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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말,말,말!

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 (13)

M.미카엘라 2006. 6. 7. 00:12
 

<학교의 맛>

 3월 말께 소은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나눈 말.

 “엄마, 오늘 학교에서 선생님이 심부름 시키셔서 1학년 3반 교실에 갔었는데, 거긴 초록색 칠판이 없고 하얀색 칠판만 있어요.”

 “본래 교실이 아니었나? 기본적으로 초록색 칠판은 다 있는데…. 그럼 화이트보드니까 글씨도 마카펜으로 써야겠네.”

 “네. 그럴 거예요. 에이, 그래도 학교는 분필로 써야 제 맛인데….”



 <계산>

 어떤 집을 방문했는데 거실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를 보고 짖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앞다리 하나가 잘려서 없는 장애견이었다. 주인 부부가 14년 전에 전방에서 군 생활하실 때 그 동네에 버려진 유기견을 데려다 이때껏 키운 것이라고 해서 놀랐다. 거의 자식 같은 애완견인 셈이다. 소은이가 주인께 물었다

 “그럼 얘는 몇 살이예요.”

 “14살. 넌 몇 살이지?”

 “여덟 살이요.”

 “그러니까 너보다 얘가 나이가 한참 많은 거야.”

 “그럼 이 강아지는 남자예요? 여자예요?”

 “남자 여자? 하하~ 얘는 수컷이야. 그러니까 남자.”

 “아, 그럼 오빠네!”


 

 <포기>

 시리얼을 우유에 타 먹다가 소은이는 요즘 꼭 조금씩 남긴다. 많이 남기는 것도 아니다. 자기 먹을 양 잘 조절해 우유에 타서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하는데도 잘 안 된다.

 “너, 엄마가 이렇게 음식 남겨서 버리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자기가 버리는 음식 하늘나라에 저축했다가 나중에 거기 가서 한꺼번에 먹는다구요.”

 “이제 큰일이네. 너 요즘 시리얼 자꾸 남겨 버려서 꽤 모아졌을 텐데 걱정도 안돼?”

 “치,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그걸 다 어떻게 모아?” (어쭈~ 이제 좀 컸다고…)

 “다 모아. 하늘나라가 지구만한 줄 알아? 훨씬 커.”

 “그래도 뭐 내가 이만큼 안 먹고 버린 줄 어떻게 알아요?”

 “하느님은 다 아셔. 정말이야. 나중에 가서 봐봐. 진짠가 아닌가.”

 내가 확신어린 목소리로 말하니 조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남은 우유를 후루룩 마셔버린다.

 “에휴, 하느님은 눈치도 빠르셔.”



<애들이 더 무서워>

 나는 연하의 남편과 산다. 남편은 생일이 빨라 한 해 일찍 학교에 들어간 학생으로 나보다는 무려 8개월이 늦다(^^). 그런데 하루는 네 식구가 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남편이 소미 보고는 물 잔에 네 식구 물 좀 따르라고 하고, 소은이 보고는 옆에 있는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앞앞이 예쁘게 놓아보라고 시켰다. 그런데 소은이가 옆에 앉은 내 앞에 가장 먼저 수저를 놓으려고 했다.

 “손손, 아빠 앞에 먼저 놓는 거야. 아빠가 우리 집에서 젤 어른이잖아.”

 내가 말했더니 소은이가 제 아빠 앞에 수저를 놓으면서 다 안다는 식으로 말했다.

 “사실은 엄마가 더 나이 많으면서….”

  

 (요즘 1학년들은 입학하면 친구들에게 “넌 무슨 띠니?”하고 물어본다는데, 정말 그러고도 남겠다.)



 <제부도>

 시간에 맞춰 물길이 열린다는 화성의 제부도를 밤에 간 적이 있는데, 어두운 데서 가로등만으로 본 경치도 아주 근사하고 멋있었다. 바다는 왼쪽, 기암괴석은 오른쪽에 두고 긴 나무다리 길이 몇 킬로에 걸쳐 놓여졌는데 아주 운치 있고 근사하다. 왜 사람들이 제부도 제부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같이 간 언니에게 농담을 했다.

 “이런 데는 남자친구랑 와야 되겠네. 아주 데이트하기 좋구먼.”

 그랬더니 언니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옆에서 걷던 소은이가 냉큼 옆에서 끼어들었다.

 “그럼 난 양호랑 와야겠네.”

                               

 

  *양호는 소은이의 베스트프렌드다. 그야말로 여자친구 같이 생각하는 아주 사이좋은 남자친구인데, 양호는 본래도 순하지만 소은이에게는 유독 무엇이든 후하고 너그럽다. 자기주장이 강한 소은이와 거의 트러블이 없어서 나는 양호가 늘 고마웠다. 성남 살 때 헤어져서 춘천으로 이사 갔는데, 지난 4월에 만나고도 소은이는 양호를 자주 보고 싶어한다.



 <개사>

 소은이가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부르다가 슬쩍 개사를 했다. 그랬더니 소미가 옆에서 계속 끼어들며 훈수를 하는데…

 “울릉도는 우리 땅”

 “원래 우리 땅이었어.”

 “… 제주도는 우리 땅.”

 “거기도 원래 우리 땅이야.”

 그랬더니 소은이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환한 표정으로.

 “아, 그럼 우리나라는 섬이 세 개네.”

