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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원

일본 북해도 여행 (1)

M.미카엘라 2007. 1. 23. 15:49
 

 한때

 결혼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일본영화도 개방되기 전이었고 <빙점>이나 <오싱>의 인기와도 사뭇 떨어져 있던 시기라 기억되는데, 나는 일본문학에 한참 빠져든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탄 이후였던 듯싶다.

 

 나츠메 소오세키, 아쿠타가와 류우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미우라 아야코, 그리고 비교적 젊은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까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작가들까지 합해서 지금은 뚜렷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 손에 꼽을 정도다. 역동성은 없지만 나른하면서 사변적인 일본문학이 묘한 분위기로 한때 나를 사로잡았다.  

 

 지금은 일본소설이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라고 해서 예쁘게 만들어진 일본 젊은작가의 책을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그 중 최근에 에쿠니 가오리의 <도쿄 타워>와 공지영과 함께 소설을 쓴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보았는데 예전에 푹 빠져 읽을 때보다 감흥이 없다. 빌려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땐 그런 소설이 나를 끌어당겨 마음을 울리는 뭔가가 있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고 요즘 젊은작가의 소설은 한층 더 가벼워진 느낌이다. 날아갈 듯 예쁜 ‘팬시도서’ 같은.

 

 그리고 가슴 설레는 여행을 앞두고 나는 일본 영화 <러브레터>를 보았다. 그게 하루 전날 밤 짐 싸는 것 말고 했던 내 여행준비였다.

 

 


 

 트리오

 여행 인원은 모두 셋. 동갑내기다. 나 말고 두 친구 모두 이름 가운데 자에 ‘미(美)’자가 들어간다. 편의상 두 친구의 이름을 여기서는 미원(미one) 미투(미two)로 쓰련다. 실명으로 쓰는 걸 원치 않을지 몰라 그러는데 사실 상관은 없다. 양재형보다는 두 이름 다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히히. 어찌되었든 나는 두 미녀(美女)와 여행을 떠난 셈이다.


 미원: 나와 대학 같은 과 동창이다. 성격은 편안하고 너그럽고 부드럽다. 그러나 행동은 우리 셋 중 젤 빠르다. 난 이 친구와 오랜 시간 함께 어떤 일을 해왔다. 지금도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로 끈적끈적하게 잘 지낸다. 한마디로 말하면 비즈니스 파트너(우와~ 이렇게 쓰니깐 내가 대단하게 느껴지누만)라고나 할까? ㅎㅎ 3년 전 이 친구와 단 둘이 사이판 여행을 다녀왔는데, 사실 이번 여행은 지난 번처럼 이 친구와  일을 떠난 휴가여행의 성격으로 계획된 것이다. 

 

 미투: 나와 여고 동창생이며 거의 만담 수준의 대화상대로 죽이 척척 맞는 내 최상의 파트너다. 이 귀엽고 재미있는 친구가 자기도 꼽사리 끼려 했을 때 나는 이번 여행이 아주 깨가 쏟아지게 즐거우리란 예감을 했다. 미원도 오래된 친구지만 이 친구는 젊잖다. 그래서 내가 미원을 만나면 그녀 따라 본의 아니게 쬐끔 젊잖아진다. 하지만 나는 원래 좀 활기 발랄한(?) 게 적성에 맞다(나를 실제로 본 분들은 생각 외로 점잖다 하시지만서두). 집안내력이다. 친정 형제들이 만나 발동이 걸리면 정말 불꽃 튈 정도로 말이 반짝반짝 재미있고 즐겁다. 내가 미투를 만나면 이 본능이 극대화되는 듯하니, 미원이 혹여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아주 조금, 아주 잠깐 걱정했다.^^ 사업을 하는 애처가 남편과의 사이에서 올해 6학년, 4학년, 1학년 되는 세 딸이 있는데, 영국에서 살다온 경험을 토대로 홈스쿨 영어교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 나 아니면 우리 셋이 여행을 할 리가 없다. 흐흐. 두 친구 사이의 다리가 나니깐. 나로 인해 두 친구도 한 10여 년 전부터 서로 아는 오랜 친구가 된 셈인데,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지만 둘 다 워낙 무난하고 원만한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미투의 꼽사리에 망설임도 없었고 미원의 허락도 쉬웠으니 암튼 고마운 일이었다.

 

 

 

*** 오른쪽에 선그라스 쓴 사람이 미원.

       가운데 모자 쓴 사람이 미투.

