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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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푸닥거리를 하리!

M.미카엘라 2004. 4. 26. 17:11
 

 난 정말 속이 상한다. 너무 속이 상해서 짠 눈물이 찔쩍찔쩍 배어나올 지경이다. 정설까지는 아니라도 속설 정도는 되어버린 ‘남자는 모두 애다’라는 말. 나는 그 속설조차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을 크게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지만, 정말 오늘 아침은 딱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해서 이 뜨겁게 부아 나는 심정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월요일 아침부터 쉽지 않은 일이어서 시간을 두고 혼자 글로 푼다.

 

 이상하게 우리 집은 남편과 소은이 사이에 불필요한 기싸움이 잦아서 내가 너무 괴롭고 속이 상할 때가 있다. 오늘 아침도 시작은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아주 화기애애하게 출발했다. 나는 상 차리고 남편은 씻고 나와서 소미를 깨웠다. 남편이 아이들을 깨우는 처음 방식은, 막 찬물로 씻고 나와 찬기가 가시지 않은 손으로 아이들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하면서 “우리 똘들!(딸들!) 일어나세요. 방딩이! 방딩이!”하는 것이다. 그런 후 뽀뽀를 하고 등을 긁어주고 간지럼을 태우고 쓰다듬어주고 그야말로 주물러 터뜨릴 지경이 되면 애들은 도저히 안 일어날래야 안 일어날 수 없는 형편이 된다.

 

 그런데 그 가운데 소미와 소은이의 대응이 아주 판이하게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다. 소미는  얼마나 깊은 잠이 들었었건, 얼마나 전날 피곤해서 일어나기가 힘들 건, 그 어떤 귀찮은 방식으로 깨워도 전혀 싫은 기색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날 잡아 잡수!’하는 식으로 온몸을 맡기고 아빠가 하는 대로 둔다. 그건 내가 그래도 마찬가지다. 참 귀찮지 않을까 싶은데도 평소 신경질적인 면이 있는 거완 다르게 참 무던하게 반응해서 대단하다 싶다.

 

 그런데 소은이는 다르다. 소은이는 잠이 덜 깼는데 누가 제 몸을 막 주무르거나 쓰다듬거나 토닥거리거나 하면 열 번에 일곱 번은 성질이고 짜증이다. 이쁘다고, 기분 좋게 깨워준답시고 좋은 동기에서 시작한 일이라도 소은이에게는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평소 존댓말을 잘 쓰다가도 이땐 뒤꼬리 뚝 잘라먹고 성질을 내기 시작하는데, 오늘도 슬슬 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에도 이런 식으로 가다가 오늘과 똑같은 일이 한번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빠, 하지 마아~ 하지 말래니까안~ 아휴 귀찮아 증말!”

 이때까지만 해도 남편은 그냥 귀엽기도 하고 짓궂은 마음도 들어 계속 애무(?)를 멈추지 않았다.

 “자기 이제 그만 해에. 그 정도 하면 잠은 깼을 거야. 완전히 정신이 날 때까지 좀 누워있게 둬어~ 애 그러다 성질 나빠지겠어.”

 내가 넌지시 그만 하라고 진화에 나서지만 남편은 계속 애를 귀찮게 했다.

 “아빠 하지 말라고오! 아빠 저리 가라고오! 아빤 맨날 귀찮게 해! 아흐 증마알!”

 “아빠 다녀오세요 이 말만 해! 그럼 아빠가 안 하께! 응? 얼른, 얼른!”

 

 남편은 이러면서 또 몸을 쓰다듬고 간지럼도 태운다. 그런데 이때 소은이는 악을 박박 쓰면서 눈을 감고 발길질까지 한다. 제 아빠 가슴팍을 팍팍 발로 차며 악을 쓰는 모습에 이르면 ‘이제 곧 사단이 나겠구나’하는 마음으로 내 속은 이미 타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하지 말라는 데서 그만 두면 좋을 것을 자기가 짓궂게 계속 해놓고는 그때부터 거꾸로 은근히 자신이 감정이 나는 걸 어쩌지 못한다.

 

 “아빠 정말 짜징나! 부대도 안 가구 왜 난리냐구우~ 아, 짜징나!”

