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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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

놀이공원 봄소풍

M.미카엘라 2001. 3. 27. 12:10
지난 12월에 나는 친구에게서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두 장을 선물 받았다. 그런데
겨울을 빠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3월이 되었어도 아직 바람이 거친 탓에 차일피일
갈 날을 미루기만 했다. 그러다가 벌써 석 달을 넘긴 그 표를 쓰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 왔다. 이 달 31일까지가 유효기간인데 지난 25일 일요일이 이 표를 이용할 수
있는 마지막 휴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버랜드로 갔다. 아직 한번도 이 땅(land)을 안 가봤다는 친정 언니와
조카까지 데리고 여섯 명이 움직였다. 남편이나 나도 결혼 전 연애할 때 딱 한 번
가본 곳이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은 하필이면 한 일주일 찬란한 봄을 자랑하던 날씨가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 첫날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나마 온다던 비가 오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여기며 희희낙락 나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싼 김밥과 과일, 보온병 두 개에 나눠 담은 오뎅국과 커피, 과자,
우유, 유모차 등을 싣고 자는 애들 깨워서 옷 입혀 주섬주섬 나선 시간이 아홉 시다.
우리 집에서 놀이공원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일찍 나선다고 나섰건만 벌써
주차장엔 미리 온 차들로 꽉 차 있었다. 휴일이라 예견한 바였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실 나는 놀이공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주차장은 애초부터 아예 고생을
할 각오를 하게 만들었다. 일찍 일어난 소미와 소은이는 차안에서 잔 탓에 매표소를
빠져나와 공원 안으로 들어섰어도 그냥 멀뚱하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사실 이런
곳에 언제 와본 적이 있는가 생각하면 그런 표정일 수밖에 없었다.

큰 기대를 했던 사파리가 나는 좀 시시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이들은 좋은 모양이었다.
노래를 부르고 "곰돌아, 사자야"해가면서 소미는 신이 났다. 그 와중에서도 자주 배
고프다는 소리를 해서 우리는 좀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하긴 눈꼽 떼고 나선 길인데
배가 오죽이나 고플까.

배를 불린 후, 마침 그 전날부터 시작된 튤립축제 때문에 꽃구경을 실컷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찌나 눈이 번쩍 뜨이는지. 겨우 내내 칙칙한 색깔들만 보다가 총천연색이
쫘악 깔린 넓은 꽃밭 덕분에 눈이 잔뜩 호강을 했지 뭔가. 지금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리니
마음에 사진으로 잘 찍힌 것을 느낀다.

곁들여 네덜란드 민속무용 공연을 펼쳐 보였는데, 그 다이나믹하고도 소박한 춤은
소미와 소은이의 넋을 빼앗았다. 무용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두어 사람을 데리고
다시 올라가 함께 춤추는 장면을 본 소미는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 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한 무용수와 악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놀이공원에 왔으니 바야흐로 놀이기구를 타야 하는데 참 자유이용권이 제 몫을 다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우선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만 타려 해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적잖았다. 더군다나 언니나 나는 짜릿한 어른용 놀이기구는 질색이고 초등학교 4학년인
조카 그림이마저 적잖은 고소공포증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림이는 범퍼카를 타겠다고 언니와 둘이서 우리 식구와 잠시 헤어졌는데 거기서
다시 어찌하여 제 엄마를 잃고 방송을 하여 찾는 헤프닝을 했다나? 다 큰 녀석이
"우리 엄마 좀 찾아 주세요" 했을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방송하는 데를
찾아가 그런 말을 할 줄 알 정도로 큰 아이와 길이 엇갈렸으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결국 우리는 회전목마, 무슨 제트기, 그리고 어린이용 축소판 청룡열차를 탔다. 나는
소미나 소은이가 무척 겁을 낼 줄 알았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어했다. 제트기는 그렇잖아도
공중에 떠있는 좌석을 무슨 손잡이로 더 높이 떠올리게 할 수 있었는데, 나는 소은이와
함께 타놓고 벌벌 떨려 제대로 손잡이를 움직일 엄두도 못 냈다.