 크아~~~~



 <닉네임>

 내가 어떤 블로그에 들어가서 댓글을 읽고 있을 때였다. 쭈쭈바를 들고 먹다가 옆에서 모니터를 슬쩍 보던 소은이가 특별한 문자나 숫자 없이 닉네임을 ‘∥∥∥∥∥ ’  이렇게 만든 사람이 쓴 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이 사람은 누구예요? …… 아하~ 바코드님?”



<해석>

 “손손, 국수 삶고 있어. 렌지 가까이 가지 마.”

 “엄마, 이 냄비는 어디까지 뜨거운데요?”

 “손잡이 전까지. 플라스틱 있는 데는 그렇게 안 뜨겁지만.”

 “왜요? 플라스틱은 왜 안 뜨거워요?"

 “이 뜨거운 열은 쇠끼리만 전달돼. 그리고 플라스틱에는 전달되지 않거든.”

 “아하~ 쇠하고 플라스틱하고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니까 못 전해주는 거고, 쇠하고 쇠끼리는 서로 잘 아는 사이라서 잘 전해주는 거구나.”



<벌써부터>

 강아지나 토끼를 너무나 기르고 싶은 소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청 졸라댔었다. 왜 못 기르는 거냐고 푸념을 하다가 애원을 하다가 삐지기도 몇 차례. 그런데 강아지 무서워하는(초롱이 사건을 기억하고 계신 분들 많으시리라) 소은이. 조용히 있다가 하는 한마디에 우리는 나가 떨어졌다.

 “난 강아지 사면 집 나갈 거야.”

 에구구, 벌써부터… 결국 작은 수족관에 열대어 사서 넣어주면서 일단락되었다. 물고기는 물 밖으로 나와서 자기 괴롭힐 일 없어서 좋다나?



 <배가 불렀어>

 남편은 아이들을 꼭 껴안고 뽀뽀하고 숨 막히게 안 놔주고 하는 스킨십이 대단하다. 그런데 소미와 달리 소은이는 그런 대단한 스킨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다. 어느 일요일,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난 남편이 아직도 몸이 나른한지 잠에서는 깨기는 한 것 같은데 눈은 감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소은이가 지나가는 기척을 듣고는 잽싸게 소은이 다리를 덥썩 잡아 붙들고는 안 놔주면서 “손손, 일루 좀 와봐~. 아빠 한번만 안아줘잉~ 잠 좀 깨게…” 하면서 매달렸다. 그러자 소은이가 붙들린 채로 필통에서 뭘 뒤적뒤적거리며 무심한 목소리로 한 마디.

 “난 아빠의 이런 지독한 사랑이 너무 싫어.”

 그런데 이어지는 남편 말이 더 걸작이다.

 “아빠는 이런 지독한 사랑밖에 할 줄 몰라앙~. 근데 손손, 너 배가 많이 불렀구나.”



 <무서운 조건>

낮에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보다가 스물스물 졸음이 와서 얕은 잠에 빠지려는 찰나, 어렴풋이 들리는 솜손의 대화에 잠이 팍 깬다.

 “언니, 나 이거 주라.”

 "안돼. 이건 안 돼.“

 “언니이~ 이거 나 주라. 나 이제 언니 말 잘 들을게.”

 “안 된대두우…”

 “언니이, 한번만, 응?”

 “좋아. 근데 조건이 있어.”

 “뭔데?”

 “그럼 너 엄마 나한테 넘겨!”

 “?……”

 “너 이제 엄마 사랑해도 안 되고, 엄마한테 뽀뽀도 하지 말고, 엄마한테 안기지도 마. 알았지?” 



 <쯧쯧~ 그건 아니야>

 “엄마, 다음 주 화요일이 무슨 날이예요? 학교 안 가는 날이던데.”

 “응, 현충일.”

 “현충일이 뭐예요?”

 그 대답은 언니인 소미가 했다.

 “응, 현충일은 나라를 지키려고 애쓰다가 돌아가신 어른들을 위하여…”

 딱 여기까지 설명했는데 이어지는 소은이의 한 마디.

 “건배~”

 

 

 <이름>

 월드컵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이 노르웨이와 평가전을 갖던 날이다. 텔레비전에서 노르웨이 현지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보는데 기자의 말이 끝나자 소미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저 기자 이름 참 특이해요. 성은 괜찮은데 이름이 특이하다. 슬로가 뭐야, 슬로가… 이름이 ‘오슬로’래.”

 ㅎㅎㅎ 기자가 소식을 전할 때 화면 아래 쓰인 글자를 보고 하는 소리다.



 <어차피>

 “엄마는 마음도 잘 변해. 그렇게 ‘달’만 좋아하더니 이제 ‘별’로 바꿨어요?”

 내가 ‘두번째 달’이라는 밴드의 연주를 좋아해서 한창 닳도록 들었는데, 최근에는 ‘꽃별’이라는 젊은 해금연주자 음반을 줄창 들어대니 소은이가 하는 말이다. 

 “아냐. 엄마가 아직도 달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건 요즘 운전할 때 듣잖아. 마음이 변한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음악가가 하나 더 는 것뿐이야.”

 내가 항변했더니 소미가 점잖게 거드는 말.

“소은아, 어차피 모두 하늘에 있는 거야. 그것도 밤하늘에. 함께.”

 

                 

                                                    내가 좋아하는 '달'과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