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댁의 자녀도 이렇습니까? 본문

사랑충전소

댁의 자녀도 이렇습니까?

M.미카엘라 2004. 5. 25. 15:06
 

1. 슬프거나 감동적인 만화를 보고 웁니까?

 몇 주 전 이야기다. 장애인의 날 특집으로 했던 만화영화를 재방송해주는 걸 보았다. ‘우리 사이 짱이야’하는 국산 애니메이션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만화계의 대모 황미나 원작이다. 학교 다닐 때 ‘아뉴스 데이’ ‘이오니아의 푸른 별’ 이런 거 빌려서 언니들이랑 아주 재미있게 보았던 그 만화작가다.

 

 4학년 한 반에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아람이와 그의 짝궁 준호 이야기인데, 처음엔 준호가 아람이를 무진장 싫어하고 다투며 우여곡절을 겪지만, 점차 진정한 친구가 되어가면서 결국 준호는 아람이가 장애를 극복하도록 돕는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나는 장애를 가진 어린이의 심리와 물리치료 과정을 구체적으로 담아내어 참 좋았는데, 그렇다고 너무 무겁거나 너무 심각하지 않은 분위기로 가끔 요절복통 재미난 부분도 있고 해서 아이들이랑 어느새 함께 끝까지 다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의 후반부. 아람이가 장애를 극복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음악도 웅장하고 아람이가 목발을 놓고 고성을 지른다, 준호와 아람이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 포옹을 한다, 암튼 그랬는데 딸들 역시 숨죽이며 조용하다

 

 그런데 좀 이상해서 의자 쪽을 돌아보니 이게 웬걸, 소은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었다. 곧 흐느끼기까지 한다.

 “소은아. 왜 그래? 응?”

 알면서도 뭐라 하는지 들어보려고 한번 물었다. 근데 대답은 없이 계속 줄줄 울어댔다. 가슴팍을 가리키며 “여기가 아프니?”하니까 고개만 겨우 끄덕끄덕했다.

 “저거 슬퍼?”

 끄덕끄덕!

 

 난 어린아이들이 저런 걸 보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누가 죽었다고 해도 잘 울지 않는 게 어린아이들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제 소은이는 여섯 살이다. 그런데 이제 놀랍지 않은 건 소은이는 다섯 살 때인가도 한번 어른들 드라마를 보고 눈가가 다 젖도록 운 적이 있다. 소미가 옆에서 말한다.

 “엄마, 참 이상해요. 소은이는 나보다 더 찔긴데(아마 ‘독하다’ ‘강하다’ 그런 뜻인 것 같다) 왜 난 눈물이 안 나고 소은이만 울지? 난 하나도 눈물이 안 나는데.”


 

 2. 얌전하다가도 손님만 오시면 막 설치고 난립니까?

 어제 집에 모처럼 손님이 오셨다. 필리핀에서 공부 중인 수녀언니가 방학이라 귀국해있는데, 며칠 전 ‘제리’라는 필리핀 신학생 한분이 우리나라에 왔다고 그 제리하고 수녀님 한분을 더 모시고 우리 집엘 왔다. 가까운 보리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집에서 차나 한 잔하고 원주 수녀원으로 갈 계획으로 잠시 들르셨다.

 

 제리는 서른넷이라는 나이와 달리 아주 앳된 얼굴에 장난기 많은 소년 같았는데, 필리핀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간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도 처음, 외국도 처음인 사람답지 않게 아무 음식이나 너무 잘 먹어서 나를 안심시켰다. 보리밥 집엔 그야말로 토종 한국음식만 나온다. 청국장, 콩비지, 장떡, 열무김치, 온갖 나물무침, 돼지고기고추장숯불구이 등등. 그런데 제리는 그것들을 다 먹었다. 상추에 고기 얻어 쌈장까지 얹어서 다 먹었다. 그리고 너무 맛있단다.

 

 소미 소은이는 제리와 금새 친해졌다. 이 양반이 워낙 애들 놀아주는 법을 알았다. 온몸으로 놀아주는데 말이 안 통해도 셋이 그렇게 재미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소미는 처음 자기 안에 있는 용기란 용기를 다 쥐어짜내 “How are you? My name is Park Somi Dorothea"까지 딱 말하고, 나이를 묻는 말에 "eight"하는데까지 성공했다. 그리고는 그냥 오로지 바디 랭귀지로만 버티면서도 그렇게 잘 놀았다. 중간중간 수녀언니의 통역은 별로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가운데 내내 속을 끓이고 있었다. 도대체 애들은 평소엔 안 그러다가도 왜 손님만 오면 안 하던 짓을 그렇게도 할까. 오버 액션에 고함지르기. 설치고 까불고 깔깔대고 온갖 익살맞은 표정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같이 오신 수녀님은 수술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완전하게 몸이 회복되지 않은 분이라 더 마음이 쓰였다. 도대체 내 말이 먹히질 않았다. 저희들도 좋아서 그런 것이려니 해도 그럴 땐 참 밉살스럽다.

 

 평소 남의 물건(특히 비싼 것)을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지는 일을 주의시켜서 잘 따르는 편인데, 제리의 카메라를 한번 만져보게 했더니 이후에도 위태롭게 계속 들고 찍으려고 하질 않나, 제리의 등에 올라타거나 무릎에 앉아 눌러 붙어서 치대질 않나, 사과를 괴팍하게 먹질 않나, 정말 통제 불능이었다.

 

 정말 생각 같아선 하나씩 옆구리에 끼고 방에 데리고 들어가 화악~ 군기잡고 싶었지만, 이 양재형이 필리핀까지 애 잡는 엄마로 소문나서야 되겠는가? 나는 좋은 말로 타일렀다가 눈을 아래로 착 깔고 위협했다가 좌불안석이었다. 제리는 자기에게도 이렇게 어린 조카들이 있고 조카들도 무등  태워주고 업어주고 하니까 괜찮다고 말했지만, 나로선 또 그 말만 곧이곧대로 믿고 마냥 내버려두기 참 어려웠다. 정말 어제 오후 참 힘들었다. (아이들의 손님신드롬에 울화치미는 엄마들 어디 없소?)

 

롯데월드 , 꽃 앞에서

'사랑충전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밀  (0) 2004.06.22
모전여전?  (0) 2004.06.15
내 푸닥거리를 하리!  (0) 2004.04.26
그녀는 굳세다  (0) 2004.04.25
거지 뱃속  (0) 2004.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