 “뭐? 너 계속해봐! 어어! 어디서 아빠를 발로 차? 다시 한번 말해봐! 엉? 이 짜식이...”

 “소은아, ‘아빠, 잠에서 아직 완전히 안 깼으니 좀 있다 일어날게요’ 그래. 아빠 가셔야 하니까 ‘잘 다녀오세요’하구. 그러면 아빠가 안 하신다 응? 소은아, 그렇게만 말해. 오늘 월요일 아침이잖아. 서로 큰소리 내서 뭐가 좋냐? 응?”

 

 내가 서로 맘 상하지 않게 하려고 소은이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이미 말이 통하는 시간은 저만치 간 뒤였다. 남편은 소은이 엉덩이를 한대 팍 때리고는 “너, 이 시키, 그런 식으로 하면 아빠도 용서 못해!”하면서 벌떡 일어섰다. (어! 귀여워하다가 결국 때리기까지? 허 참!) 나도 그때는 이미 화가 날대로 나 있었다. 남편은 전투모를 휙 집어 들고는 내게 무슨 말인가 짧게 하려다 멈췄다.

 “애들 좀 잘…”

 “뭐? 뭘 잘? 또 그 얘기야?”

 

 그 순간 나와 남편 사이엔 짧은 침묵이 흐르고 순간 더할 수 없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남편은 더 이상 뭐라고 하지 않고 나도 앞집까지 망신살 뻗칠까봐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저녁만 되었어도 나도 참지 않고 한바탕 난리가 날 문제였지만 참았다.

 “소은이 너 이따가 저녁에 도연이 언니에 데리고 가나 봐라. 엉? 이 짜식 앞으로 그렇게 하면 국물도 없어!”

 그리고 남편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아무리 봐도 1인극이다 이건. 혼자 웃기고 혼자 울고 혼자 화내고 혼자 나가버리는.

 

 남편은 그렇게 아이들을 이뻐하면서도 이상하게 이런 식으로 소은이와 트러블을 자주 일으킨다. 그리고 나쁜 건 자기가 화난 상태에서 그 화살을 내게 돌린다는 점이다. 조금 전에 자기도 순간 놀라서 멈칫 했던 말도 그것과 통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나보고 ‘애 교육 좀 잘 시켜. 어떻게 하길래 애가 저 모양이야’ 뭐 그런 식이다. 지난 몇 개월 전에도 오늘처럼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 그때 내게 또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이후 나는 남편의 그런 부분을 참을 수가 없어서 언젠가 크게 한바탕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애들 버르장머리 잘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거 당신이 몰라서 그러는 거냐, 그렇게 애들 앞에서 아빠가 엄마 탓만 하면 애들이 크면서 맨날 책임회피에 남의 탓만 할 거란 생각은 안 하냐, 당신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물고 빨고 하는 이 딸들이 내 딸이기만 하냐, 내가 어디서 데리고 온 자식이냐, 도대체 어른이 돼가지고 자기가 지나친 건 생각 안하고 시작은 먼저 해놓고 거꾸로 애들보다 더하게 성질을 내는 일이 부끄럽지도 않냐, 나는 그러는 당신을 두고도 애들 앞에서 아빠 권위 살려주려고 당신 험담하는 말 한마디도 안 한다, 결국 너희들이 잘못했다는 말로 애들만 잡고 마는데 정말 속상하고 미안해서 미치겠다, 하면서 그간 쌓일 대로 쌓인 분통을 있는 대로 터뜨렸다.

 

 그리고 끝으로 못 박기를 앞으로 누구 탓하지 말고, 제발 엄마가 정말 크게 잘못한 일이 있다 해도 누구보다 먼저 아빠가 감싸주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달라, 한번만 더 애들 앞에서 내 탓하는 말을 했다간 그 다음 책임 못 질 일이 생길 터이니 그리 아시라 뭐 그랬다.

 

 그런데 오늘 아침 예의 그 버릇이 또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거 아닌가. 그런데 자신도 아차 싶었는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말꼬리를 감추고 출근했던 것이다. 나는 콩비지에 한술 뜨던 밥숟갈을 내려놓고, 소미는 그 전쟁 통에서 어찌 먹었는지 “엄마, 잘 먹었습니다. 엄마도 얼른 밥 드세요”하는데, 내 눈치를 보는 아이가 안쓰러워 꾹꾹 마음을 삭히고 머리를 빗겨주었다.

