또 버티며 걸으려고 하지 않았다. 말로 하는
것도 아니고 안고 가라는 표정으로만 잔뜩 찡그리며 찡찡거렸다.
나는 더 참지 못했다. 이끌던 손을 확 팽개치듯 놓고는 그 자리에서 손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펑펑 때려주며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어떻게 하라고 응? 더 어떻게 하라고? 엉? 이제 그만 좀 해. 웬만큼 하라고. 엄마가
방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엄마 부탁 그렇게 안 들어줄 거야?"
내 손이 다 아파질 정도로 사정없이 펑펑 때리고 나서 우는 아이를 소파에 휙 던지듯
앉혀놓았다. 나는 그 옆에 풀썩 앉아서 씩씩거리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썰렁한 사태를 파악하고는 곧 가려고 주섬주섬 챙기는 채구, 선재네에게 더 있다 가란
말은커녕 "그래, 선재야, 채구야 오늘은 그만 가야겠다. 누나 때문에 안 되겠어. 미안해"
하며 등 떠밀어 보냈다. 너무 마음이 안 좋아서 보내고도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집안은 고요했다. 아이들도 코 빠뜨리고 쥐 죽은 듯 가만있었다.
조금 있다가 청소를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정리하고 쓸고 닦기만 했다. 소미가
조금 쉰 목소리로 "엄마, 그래서 소미하고 이젠 말도 안 할 거야?" 했다. 순간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부드럽게 받았다.
"아니, 그래도 말은 할 거야."
그 후 조금 지나서 내가 먼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심상하게 말을 붙이니 소미는
그때부터 기분이 나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소은이에게도 닭살 돋게 친절하고 내게
거는 말마다 정이 뚝뚝 묻어나는데 시끄러울 정도였다. 나는 더 이상 훈계하지 않았다.
말은 아까 방에서 했던 것으로 충분했고 아이는 내가 화낸 까닭을 알기 때문에. 소미는
그 후부터 징징대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잠든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했다. 세수를 하고 부르튼
입술에 벅벅 보습제를 바르며 거울을 보고 있자니 왈칵 눈물이 났다. 다른 가족들도
있는데 감정을 삭이지 못하고 그렇게 손을 댄 것이 못내 후회가 되었다. 가뜩이나
작은 체격인데 앓느라 살이 내려서 소미의 손목은 너무 가늘어졌다. 잠든 두 아이
얼굴에 볼을 비비대고 뽀뽀를 해도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쉬 가시지 않았다.
아이를 기르는데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덕목이 '사랑'이라고 누구나 생각하기
쉽지만, 내 보기엔 '인내'가 더 한수 위지 싶다. 참을 인(仁)자가 두 개만 되었어도
감정이 실린 매질을 피했을 터인데, 내겐 한 개 정도도 생기다 말았는가 보다. 늘
이렇게 터뜨리고 후회하는 이 못난 에미를 소미는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약은 똑 끊어버리고 알로에 주스를 먹인 후 기침이 눈에 띄게 줄어들며 효과를
보이는 게 너무 신기하고 다행스러웠다. 진작 언니 말을 듣고 먹였으면 긴 고생을 면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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