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유리창엔 비 마음에도 비 본문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미친 듯이 내리다가 어느 순간 뚝 그쳐버리는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최근 몇 년 여름 동안 습관처럼 그렇게 온 나라를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피해를 입혔어도,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빗소리는 열대지방의 더위를 식혀주는 스콜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무서워…’하면서도 어느새 비를 즐기고 있는 나를 본다. 오늘도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앞이 안 보일 정도의 비를 만나 ‘무서워’ 이러면서 핑계 김에 차를 한 곳에 세우고 친구와 전화통화도 하고 음악도 듣고 그러다가 돌아왔다. 워낙 어디 여행이랍시고 길을 떠나도 무수히 비를 몰고 다닌 경험이 있어서 차 안에서 비를 맞는 기분은 너무나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런데 좋은 일에도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서랍이 헐렁하다. 식구대로 연일 벗어둔 빨래는 쉬 마르지 않고 빨래건조대는 빈 자리가 없다. 저녁 무렵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운동복은 비가 오지 않아도 물에 담갔다가 건진 것처럼 땀으로 척척하다. 애들은 또 좀 벗어놓는가. 소은이는 하루에 옷을 기본 세 번은 갈아입는다. 유치원 갈 때 옷 입고 다녀와서 완전히 이상하게 골라서 한번 갈아입고 자기 전에 잠옷이다. 오늘 소미는 우산에 비옷까지 가져간 애가 머리부터 장화 속까지 다 젖어가지고 왔다. 애를 발랑 들어서 욕실에 넣어두고 옷 벗어놓은 자리를 보니 꼬질꼬질해져서 젖은 책가방과 실내화까지 한 짐이었다.
늘 주장하는 바, 나는 우리 집에서 돈을 가장 적게 쓰는 경제적인 인간이다. 외출을 자주 해서 사교비가 드나(거의 칩거 수준이다), 그래서 옷을 자주 사길 하나, 먹기를 많이 먹나(요즘은 가벼운 간식 껴서 두 끼 정도 먹는다), 술을 하나, 담배를 하나, 교육비가 드나, 테니스 레슨비가 드나, 학습지 값이 드나, 그리고 또 옷도 적게 벗어놓는다. 수도세, 전기세, 세제값 모두 절약하는데 일등공신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암튼 빨래건조대에 무겁게 걸린 젖은 빨래를 보면, 예년보다 짧다던 장마가 이제 조금은 길게 느껴진다. 날씨에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감상적이 되는 것이 좀 부끄러운 나이다 싶은데, 요즘은 날씨 탓을 하면서 복잡하고 마음 쓰이는 일들에서 이만큼 비껴나고 싶을 때가 많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땐 나도 모르게 노골적으로 신경질쟁이가 되어 아이들한테 버럭 소리칠 때도 많으니 그게 비 탓은 아닐 건데 좋아한다, 즐긴다 하면서도 나 자신에게 겨누던 반성의 화살을 이놈의 비… 하면서 돌린다.
그런데 아이들도 그런 걸까? 비 때문에 심경의 변화가 커질 수 있을까? 소은이가 요즘 좀 다르다. 생전 처음 유치원을 그만 다니겠다고 하질 않나, 벌써 두 번의 방학 동안 나하고 떨어져서 할머니 댁에서 일주일씩 즐겁게 보내던 행사를 올 방학 땐 절대로 안 하겠다 선언했다. 할머니 댁에 안 가겠단 소리다. 어머님은 애들 방학만 기다리시는데 이 사실을 알고 많이 섭섭하신 눈치로 벌써 삐져계신다.
“소은아, 너 엄마한테 스트레스 주지 마.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엄마 암 걸려!”
소미는 열심히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나를 보다가 결국 소은이에게 잔소리를 하는데 자극적이다.
“얘기 해봐. 유치원에 다니고 싶지 않은 이유 다섯 가지만 말해 봐. 엄마가 들어보고 이 이유가 적당하다 싶으면 생각해볼게.”
그런데 그 다섯 가지 이유란 게 이렇다.
