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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보낸 이야기

M.미카엘라 2006. 12. 26. 11:22
 

 <첫영성체>

 가톨릭 전례 중에는 ‘영성체(領聖體)’라는 것이 있다. ‘성체성사’라고도 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가톨릭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미사 중에 신부님 앞에 나아가 손에 무엇인가 얇고 동그란 것을 받아 입에 넣는 예식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신다는 의미의 영성체는 가톨릭신자에겐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의미를 가지며 미사의 하이라이트이자 핵심이다.

 

 영성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가톨릭 세례를 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때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성찰하고 통회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에 꺼리는 죄가 없을 때 영성체를 할 수 있다. 만약 스스로 마음에 꺼리는 죄가 있다고 생각하면 고백성사와 보속(補贖)을 통해 마음을 깨끗하게 한 후에 가능하다. 그리고 아기 때 유아세례를 받은 어린이의 경우 10살(보통 초등학교 3학년) 이후에 소정의 교리교육을 마친 후 영성체를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의 첫영성체는 말하자면 ‘어른 대접’에 속한다.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실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신앙인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의미인데, 서양에서는 아주 온 마을의 잔치가 될 정도로 대단하게 축하를 한다고 들었다. 부모가 어린 시절 첫영성체 때 입었던 옷을 물려주기도 하고, 수녀언니가 공부하고 있는 필리핀만 해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축하하고 기뻐한다고 들었다.

 

 소미도 이번 크리스마스 전야 미사 때 첫영성체를 했다. 두어 달 좀 넘게 세 명의 다른 아이들과 토요일만 되면 성당에 가서 교리를 열심히 배웠는데, 가슴 설레며 기다리다가 미사 직전엔 얼굴빛이 하얘질 정도로 긴장했다. 어른들이 미사 때마다 신부님께 받아먹는 동그란 밀떡, 그 ‘맛의 정체’를 알고 싶었던 지극히 아이다운 궁금증 때문에 첫영성체를 고대하여왔지만, 교리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그 의미를 새기려는 듯 보였다.

 

 얼룩덜룩한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꽉 들어찬 성당 맨 앞자리에 하얀 옷을 입은 천사 같은 네 명의 아이들은 더욱 눈에 띄었고 참 예뻤다. 2층에서 미사를 했던 나는 키가 작은 소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못내 궁금해졌다. 가톨릭 신자로서 나는 모범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지만, 성당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 자세를 바로잡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백날 말로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식 앞에서 몸으로 보여주고 실천해야 하는 일은 신앙인이 아닌 보통의 부모라도 가져야 할 자세인데….

 

 소미는 영성체한 소감을 ‘맛은 별로였는데 기분은 너무 좋고 떨렸다’고 했다. 세례를 받거나 첫영성체를 하는 사람에겐 성체 끝에 포도주를 살짝 적신 특별한 영성체를 하게 되는데, 아마 포도주 때문에 맛이 별로로 느껴진 모양이다. 그럼 성체, 아이들이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그 동그란 밀떡의 순수한 맛은 어떤 것일까? 이것은 앞서 첫영성체를 했던 소미 친구의 하현이의 말을 빌어 표현한다. 그 표현은 소미를 통해 전해 듣자마자 폭소한 내용인데, 그래도 맛 자체의 표현으로는 가장 정확하다. 어린이들은 본래 꾸밈이 없지 않은가?

 “하현아, 첫영성체 해서 축하해. 좋았겠다. 근데 하현아, 성체 맛이 어때?”

 “응, 그거? 뻥튀기 맛이야!”

 

 

 

                          

 

                                       

                                                            

                                                                         

 

 

 


 <산타와 선물>

 소미와 소은이는 산타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부분에 대해 추호도 의심이 없다. 실제 산타 할아버지는 사람의 눈에 보이게 오시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산타는 모두 꾸며진 것이며, 믿는 어린이들에게는 꼭 오신다는 내 말을 굳게 믿고 있다. 산타는 없고 사실은 아빠 엄마가 선물 사주시는 거라고 친구들이 그런다는 말에, 나는 그 친구들은 착한 친구들이라도 이미 산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제는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지 않을 것이며 그 애들은 진짜 엄마 아빠가 선물 사주는 게 맞을 거라고 해줬다. ㅎㅎㅎ