 

 

 


 일사천리

 애 딸린 아줌마들이 포함된 해외 여행계획이란 게 자칫 무산되기 십상이다. 애 키우는 것 말고 따로 자기 일들이 있으니 서로 시간 맞추기 어렵고, 최소 닷새 정도 애들 맡기기가 고민되고, 어느 정도 눈치 있는 애들에게 자기들 떼어놓고 가는 여행 설명하기도 머리 써야 하고, 남편들의 흔쾌한 이해도 있어야 하고……

 

 그래도 우리는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옆에서 보던 한 사람이 놀랄 정도였다. 자기 친구들은 저녁 식사 한 끼 먹으려 해도 말 많고 탈 많아 짜증이 나는데, 여행 말 나오는가 싶더니 바로 모든 게 결정 났냐며…. 하긴 12월 초에 말 나와서 12월 20일 이후 여행상품 예약하고 바로 ‘이제 떠나는 일만 남은 상태’를 맞았으니 딸린 식구 많은 아줌마 둘이 낀 계획 치고는 참 몸 가볍게 굴었다. 미투는 조금 늦게 합류했지만 아이들이 방학인지라 ‘어디든지, 언제든지’를 외치며 합류했으니 거리낄 게 없었다. 일본, 번잡한 도쿄나 쿄토, 나라, 오사카 같은 곳을 벌써 몇 차례 다녀온 미원이 자기도 처음 가는 거라며 북해도 여행을 제안하여 생각할 것도 없이 찬성했다.

 

 그리고 우리는 1월 13일 오전 10시 13분 비행기로 일본으로 떴다. 3박 4일의 좀 아쉽다 싶은 여정이 설레게 시작된 것이다.

 


 

 아이들

 미투와 나. 우리 둘의 지상과제는 아이들을 어딘가에 편하게 맡기는 일이었다. 나는 결혼한 조카에게 맡길 생각이었으나, 조카에게 부탁하기 직전 한 친구가 나서서 맡아주길 자청했다. 두 아이가 있는 친구였는데 사실 아이 있는 집에 맡기기가 더 편한 건 사실이고, 친구가 힘들 것 같아 미안하지만 못 이기는 척 맡겼다. 살면서 서로 주고받는 삶이 사람 사는 맛 아니냐 하는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부담을 덜었다. 언젠가는 반대로 내가 또 그 친구에게 크게 도움 될 일 있겠지 하면서.

 

 나는 미원 이모랑 그동안 일 열심히 해서 그 피로 씻으러 쉬러 간다고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했고 솜손은 수긍했다. 다만 어려도 반일감정이 만만치 않은 우리 소은이가(^^) “엄마, 하필 왜 일본을 가세요?”라며 눈을 치켜뜨긴 했지만, 그 옆에서 “일본이라고 다 나쁜 사람만 사는 거 아냐. 그리고 보고 배울 건 배워야지”라며 따끔한 일침을 가하던 소미 덕분에 저절로 대답은 된 셈이다.

 

 미투는 딸 하나를 둔 친정 동생에게 세 아이를 모두를 맡겼다. 평소 이모 혼자 네 아이를 건사한 구력이 꽤 된다 하니 미투도 일단 안심이었다. 그런데 미투는 딸들에게 미안해서 엄마 회사에서 연수 간다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젤 머리 굵은 큰 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했다는 말.

 “근데 엄마, 엄마는 영어 선생님인데 왜 일본으로 연수 가지? 참 이상하네.”

 거기에 대한 미투의 답이 요상하게 압권이다. 

 “응, 일본 애들이 영어를 못하거든. 그래서 일본은 그 영어 못하는 애들을 어떤 식으로 가르치나 뭐 그런 거 보러가는 거겠지.”

 

 (이게 말이 되나 말이? 내가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지? 그냥 엄마도 좀 쉬어야겠다고, 너희 셋 그만큼 기르느라 영국에서도 거의 방안 퉁수 신세였다고, 그래서 휴가 차 간다고 솔직히 말하라고 했잖어. 낄낄…)

 

 

*** 나와 미투는 요 벌겋게 잘 익은 게다리만 보면

      하나도 생각이 안 나던 ‘새깽이들’이 생각나더라는.

      “우리 서이가 왔으면 이 게 참 잘 먹었을 텐데…”

      “울 솜손아빠 여기 왔으면 게 요리 바닥을 냈을 것인데.”

      삑~ 옐로우 카드다.

      여행 중에 남편과 아이들 얘기하면 미원이 옐로우 카드 꺼내기로 했다.

