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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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회초리를 들다

M.미카엘라 2001. 9. 21. 22:58

책꽂이 위 달력엔 9월 17일이 동그라미 쳐져있다. 내가 소은이에게 호되고
야무진 '맴매'를 선보인 날이다. 처음에 동그라미를 한 뜻은 자주 이런 일이
있으면 애한테 내성이 생겨 더 점점 더 호되게 해야 들을 터이니 그 첫 본보기
날을 기억하여 자제하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동그라미를 보면 볼수록 부끄럽고 못난 내가 들여다보인다. 참
이제 만 26개월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잘 달래고 얼러서 다스리지
못하고 매를 들었는가 싶다. 눈물로 얼룩지고 손바닥과 발바닥이 벌건 소은이가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그냥 위로 삼아 나를 합리화하자면 소은이의 요즘 모습은 고집과 욕심, 심술,
공격적, 막무가내로 똘똘 뭉쳤다. 이웃의 친구 선재나 채구에게 쌈닭처럼 덤벼서
싸우고 뺏고 소리 지르고 할 때만 해도 또래끼리 그러면서 크는 게지 했다.
내 자식이니 그나마 귀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소미 얼굴을 쥐어뜯으려 덤비는 일은 예사고 그 몸을 실어
소미 몸뚱이에 엉겨서 뭉개기까지 한다. 또 성질이 나면 "엄마, 히니 많이 화났어.
씨―" 이러면서 가지고 있던 물건을 팩팩 내던진다. 장난감, 밥상머리에서 숟가락,
들고 있던 우유 등등 심지어 최근엔 나한테도 던지고 발로 차고 등이나 다리에
매달려 꼬집기까지 한다. 그 얼굴을 보면 눈두덩이가 볼록하도록 힘이 들어간
채로 눈을 치켜 뜨고, 콧구멍은 훅훅 김이라도 날 듯한 데다가 입은 앙다물고
한껏 독이 올랐다.

거기다 쉬운 말로 '개기기'도 소은이의 특기다. 심술이 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하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끝까지 해보겠다고 덤빈다.
안 되면 들고 먹던 우유를 내 앞에서 철철 쏟아버리며 나를 반항의 눈빛으로
빤히 바라보는데 참 기가 막힌다.

그날도 하루 종일 이런 문제로 실랑이를 벌였는데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에
급기야 꼬투리를 잡혔다. 과자 봉지 하나를 두고 두 아이는 서로 봉지 채 들고
먹겠다고 그악스레 싸워댔다. 다른 과자를 주겠다는데도 서로 그거 아니면
안 되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소미는 다른 그릇에 덜어주는 것은 안 먹겠다고
난리, 소은이는 "히니가 먼저 들고 있었자나" 이런 논리를 세우면서 거기다
절대로 나누어 먹지도 않겠다고 난리, 이런 형편이었다.

나는 조용히 장식장 제일 위칸에 두었던 대나무 회초리를 들고 엄하고 낮은
목소리로 모두 방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소미는 대번에 울먹이며 "엄마, 잘
못했어요"가 나왔다. 소은이는 사태파악은 여전히 못하는 눈치였지만
침대로 냉큼 기어올라가 난간 쪽에 소미와 나란히 걸터앉았다.

사실 소은이를 다잡을 생각이었다. 제 언니를 이겨먹으려고 드는 일을 잡아야겠고
무슨 일이든 막무가내, 제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일을 잡아야겠다 생각했다.
사실 소미는 내가 벼른 계획 속에 속하지 않았는데 공교롭게 걸려들었다. 이런
시간은 소미가 미술학원 가고 난 후 소은이와 단 둘이 갖으려 했었다.

하나 하나 논리적으로 물었다. 너무 오래 전 이야기는 안 되고 조금 전 이야기와
낮에 나를 때리고 발로 찼던 일을 가지고 말했다.
"과자 혼자 먹으면 이쁜 어린이야? 미운 어린이야? 엄마 발로 차면 돼? 안돼?
물건 막 집어던지면 돼? 안돼? 엄마를 막 때리는 어린이는 이쁜 어린이야?
미운 어린이야?"

손바닥을 맞으면서 그때야 바른 소리가 나왔다. 아이들은 보통 두 가지 선택하는데
있어서 뒤의 것을 고른다는 걸 알고 이리저리 거꾸로도 물었다.
"안 돼? 돼?"
"미운 어린이야? 이쁜 어린이야?"
"잘못했어? 잘했어?"