 “괜찮아. 소미 가면 소은이랑 먹을게. 아빠하고 소은이 땜에 정말 엄마가 속상하다. 그래도 이따가는 괜찮아질 거야. 걱정 말고 어서 가. 정곤이 나오겠다.”

 

 소은이는 방에서 펑펑 울면서 도연이 언니네 집에 자기 안 데리고 가면 어쩌냐고 난리였다. 그때부터 우는 이유는 그 문제로 옮아갔다.

 “아빠가 지나쳤지만 너도 좋은 말로 ‘아빠, 잠 덜 깨서 그러니깐 저 좀 내비두세요. 곧 일어나서 인사할게요’하지 그랬어. 아니면 누워서라도 ‘아빠 잘 다녀오세요’하기만 했어도 아빤 즉각 멈추셨을 거야. 그게 그렇게 악 쓰는 것보다 더 쉬운 일 아니니?”

 “이잉~ 맨날 나보고만 화내. 우리 식구들은 왜 맨날 나만 미워하냐구우~ 이~·잉~”

 소은이는 그러면서 변기에 앉아서 서럽게 하염없이 울었다.

 

 “화내는 게 아냐. 엄마는 누구 편도 들 수 없어서 속상해. 그러다가 아빠가 엄마한테 화내구 그래서 아빠랑 엄마랑 다투기라도 하면 소은이는 조금만 그래도 그거 되게 싫어하잖아. 그러니까 제발 좀 아빠한테 아침에 몇 마디만 좋게 해라 응? 이뻐서 그러시는 거잖아. 그러구두 아빠가 계속 소은이를 짜증나게 하면 그땐 엄마가 확실하게 소은이 편 들어줄게. 응? 진짜야. 서로 조금씩 양보했으면 좋았을 걸 너무 속상해서 엄만 밥맛도 없다 증말.”

 

 내 참! 다 큰 어른을 두고 여섯 살짜리한테 참으라고 설득을 하고 있다니…… 정말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일인지 모르겠다. 결국 내 착한 딸 소은이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 ‘미웁게’한 거, 발로 찬 거 죄송하다고 사죄하고 남편도 미안했다는 말을 하는 듯 보였다. 소은이가 전화를 바꿔주는데 이따가 이야기하자하고 일단 소은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창가에서 빠이빠이까지 마치고 돌아서서 다시 내가 전화를 했다.

 

 도대체 누가 어른인지 모르겠다, 정말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못살겠다, 다음부터 또 아침에 이런 일이 생기면 애들 학교고 뭐고 다 관두고, 나는 소미 손잡고 휘이 바람이나 쐬고 올 터이니 둘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소은이를 데리고 부대로 출근을 하든지, 그냥 두고 가버리든지, 하루 종일 한번 싸워보든지, 맘껏 하고 싶은 대로 할 시간을 주겠다고. 남편은 쥐죽은 듯 듣고 있다. 이미 소은이의 전화를 받고 모든 것이 화악 풀어져서 내가 뭐라든 달게 듣겠다는 눈치였다.

 

 “똑같은 문제로 아침에 난리가 난 게 벌써 두 번째야. 다음 세 번째 때는 나도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니깐 알아서 하셔! 응? 도대체 얼마나 더 이럴 거야? 내가 속상해서 정말.”

 “(슬금 눈치 보는 투로)뭘 얼마나는…… 또 몇 번은 더 그러겠지.”

 

 뭐어? 뭐시라고? 농담처럼 건네는 말에도 나는 다시 화가 났다. 아침에 나의 그 속상함과 부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서 다시 발끈했다. 나는 정말 속이 상하다. 더 커서 사춘기쯤 된 소은이와 남편 사이에 이 비슷한 유형의 트러블이 자주 생기면 어찌 사나 싶다. 그때도 소은이가 내 말 몇 마디에 쉽게 아빠에게 화를 풀까? 그 불같은 성격의 집요한 고집쟁이가? 장담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두 사람을 위해 푸닥거리라도 해야 할까 싶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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