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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어느 별에서 왔니?

M.미카엘라 2006. 4. 30. 14:54
 

 이젠 지쳤다. 거의 포기 상태다. 그런데 아침마다 입을 옷과 머리모양으로 내 진을 빼놓는 소은이에게 전면적인 자율권을 주자고 하면서도, 계절을 한참 앞질러 가려는 부분에서 대해서는 쉽사리 그러라고 하지 못해서 또 실랑이를 벌인다. 4월인데도 낮에 덥다고 아침부터 얇은 티셔츠 한 장 달랑 입고 가겠다고 하질 않나, 요즘은 반소매를 입고 학교를 가겠다고 난리다. 그래서 나는 한번 넋두리를 한 적이 있다.


손손 너의 취향은 어찌 그다지도 독특하냐, 소미언니와 엄마가 모두 너에게 어울리며 예쁘다는 스타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무지 턱없이 안 어울리는 것만으로 조합해서 그게 이쁘다고 그렇게 박박 우겨 입고 가는 그 마음은 뭐냐. 입어라. 그래. 입어라. 학교는 니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가라. 그런데 엄마와 함께 외출을 해야 할 때는 엄마 의견을 좀 받아들여다오.


 이랬는데 진을 빼는 일은 한 가지 더 늘었다. 만약 이틀 후쯤 나와 함께 어딜 가는 계획이 있다면 소은이는 미리부터 묻는다.

 “엄마, 나 뭐 입고 가라고 하실 거예요?”

 미리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인지 알아보고 그다지 맘에 안 들면 협상하고 조정을 하겠다는 의도다.


 사실 옷뿐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어디 누구네 가족을 만나기로 했다고 하면, 밖에서 저녁만 먹고 헤어질 것이냐, 아니면 그 집에 다시 들어가 차를 마시며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좀 나눌 것이냐, 혹시 자고 올 거냐, 자고 오면 다음날은 언제쯤 돌아올 거냐, 이런 질문들을 꼬치꼬치 하면서 미리 일정 점검을 하는 것이 예사다. 그래서 만약 자기가 좋아하는 가족들과의 만남이면(또래 친구가 있는) 여러모로 함께 놀 시간을 벌어보려고 여러 가지 제안을 하고 일정을 조정하도록 종용한다.


 소은이에게 이런 일을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른다. 옆에서 보다 못한 소미가 엄마 좀 그만 괴롭히라고 할 정도니까. 지난 수요일에 콘서트에서 만난 ‘사과꽃향기’님이 날 보더니, 지난 번 볼 때보다 얼굴 살이 빠졌다고 하신 소리를 듣고 소미는 소은이에게 타박을 했다. “엄마가 너 때문에, 니가 옷하고 머리 때문에 스트레스 드려서 엄마가 저렇게 살이 빠지신 거야”라며…… (ㅎㅎㅎ 솜솜, 얼굴만 빠진 걸 보니 그 살이 다 배로 간 것 갔구나)


 그런데 엊그제, 소은이 머리카락이 너무 자라서 길이만 좀 자르고 끝을 다듬자고 미용실에 갔다. 머리 긴 게 좋다, 자르기 싫다고 하는 걸, 그러면 머리 풀고 학교 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라, 묶지 못할 정도로 짧게 자르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라, 먹고 자라는 게 머리카락인데 무슨 걱정이냐, 하면서 그것도 며칠 여러 가지로 어르고 달래서 겨우 간 것이다.


 드디어 머리카락을 잘랐다. 자르는 중에도 자꾸 ‘너무 짧은 거 같애’라며 불안해했다. 미용사가 끝을 층 내어 자른 머리를 고데기 같은 것으로 구불구불 예쁘게 웨이브 생기게 말아주었는데, 그게 평소 할 수 없는 특별한 스타일로 참 귀엽고 깜찍했다. 집에 가서 드레스 입혀서 사진 한 장 찍어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옆에서 이를 보던 소미도 너무 이쁘다고 하면서 부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자기도 저렇게 해달라고 조르는데, 머리도 자르지 않은 아이에게 돈 받기도 뭣한 저 웨이브 머리를 귀찮게 해달라고 부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머리를 기르고 있지만 소은이 같은 분위기가 나기엔 아직 너무 짧았다. 그런저런 설명을 하는데 오늘은 소미가 고집을 부렸다. 삐져가지고 저쪽 구석 소파에서 얼굴을 파묻고 있더니만 곧 소리 없이 찔찔 우는 게 아닌가. 내 참…


 그런데 문제는 또 그 다음이다. 정작 공주풍의 웨이브 주인공은 입이 댓발 나와 가지고 의자에서 내려오자마자 두 손으로 머리를 벅벅 만지는 게 아닌가. 자기는 머리가 맘에 안 들고, 이런 머리 싫으니까 당장 풀고 싶은데, 지금은 차라리 그냥 싹싹 빗어서 묶어달라는 것이다. 나는 기껏 정성을 다해준 미용사 들을까 민망하여 얼른 커트비를 내고 문밖으로 나와서 이렇게 예의 없냐며 화를 냈다. 한번 물로 감으면 없어지는 웨이브인데 맘에 안 들어도 집에 갈 때까지만 좀 참으면 될 것이지, 기껏 생각해서 해준 사람 기분 나쁘라고 그런 소리 하느냐고 했다.


 “작년에 허브 아일랜드 갈 때 현주이모가 해준 머리도 지금하고 비슷한데 그땐 이쁘다고 아주 좋아했잖아. 언니는 그때도 지금도 이런 머리 못해봐서 저렇게 울기까지 하는데.”

 “현주이모는 조금 구불거리게 해줘서 이뻤는데 이건 너무 구불거린단 말예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그냥 묶어주세요.”


 내 눈치를 조금 살피는 듯하면서도 결국 할 말은 다 했다. 나는 벅벅 손가락빗으로 빗어서 대강 묶어주고 장을 보기 시작했다. 정말 이 종잡을 수 없는 작은 딸의 취향과 성격에 내가 요즘 괴롭다. 되도록 들어주려고 노력하는데 자주 분쟁이 일어나면서 극적으로 타협의 결말을 볼 때면 내 속으로 입을 앙 다물면서 중얼거린다.


 ‘그래. 그 고집, 유별남, 집요함, 포기하지 않는 근성… 다 좋다. 나에게는 없는 것. 살면서 때로는 꼭 필요한 것이지. 그런데 손손. 너 그 성격 값 꼭 해야 한다. 타고난 성격이라 버리기 힘든 거라면 좋은 쪽으로 그 값을 꼭 하렴. 알았지?’ ***

 

   

                                           

      

 머리 감기 직전, 겨우 한 커트 건졌다.

미용실 나올 때와 많이 다르다.

핀도 꼽고 더 귀여운 스타일이었는데...

 

                     

* 주: 외이부=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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