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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손의 솜씨

솜손 출판사

M.미카엘라 2006. 8. 28. 12:59
 

요즘 비교적 많은 부모들의 공통된 바람이 이런 것 아닌가 싶다. ‘내 아이가 되도록 일찌감치 어떤 일에 재능을 보이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면 한다’는 것. 일찍 그런 소질과 재능이 발견되어 클 때까지 한결같이 가져갈 수 있다면 까짓 대학 진학에 목숨 걸지 않을 수도 있다는 대범(?)한 생각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 어른들도 자신이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열정이 생기는지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어린이나 청소년인 내 자식들이 평생 가질 직업이나 일에 대해 일찌감치 뚜렷한 확신을 가져주길 원하는 것은 무리지 싶다. 하지만 정말 일찌감치 자기 재능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 일치점을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부모는 슬슬 궁뎅이 두드려주면서 격려해주고 칭찬해주면 될 터이니 한결 부모노릇에 신바람이 날 것 같다.


 소미 소은이의 경우도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좋아하는 일은 몇 가지 뚜렷하게 있긴 한데, 그 중에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고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가 무엇인가 손으로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일이다. 종이든, 찰흙이든, 재활용쓰레기든 재료구분 없이 뭔가 만들기를 시작하면 세상이 다 조용하고 한 시간 두 시간도 너끈히 거기에 몰두한다.

 

 어제도 두 아이는 더운데 방문 꽁꽁 걸어 잠그고는 두 시간 가까이 나를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방문 쪽은 흘깃도 안할 테니 더운데 문은 열어놓고 하라고 해도 절대 그럴 수 없단다. 다 완성해서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게 요점인데 그냥 있어주는 게 도와주는 일일 것 같아서 나는 거실에서 책만 읽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소곤거림만 간간이 들릴 뿐, 평소와 견주면 거의 쥐죽은 듯 조용한 두어 시간이 지난 뒤, 두 아이가 입으로 요란한 빵빠레 소리를 내면서 나타나 내게 내민 것은 두 권의 책이다. 한 권은 진짜 책이고 한 권은 제본이 엉성하지만 책을 잘 흉내 낸 또 하나의 책이었다.


 우리 집에는 지난 6월에 산 20권의 전집 책이 있다. 나라별로 그 나라의 전래이야기 몇 편과, 그와 관련된 그 곳의 문화를 이어령 선생이 알기 쉽게 해설해놓은 내용이 사이사이 구성되어 한 권을 이루는 책이다. 소미 소은이 말로는 거기 다른 나라는 다 있는데 우리나라만 빠져 있어서 불만이라, 자기들이 아예 ‘한국 편’을 만들어버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래 있는 책과 자기들이 만든 책을 비교해보라고 두 권을 내민 것이다.


 나는 찬찬히 비교하면서 참 애 많이 썼구나 싶었다. 컴퓨터 인쇄용지 몇 장을 꾹꾹 찍어 묶어 만든 책의 장정(裝幀)은 보잘 것 없었지만, 그 안의 구성은 나름대로 알차게 정성을 다해 만든 티가 역력했다. ‘박소미 글/ 박소은 그림’으로 사이좋게 분업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고 적지만 꽤 정확하게 찾은 자료도 돋보였다. 빨리 완성해서 빨리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평소보다 글씨는 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기특한 생각에 칭찬을 듬뿍해 주었다.

 

 

 

    목차

 

 

 두 나라의 개요        

                                  

                                         

 

 

전래 이야기와 문화 소개가 한 세트를 이루는 부분

 

 

 

소미는 문화소개라기보다 이야기의 교훈에 집중했다

 

 

 


 사실 소미소은이가 그동안 만든 책은 이밖에도 아주 많다. 크기나 다루는 내용, 표현방법도 다양하고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입체적으로 등장인물을 세운 팝업책도 있고 투명한 아크릴 지를 이용해서 화분의 식물이 커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담은 것도 있다. 주로 소미작품인데, 나는 이 작은 책들이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 오래오래 간직하려고 잘 두었다.

 

 

* 주인공들을 모두 세워 놓은 인체 탐험기.

   표지의 '3~9'는 읽기 적당한 나이를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

   뒷표지에 책의 평가란과 바코드까지 갖춘 것이 특별하다.

 

 

 

               

 

                                           

 

 

 

 

* 책 갈피갈피마다 투명한 셀로판지를 네모로 종이를 판 자리에 붙여

   꽃이 자라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뒷장이 드러나지 않게

   사이사이 가리면서 보라고 친절하게 종이까지 붙여놓았다.  

 

 

 

 

 

 

오늘 아이들은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지만, 나는 아이들이 만든 책을 보면서 겨울방학 계획을 한 가지 세웠다. 요즘 손으로 제대로 책을 만들어볼 수 있는 어린이 강좌가 몇 군데 문을 연 걸로 아는데, 아이들이 원하면 겨울에 그 과정을 배워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모양을 제법 갖춘 책에 삐뚤빼뚤한 글씨, 꼬물거리는 즐거운 상상이 가득한 그녀들의 진화한 핸드메이드 책을 기대해본다. 아이들이 문밖을 나선 후 일찌감치 집안일을 마치고 커피 한 잔을 타서 초원의 바람 냄새가 느껴지는 음악을 듣는 가운데, 아직도 두 아이의 재잘거림이 집안 구석구석 춤추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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