 


 

 눈

 일본의 북해도(홋가이도)는 지리적으로는 제주도, 분위기는 조금 광활한 강원도쯤으로(대관령 정도도 좋다)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본래 에스키모와 인디언을 적당히 섞은 듯 보이는 아이누족이 살던 곳으로 100여 년 전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위기를 느껴 일본이 점령하여 자기 땅으로 만든 곳이라고 하니 역사가 그리 깊지는 않다. 북해도 최대 도시인 삿포로의 위도가 얼추 북한의 맨 위쪽과 (나는 젤 추운 중강진하고 같지 않을까 본다) 비슷하지만 시베리아성 기후인 우리나라 겨울추위의 매서움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안 추웠다. 하긴 내복을 짜하게 갖춰 입고 갔으니 그것도 춥다 하면 안 될 말이다.

 

 그 대신 눈이 그렇게 푸질 수 없다. 여행 나흘 동안 내내 눈이 왔는데 그래서 이 여행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말짱하던 하늘에서 눈이 퍼붓고, 어느새 싹 그치고 그러길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나 여행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중요한 일정을 피해 눈이 내렸다. 가이드 말로는 아무리 북해도라 해도 이렇게 연일 눈이 내리기는 쉽지 않다하는데, 필요할 땐 날씨가 너무 협조를 잘해주니 펑펑 내리는 눈이 겁나지 않았다. 워낙 눈이 생활화된 지역 사람들이라(6개월이 겨울. 11월부터 4월까지 눈 오는 곳이란다) 제설작업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 개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른 곳은 눈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큰 도로는 말끔하게 아스팔트가 다 보였다.

 

 차장 밖으로 퍼붓는 눈을 바라보며 달리는 기분. 모자까지 푹 눌러쓰고 낯선 나라의 도시를 걷는 기분, 다른 것 아무것도 안 해도 좋을 기분이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혹여 <러브레터> 주인공처럼 “오겡끼 데스까?(잘 지내시는지요?)” 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나지 않을 정도로 눈 오는 날 강아지 저리 가라하게 우리 셋은 희희낙락 신나서 걸으며 해방감과 여유를 맘껏 즐겼다.

 

 

***  하코다테 야경을 보기 위해 케이블카 타러가는 우리.

 

 

 

 

 

 

 

*** 미원이 버스 안에서 찍은 차창 밖 설경.

     산속에 있던 호텔을 빠져나오던 중이다.  

 

 

***  '화보인생' 우리의 미투. ㅎㅎ

 

 

*** 해질녘에 찍은 이 푸르스름한 사진이 너무 좋다.

      사이로 전망대라는 곳에서 도야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눈 천지였다.

      자작나무와 어우러진 설경. 이것이 내게 있는 북국(北國)의 이미지다.    

 

 

 

 낮은 집

 눈 말고 북해도가 좋았던 점은 두 가지다. 삿포로나 하코다테 같은 도시에서도 아파트를 잘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거의 이층 단독주택이 살짝 줄 맞춰서 잘 정비된 채 한 구역을 이루고 마을을 이룬다. 지진 때문에 고층아파트를 짓지 않는 점도 있지만 북해도가 워낙 넓기 때문에 띄엄띄엄 그렇게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는 편이라고 한다. 미원의 말로 도쿄는 아파트도 많고 복잡하고 더럽기도 하단다. 그런데 그렇게 낮은 집들이 정갈하게 자리 잡은 도시에 포근하게 쌓인 눈 때문에 마을이 한층 예쁘고 동화적이다. 카메라 속에 한 컷 남겨두지 못하고 달리는 차 안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쉬웠지만 마음에 잘 찍어둔 가장 첫 번째 사진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대도시의 간판이나 광고판에 네온사인을 거의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도시와 아주 다른 분위기를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간판이나 광고판의 수도 현저하게 적을 뿐만 아니라 거의 은은한 간접조명이다. 조금 어둡다 싶긴 하지만 눈이 아플 정도로 요란스럽지 않아서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재활용

 북해도 여행을 하면서 놀란 것은 일본이 일찍부터 개항을 하고 남의 나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지만, 옛것에 대한 보존이 놀라울 정도로 잘되어 있다는 점이다. 첫 여행지가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되었던 바다와 면한 작은 마을 오타루였는데, 그 마을에 있는 작은 운하가 100여 년 전 이곳이 무역으로 한창 번성했던 시절의 것이라고 한다. 물론 운하라고 해도 참 작고 보잘 것 없다. 항구에 댄 큰 배에서 창고까지 물건을 실어 나르던 통통배가 다니던 곳이라는데, 그 규모만 따지면 인공수로인 청계천과 댈 수 없이 보잘 것 없지만 그 세월이 운치를 더해주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 오타루 운하. 가장자리의 창고를 모두 상가로 쓰면서 활발하게 재활용 중이다.