그런데 내가 롤러코스터를 타고야 말았다. 최고 높이의 최고 길이의 청룡열차라고
해야 하나. 남편이 혼자 무슨 재미냐고 꾀는 탓도 있었고 나도 아줌마 다 되었는지
그놈의 본전 생각에(공짜표건만) 그래도 이 정도는 타야 아깝지 않겠다 싶은 생각으로
잠깐 정신이 나갔다. 막 탈 차례를 남겨두고 후회가 막심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중간 생략

남편은 눈이 벌개진 채 연신 헛구역질을 해대는 내 손을 잡고 또다시 옆에 있는
'샤크'를 타자고 했다. 큰 상어모양을 한 기구에 여러 명이 타면 그대로 몇 십 미터
되는 공중으로 회전한다. 사람이 거꾸로 매달렸다가 다시 아래로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내려오는 걸 몇 바퀴 되풀이한다. 나는 남편에게 손 흔들고 도망쳤다.

언니와 조카와 두 딸들이 꽃샘바람 속에서 기다리는 것이 안쓰러워 고 앞에서 파는
핫초코를 마시러 들어갔다. 아이들은 김밥을 먹고도 벌써 출출한 기색이 역력했고
핫초코를 맛있게 마셨다. 언니와 나는 서둘러 돌아가 저녁을 먹어야겠다는 말을 나누었다.

남편은 혼자 기다려서 결국 타고 말았다. 내가 핫초코를 마시고 어찌 되었나 나가보니
곧 탈 차례가 다되었다. 남편은 나에게 긴하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가까이
오라고 자꾸 손짓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나를 얼른 잡아서 억지로 같이 타보겠다는
속셈이 훤히 보여 속지 않고 멀리서 구경만 했다. 다 타고나서 하는 말이 롤러코스터보다
더 죽겠더라 했으니 정말 꾐에 빠지지 않길 잘했다.

해도 간간이 났지만 여전히 바람은 수그러들 기세가 없는 가운데 우리는 네 시를
훨씬 넘기고서야 서둘러 공원을 나왔다. 며칠 전부터 콧물이 졸졸 나오는 두 딸들
걱정이 그제야 심각했다. 소은이는 벌써 기침을 적잖이 했다. 유모차를 통째로 씌우는
비닐커버도 가지고 갔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소은이가 유모차에서 내리려고 자주
난리인 형편에 얌전히 그 비닐 속에 앉아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소은이는 어제 오늘 단단히 감기를 앓고 있다. 눈물, 콧물에 눈꼽, 재채기,
열, 기침이 총망라하여 괴롭히고 있으니 참으로 봄소풍 한 번 다녀온 대가가 혹독하구나
싶었다. 그래도 기관지가 무척 약한 소미가 의외로 씩씩하게 미술학원을 잘 다니고
있으니 다행이다. 아, 이제 이 정도는 이겨낼 정도로 큰 것이로구나 싶은 게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소은이도 소미 이맘 때보다 훨씬 질병에 강한 편이라 금방 이겨내리라고 본다. 아프면서도
이것저것 먹을 건 다 먹으니 제 아무리 독한 감기도 놀라 달아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 며칠은 조신하게 집에서 소은이 감기 수발이나 들어야겠다. 엄마 아빠가
더 신이 났던 것이 못내 미안하다.

오늘도 찬바람이 불고 꾸물거리는 날씨인데 조금 전 한 이웃이 집으로 소은이와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전화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하고 불려놓은 쌀을 작은 뚝배기에
부어 불에 올렸다. 다 되면 밥은 퍼내고 좋아하는 누룽지를 바글바글 끓여 줄 생각이다.
상추쌈을 참 좋아하는데 이건 없다. 이게 있다해도 누룽지에 싸서 먹을 순 없으니
그냥 두부 조림에 먹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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