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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은 즐거워!

M.미카엘라 2000. 5. 20. 01:35
요즘은 낮에 아이들 돌보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벌써 만 11개월을 소록소록
채워가는 소은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안 다니는 데 없이 기어서 다니고,
안간힘을 쓰면서 짚고 일어서기도 해서 잘 보지 않으면 다치기 십상이다. 또 못 먹는
것 없이 주워먹고 다니는 통에 며칠 전엔 기절초풍할 일이 있었다.
입에 무언가 집어넣고 오물오물하고 있길래 손가락을 넣으려고 하니 입술을 야무
지게 오무리고 있었다. 먼지는 어쩔 수 없어도 늘 입에 들어갈 만한 위험한 물건에
예민하게 주의를 기울인 터라, 뭐 말라붙은 밥풀 정도겠지 했다. 억지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확인해보니 으악! 우게게게∼! 꼭 수박씨 같이 생긴 벌레가 아닌가.
정확히 말하면 수박씨처럼 까맣고 반들거리면서 약간 딱딱한 게 수박씨보단 폭이
조금 좁고 길이는 조금 길었다. 벌써 여러 개였을 다리는 온데간데 없었다.
소름이 쪽 끼쳐서 잠자는 남편과 소미를 옆에 두고 새된 소리를 높게 질렀다.
소은이는 즐겁게 음미(?)하던 것을 빼앗기곤 앙 울음을 터뜨렸다.
꿋꿋하게 잘 자고 일어난 남편에게 이 사건을 전했더니 소은이를 껴안고 낄낄 웃으며
한다는 말이 이랬다.
"바퀴벌레가 아니니 다행이다. 근데 그 놈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우리 소은이에게
잡혔다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씩씩 잘 가고 있는데 누가 자기를 딱 찝어서 컴컴하고
뜨뜻한 속에 넣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을 상황. 얼마나 놀랬겠어? 에구! 우리
방글이 그렇게 먹을 게 없데?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아빠가 다 사줄 테니깐."
뭐가 좋은지 소은이는 계속 날 보고 고개를 까닥 옆으로 기울인 채 눈웃음을 친다.
그건 소은이가 요즘 제일 잘 하는 재롱인데, "까꿍"하면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는
지금 "까꿍"하며 놀자는 것이다. 어떤 땐 앉아 있다가 너무 신이 나서 "까꿍"
한다는 게 몸 전체가 그대로 균형을 잃으면서 방바닥에 '꽈당!'한 적도 많다.
아랫니 두 개를 드러내며 웃다가 울다가 보는 사람이 더 웃음이 난다.
신발 벗어놓는 현관과 욕실은 소은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인데 금지된 곳이라 그런지
기를 쓰고 거기만 가려고 한다. 욕실 문은 늘 꼭 닫으라고 소미에게 일러두고
현관은 결국 청소하고 장판 깔고 허드렛 조각이불 한 장을 깔았다. 15평 군인 아파
트에서 빠르게 기는 소은이를 현관까지 못 가게 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아주
금방 기어가서 내 슬리퍼를 들고 입으로 가져가고 있으니 진작 그렇게 할
걸 싶었다. 아, 그런데 소은이는 더 이상 신발도 없고 자기 잠자리 같은 포근한
현관 바닥에 흥미를 잃었다. 잘 안 간다. 그런데 손님이 오시면 치워놓기가
무섭게 '야호! 주황색 타일바닥이다'하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돌진을 하니 못
말린다.
그런데 이 행동을 딱 멈추게 할 말이 있다. "소은이 까까 줄까요?"하면 홱 돌아보곤
씩 웃으면서 "에"한다. 소은이가 확실하게 대답하는 물음이 몇 가지 있는데,
"쭈쭈 줄까요?" "맘마 먹을래요?" 들이다. 모두 먹는 것임을 아는 터라 대답이
씨원하고 얼굴이 밝다.
요즘 밥상을 영 반기지 않는 소미 탓에 밥 먹는 시간이 제일 힘겹다. 밥을 입에
물고 있거나 돌아다니느라 밥상머리에 앉질 않아서 어제 오늘은 무척 야단을 쳤다.
입맛이 없어서 먹는 게 즐겁지 않는 것일 텐데도 쬐끄맣고 허연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화가 더럭 났다. 밥을 입에 물고 울면서 "엄마, 용서해주세요"하는 것도
다 미웠다.
그러고 있는데 소은이는 밥상머리에 달라붙어서 떨어진 밥풀을 연신 주워먹다가
밥상을 집고 일어나서 다 휘적이고 싶어한다. 반찬들이 상 한쪽 끝으로 조금씩 몰
려서 소은이의 손아귀를 피하는데, 결국 한두 가지는 6. 25전쟁 때 부산까지
떠밀려간 피난민처럼 바닥으로 내려가고 만다.
잡았다! 기필코. 소미 숟가락! '언니 먹기 싫으면 내가 먹어주까?'하는 품이었다.
저는 먹기는 싫으면서도 소미가 생난리를 하는 게 누구에게 뺨 맞고 어디 가서
화풀이하는 꼴이었다.
요즘은 내 입에 밥 떠 넣기도 쉽지 않다. 그래도 난 꿋꿋히 먹는다. 난 나부터 서
둘러 먹는 편이다. 어차피 소은이의 입에 연신 죽을 떠 먹이며 먹느라 방해는 받고
있지만 아이들은 내가 먼저 먹고 챙기는 게 더 나을 때가 많다. 빨리 어찌어찌
먹기는 하는데 어떻게 먹었는지 잘 모를 때가 많긴 하다. 지금은 '먹는' 수준이
아니라 '퍼넣는' 수준이니 에휴! 언제나 우아하게 밥을 먹을까.
그래도 이번 휴일엔 맛있는 물냉면을 '퍼 넣어야겠다.' 아구찜도 '퍼 넣고' 싶지만
비싸기도 하거니와 잘 하는 집을 알지도 못하니 참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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