아무 것도 모를 때라고 하지만 모르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헷갈리게 물어도
다 바른 대답을 했다. 잘못했다는 것도 잘 알았다. 나는 정말 아프다 싶게
때렸다. 손바닥과 발바닥을 각각 모아 쥐고 다섯 대 이상씩은 때렸다. 야무지게
회초리를 쓰지 않을 바엔 보이지도 않겠다 생각하며 든 터였다.

"그리고 소미 너!"
참으로 소미를 이렇게 야단치는 일은 안 하고 싶었다. 너무 겁을 먹어서 가엾기까지
했다. 그래도 일단 시작한 마당이다. 매를 드는 일만 피하고 말로 나무랐다.
"봉지에 든 과자랑 그릇에 담아주는 과자랑 같아? 안 같아?"
"같애요."
"봉지에 든 과자하고 그릇에 든 과자하고 맛이 달라? 같아?"
"같애요."
"그리고 누가 먼저 봉지 들고 있었어?"
"소은이요."
"그럼 어떡해 해야 돼?"
"제가 양보해야 돼요."
"엄마 생각도 그래. 하나밖에 없는 물건은 먼저 가지고 있던 사람이 양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잖아. 봉지는 소은이가 드는 게 맞아. 그리고 너랑
나누어 먹지 않으려고 고집 부리는 건 엄마가 어떻게 해서든 나누어 먹게
할 생각이었어. 무슨 말인지 알지?"

소미는 이러면 끝난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더 이상 떼를 쓰거나 막무가내로
고집 부리는 일이 적다. 말귀를 제법 알아들을 무렵부터 그랬기 때문에 나는
이 작은딸의 터무니없는 행동들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체벌에 대한 찬반논쟁은 잡지의 지면이나 공중파를 통해서 무수히 다루었던
주제다. 찬성은 찬성대로 논리가 정연하고 절대 반대는 반대대로 교육적 효과가
나름대로 있는 문제라 나도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실전에서 나는 체벌을 한다. 이제 다섯 살, 세 살 딸아이 둔 엄마의
이런 발언에 펄쩍 놀랄 '반대파'도 계실 것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아이에게
손가락으로라도 때리지 않는 부모를 보았다. 참 이런 부모를 보면 계모 같은
모습을 보인 며칠 전의 내가 왜 참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약으로
쓰는 매라 한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나를 굉장히 훌륭한 '맹모' 정도로 보시는 몇몇
분들 때문에라도) 소은이는 자주 엉덩이나 종아리를 손으로 찰싹 때린 적이
많았다. 성질 급한 데다 하도 다급하고 말릴 길이 없을 때 말 한마디 않고
행동을 보여서 울렸다. 그리고 수습했다.

나는 이제 달력의 동그라미를 쳐다보며 쓸데없이 내성을 기르는 이런 행동은
결단코 안 하겠다 다짐했다. 그래야 진짜 매가 약으로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은이를 대하는 방식에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 되도록 마찰을 일으킬 소지를 만들지 말자. 아주 아니다 싶은 것(언니에
대한 하극상(?), 위험한 일, 버르장머리없는 일 같은)만 빼고는 그대로 하게
내버려두자.
- 화급한 불을 끈답시고 손으로 한두 대 때리는 일을 절대 삼가자.
- 소미하고 한 것처럼 미리미리 어떤 상황이 올 것에 대비해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다짐을 받아두는 습관을 들이자. 소은이가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는
데는 이 세 번째 원칙이 무너질 공산이 크지만.

두 아이를 이 정도에서 야단치길 그만두고 안고 쓰다듬어서 마음을 좀 달래주었다.
반응이 각각이었다. 소미는 표정은 좋아졌지만 내게 붙어서 더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소은이는 구정물 쫄쫄 흘러내린 눈물자국 가시기도 전에 금방 헤헤거렸다.
아, 벌써 이걸 다 잊었단 말인가.

그런데 어제 저녁, 또다시 뭐가 뒤틀렸는지 밥상에서 숟가락을 픽 던졌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차, 싶은 표정이 스친 듯했는데 여전히 심술난 얼굴엔
변함이 없었다. 나는 목소리를 쫙 깔고 말했다.
"히니, 숟가락 집어."
안 집는다.
"이런 거 집어던지면 안 된댔지? 계속 그러면 엄마가 어떻게 하지?"
그랬더니 냉큼 집어든다.
이거 잘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원…. 아, 명답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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