 

 신앙을 가진 아이들이라 산타에 대한 믿음도 더 오래가는 것 같지만, 이런 내 상상력을 어느 정도 표현한 영화 같은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가 아이들에겐 또 하나의 결정타가 되었다. 북극에 있는 산타마을로 가는 열차 이야기인데, 극적 긴장감과 함께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면서 아기자기한 즐거움이 가득한 영화로 나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재미있게 보았다. 바르고 용기 있는 흑인소녀가 마음에 남는 캐릭터인데, 산타를 믿는 아이들에게만 사슴의 목에 거는 방울소리가 들린다는 설정이 평소 산타에 대한 내 ‘교리’에 젖은 소미 소은이에게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소미 소은이는 성당에서 늦게 돌아와서도 잊지 않고 현관 앞에 산타에게 편지를 한통씩 써두고 잠들었다. 이 어린이들의 소망에 부응하고자 어김없이 우리 집에는 산타가 오셨고(^^)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은 환호했다. 소은이는 평소 갖고 싶어 하던 인형, 최근 마술에 한창 심취한 소미는 저렴한 마술도구 세트를 받았다. 나는 늦잠을 자는 척 이불 속에서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소은이가 소미에게 하는 이야기에 하마터면 소리 내서 웃을 뻔했는데, 몸을 뒤척여 모로 누우며 간신히 참을 수 있었다.

 “언니, 정말 무섭다 무서워!”

 “뭐가?”

 “이렇게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를 다 보고 계시다니…”

 

 

 


 

 <호두까기 인형>

크리스마스 오후엔 20일 전에 예약해둔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보러 예술의 전당에 갔다. 네 식구가 함께 가려고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남편은 처형에게 티켓을 ‘선물’하겠다 하였다. 언니는 극장의 로비에서 우리를 만나자마자 아주 앙증맞고 예쁜 머리장식물을 한 보따리 사서 아이들에게 선물로 안겼고, 손꼽아 기다리던 발레공연을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나는 결혼 전에 국립극장 회원으로 조금 저렴하게 발레공연을 본 적이 있지만 소미 소은이는 처음이다. 익히 그 내용이나 몇 곡의 음악을 알고 보니 아이들은 꽤 집중하여 잘 보았다. 우리 소은이는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버릇 덕분에 소곤소곤 엄청 질문을 많이 해대는 바람에(다 끝난 후 물어보라 해도 그러면 질문을 다 잊어먹는다고 난리다) 주위에 눈치가 많이 보였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번엔 유난히 발레리나들의 마른 몸에서 드러나는 등 근육이 자꾸 눈에 들어왔는데, 몸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라는 발레의 고된 연마의 흔적이 역력히 느껴졌다. 저렇게 나비가 날다가 꽃잎에 살짝 내려앉듯 전혀 무게감이 없는 공중 점프와 착지는 몸이 무거울 대로 무거운 내 몸마저 살짝 들었다 놨다 하는 기분이었다. 참 몽환적인 기분에 젖게 하면서도 이따금씩 탄성을 자아내는 예술이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내복만 입고 발레 흉내를 내는 아이들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려 봤지만, 멋은 어디갔던지간에 아이들이 점프를 한다고 하는데도 방바닥에서 30센티 정도 들어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공연 끝나고 언니와 밥을 먹으며 ‘이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몸으로 무엇인가 하는 직업을 갖겠다’고 말했던 거 취소다. 언니는 키 크고 다리 길고 20대 때는 저 발레리나 몸처럼 말랐으니 다시 태어난다면 발레를 해 보겠다 하였지만, 나는 이 신체조건 그대로 태어난다면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당최 없다. 쩝! 그러면서 얼마나 노력해야 저 정도가 되겠냐 하며 그런 말로 둘이 결론을 냈다. ‘어쩌면 공부가 젤 쉬운 건지 몰러~’

 

 그런데도 언니는 전에도 했던 말을 또 잊지 않는다.

 “우리 소미가 딱 발레 체형인데 말야. 얼굴 작고 먹어도 살 안찌는 체질에, 발등에 살이 없어야 한다더라. 우리 소미 완벽하지 않냐?”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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