첫 번째,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두 번째, 유치원 갔다가 돌아올 때 계단 올라오기 싫어서. 땀나니까.
세 번째, 집에 돌아올 때 유치원 버스에서 졸다가 내리려면 ‘짜징’이 나서.
네 번째, 친구들이랑 싸워서(애들 때려서 선생님께 혼났다는 말은 제 아빠에게만 했다).
다섯 번째, 유치원 다니면 테레비 쪼끔밖에 못 봐서.
어미가 되어가지고 이런 이유로 유치원 안 보내야겠는가? 난 유치원을 아무 때나 쉽게 빼먹을 수 있는 곳으로 알게 하지 않았다. 유치원을 보냈다 안 보냈다, 이 유치원 보내다, 저 어린이집 보내다, 다시 요기 미술학원 보내다 하는 엄마의 아이들을 부러워할까봐 많이 신경 썼다. 현재 유치원이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아도 아빠 따라 자주 이사하는 아이들이라 되도록이면 옮길 생각은 하지 않으며,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을 믿고 보내는 것이 낫지, 어디든 잘 옮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할머닌 너희 방학만 기다리시는데 어쩔 거야? 너무 섭섭해 하시는데. 할머니랑 이모할머니랑 엄마보다도 훨씬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시고, 무진장 예뻐해 주시고, 날마다 욕조에서 물놀이하고 놀 수도 있는데…”
그래도 완강하다. 안 가겠단 마음에 변화가 없다.
“나는 방학 때 하얀새 이모네 갈 거구, 서이 언니네 집만 갈 거야. 난 거기서 자고 올 거야. 그리고 할머니 집엔 안 가.”
할머니한테 뭐가 섭섭했냐 물어도 ‘말 안 할 거다’ ‘몰라도 된다’로 일관했다. 어린 것이 그렇게 여운을 두고 대답하는데 무척 궁금했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할머니가 싫으냐 해도 그건 아니라고 하고, 할머니 집에 있을 때 엄마가 많이 보고 싶어서 그러느냐 해도 그것도 아니라고 했다. 내가 미루어 생각하기론 소미하고 다투는 문제에서 집에서보다 억울함과 속상함이 많이 남았던 것 아닌가 싶다.
“이제 할머니가 예쁘고 아기자기한 물건 생겨도 언니만 주시면 어떡하지?”
“괜찮아요. 안 주셔도 괜찮아요. 정말이예요.”
미련 없단 투다. 그리곤 뜬금없이 고향 타령이다.
“엄마, 그림이 오빤 서울이 고향이라 좋겠다.”
“서울이 뭐가 좋아? 차하고 건물만 많고 공기도 나쁘고 엄만 답답한데.”
“그냥, 서울은 좋은 나라 같애. 오빠는 좋겠다.”
오늘은 창밖을 보다가 갑자기 “엄마, 꽃들은 물이 밥이예요”한다. 이런 식이다. 뭔가 생각은 많이 하는데 밖으로 표현하는 것은 반밖에 안 되는 느낌이다. 연일 비가 와서일까? 생각이 물을 잔뜩 먹고 마음 안에 가라앉아버린 것처럼 보인다. 생각이 자라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속으론 은근히 촉촉하게 물먹은 생각의 씨가 예쁜 싹이라도 틔워주었으면 기대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내 기대를 깨는 일이 종종 생긴다. 생각이 많은 것 같은 애가 먹기도 참 많이 먹는다는 것이다. 밥 세끼 꼬박 먹고도 간식이 만만치 않다. 과자나 그런 걸로는 되지도 않는다. 잔치국수나 찐만두, 부침개, 찐 감자, 삶은 달걀 몇 개 같이 든든하게 요기가 될 만한 걸 사이사이 먹어줘야 한다. 볼이 빵빵하고 엉덩이도 토실하고 허벅지도 탄탄하다.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있던가. 아니지. 혹시 반대로 영혼의 허기짐…? 나도 참, 꿈보다 해몽이 좋다. 나를 향한 욕구불만일지도 모르는데. 그런데도 나는 이 쏟아지는 비 탓만 하며 모른 척 음악 볼륨만 높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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