 

 

 이 운하는 오타루가 상업적 물류기지로서 역할이 없어지자 한때 존폐의 위기에 섰으나 오랜 대화와 진통 끝에 보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고, 오히려 이 운하 때문에 오타루를 찾는 발걸음이 많아졌다고 한다. 또 이 운하를 중심으로 여러 물건들을 보관했을 창고들을 허물지 않고 그 안을 완전 개조해서 상가로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건물 재활용의 결정판은 하코다테에서 볼 수 있었다. 하코다테 베이 사이드는 항구가 면한 자리에 있는 거대한 옛 창고들을 가리키는데, 그 안에 들어가면 수많은 가게들이 아주 예쁜 모습으로 문을 열고 있다. 창고 하나 하나마다 주제가 있어서 서양물건 파는 곳, 일본 색깔이 나는 제품을 파는 곳, 식당들이 빼곡한 곳, 유리공예품이나 보석들을 파는 곳 등 다양하니 그야말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곳이었다. 겉에서 볼 때는 그 창고에 뭐가 있다고 그러나 싶었지만 들어가보면 별천지가 되는 곳이다.

 

 우리나라 인천 쯤 되는 큰 항구도시 하코다테는 도시 전체가 꽤 고풍스럽다. 가이드 표현대로 <야인시대>나 <장군의 아들>쯤을 촬영해도 좋을 만큼 작은 한 량짜리 전차가 다니고 옛 상가건물과 가옥들이 즐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좀체 볼 수 없는 외벽에 타일을 붙인 그런 건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건물, 쓸 수 있을 때까지 쓴다’가 그들의 철학이라고 하니 은근히 부러워진다. 에도시대와 직접관련이 없는 북해도에 생뚱맞게 세워진 노보리베츠 시대촌(우리의 민속촌)에 들렀을 때보다 더욱 생동감 있는 일본의 옛 시대가 느껴졌다.

 

 반면 북해도가 일본 땅이 된 이후 세워진 여러 관공서 건물들은 대단히 유럽풍인데, 지금도 유럽을 선망한다는 일본을 생각하면 여러 부분에서 유럽식을 차용한 삶 때문인지 그 오래된 관공서 건물도 한참 보니 적당히 ‘일본스러워진’ 느낌이었다. 미투는 노란색의 대저택 같은 하코다테 구 공회당 건물을 보고 저기는 ‘캐롤라인’ ‘캐더린’ ‘클라라’ 뭐 이런 이름을 가진 드레스 입은 여자애가 살아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에 내가 맞장구 친 말.

 “몰랐어? 우린 지금 무도회에 초대받은 겨.”

 

 아니나 다를까 그 고풍스런 유럽식 구 공회당엔 아주 넓은 콘서트홀이 있었는데 반들반들한 마루를 보니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미끄러질 듯 춤을 추는 사람들이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사모님. 한 판 땡기실라우?”

 미투와 나는 그러면서 낄낄댔다.

 

  

 

*** 하코다테 베이 사이드. 저 붉은 벽돌 창고 안이 아주 예쁜 별천지 상가다.

 

 

 

*** 베이 사이드에 있는 한 상가.

 

 

 

 

*** 대단히 일본스러운 미니어처. 이것을 찍자 주인이 화들짝. 사진 찍지 말란다. 미리 얘기 하시징~

 

 

 

 

 

 

*** 에쿠니 가오리와 <냉정과 열정 사이>를,  공지영과는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함께 쓴

일본의 젊은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졸업했다는 북해도 하코다테 서 고등학교.  

 

 

 

 

*** '클라라'가 드레스 자락을 끌며 뛰어 나올 듯한 하코다테 구 공회당. 

 

 

 

 

 

*** 이탈리아의 나폴리 야경, 홍콩의 야경과 더불어 세계 3대 야경으로 꼽는다는 하코다테 야경.

      '3대' '빅3' '세계 최초의' 뭐 이런 말 일본 사람들이 좋아한다더니

       세계 3대 야경도 일본 사람이 생각한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암튼 성능 좋은 디지털 카메라보다 더 좋은 사진은 마음 속에 찍는 사진.

       실제 보는 야경이 찬 저녁바람과 함께 일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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