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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순화를 부탁해!

M.미카엘라 2004. 7. 11. 15:41
 

 아이들이 어찌 그렇게 말을 잘하느냐고 한다. 무얼 어떻게 가르쳤기에 그러느냐고 한다. 키도 자그맣고 얼굴들도 작고 몸도 작은 편이라 한두 살은 족히 적게 보는 소미, 소은이가 입을 열면 사람마다 묻는 소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내겐 딱히 노하우라고 일러줄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으니 늘 우물쭈물이다.

 

 소미, 소은이는 둘 다 돌이 지나고 말문이 터진 이후, 그야말로 눈부시게 말의 성찬을 내 노력 없이도 스스로 차려나간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어주고 호기심 많아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할 때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대답에 성실했던 것밖에 없다. 이것을 ‘노력 없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냥 즐겁게 내가 재밌어서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힘이 별로 안 드는.

 

 난 지금은 자주 그런 건 아니지만 아이들과 턱없이 어려운 주제를 올려놓고 이야기하길 잘한다. 이라크 전쟁과 파병문제, 북한과 통일, 신문의 역할…(이거 자랑인가? 낄낄!). 근데 별 거 없다. 대부분 아이들이 먼저 물어 와서 대화는 시작된다. 그러면 그냥 쉬운 말로 한다. 그리고 꼭 유념하는 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내가 아는 한에서 사실만 말한다.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게 다다.

 

 이제 애들이 좀 길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내가 길이 든 건가? 애들이 뉴스를 보다가 내게 질문하기 시작해서 대답해주는 재미가 크다보니 이렇게 된 건지, 아니면 내가 대답을 잘 받아주니 질문하는 걸 애들이 즐겨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닭이 먼저든 달걀이 먼저든 옆에서 우리 모녀의 대화를 우연찮게 들은 사람들은 아주 기가 막혀 웃긴다는 얼굴이다. 하긴 나도 여섯 살, 여덟 살 딸들하고 너무 수준 높게(?) 웃긴다 싶어서 가끔 피식 웃고 만다.

 

 그래도 암튼 이런 것들이 말을 잘하게 만든 까닭이라면 까닭일 수 있다. 그런데 난 요즘 소은이의 ‘말씨’가 심히 걱정스럽다. 말을 잘하는 수준을 넘어서 요즘 말은 사정없이 여러 경로로 오염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 우리 반에 예린이 예진이라고 쌍둥이가 있거든요. 난 예린이가 무지 좋거든요. 예린이랑 같이 앉고 싶은데 선생님한테 말하면 들어주시까요?”

 “소은이는 예린이 예진이를 구별할 수 있어? 쌍둥이라며?”

 “네, 그럼요. 예진이는 얼굴에 점이 하나 있구요, 볼따구니가 예린이보다 빵빵해요.”

그러면서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빵빵한 볼을 잡아당긴다. “선생님, 그거 짱 재밌어요.” 이런 말 정도는 애교다.

 

 한 번은 집으로 놀러온 애들이랑 놀다가 제 맘에 안 드는 일이 생기자 이렇게 말한다.

 “안돼! 그러면 우리 아빠한테 작살나!”(참고로 남편이 소은이를 작살낸 적은 없다.)

 또 소미에게 2학년 아이 하나가 짓궂게 구는 모양인데 그때 소은이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그 2학년 오빠한테 이렇게 말해. 내 동생한테 일러준다구! 내가 화~악 ‘코피 터트리기’ 할게! 혼내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야.”

 

 소미도 말이 빨랐고 지금도 또래보다 말을 잘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이게 도대체 조폭 똘마니들에게서 나올 말이지 어디 유치원생 입에서 나올 말인가?

 “소은아. 볼따구니 아니고 볼! 작살나가 아니고 혼나! 짱 재밌어요가 아니가 너무 재밌어요야. 알았지? 그리구 코피 터트리기가 뭐야? 소은이 깡패야?”

 두 팔을 꼭 잡고 눈을 똑바로 보게 하고 ‘안 한다’는 다짐 받으면 뭐하나? 기껏 약속 해놓고 급할 때는 여전히 ‘볼따구니’다.

 

 그래도 가끔 기특한 소리로 사람들을 인상 깊게 하는 모양이다. 오늘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하는 대녀가 있어서 거길 다녀왔는데, 대녀의 할머니께서 소미, 소은이를 데리고 가게 집을 가셨다. 애들은 할머니가 먹고 싶은 거 고르라고 했더니 '마이구미‘하고 ’쫀쪼니‘ 한 개씩을 딱 집어 들더란다. 그 분이 먹고 싶은 거 다 고르라고 한 번 더 말씀하셨는데 소은이가 “할머니 돈 많이 들어서 안 돼요. 이거면 됐어요”하더란다. 그 소릴 저녁식사 함께 하려고 모여드는 당신 자식들에게 서너 번도 더 하시고, 우리들이 돌아올 때는 애들한테 만 원짜리 하나씩 쥐어주시며 ’사 먹고 싶은 거 다 사먹어라‘하시면서 그 소리 기특하다고 또 한번 하셨다.

 

 난 정말 이거 가르친 적 없다. 아무래도 우리 소은이는 이제 하산해야 하려나보다. 더 가르칠 것이 없다. 크크! 생각도 많고 아는 말도 많다. 다만 언어순화만 쫌 되면… 그때 내 진짜 하산시키리.

 

유일레저, 오리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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