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북해도가 들썩들썩! 본문
좀 긴 글이라 스크롤 압박이 심하실 것입니다.
글이 좀 늦어져서 그냥 한 번에 올립니다.
여행기는 유통기한이 길면 상하기 땜시로.... ㅎㅎㅎ
바쁘신 분은 사진만 봐주셔도 감사하고
조금 바쁘신 분은 나누어 읽어주셔도 감사하고
한가하신 분은 정독해주시면 무지무지 감사하겠습니당. ^^
<한 다스>
가는 연필, 굵은 연필, 키다리연필, 몽당연필… 언니연필, 동생연필, 조카연필, 딸연필, 할머니 연필, 손녀연필, 고모연필… 우리 가족은 딱 연필 한 다스였다. 나를 기준으로 언니 세 명, 올케언니 두 명, 조카 두 명, 딸 두 명, 손녀 두 명 이렇게 12명이다. 2년 전 친구들과 북해도 여행 다녀오며 우리 언니들하고 갔으면 좋겠다 했던 바람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졌다. 가족들은 내가 돈 모으잔 대로 내가 가잔 대로 모두 이견 없이 따라주어서 10개월 만에 정말 우리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일사천리로 대장정에 나서는데 성공했다. 이게 우리 가족의 장점이자 강점이다. 일단 하자고 하면 똘똘 뭉쳐 추진력에 로켓엔진을 다는 것.
새벽 6시 30분. 아이들 셋만 빼고 전부 가방 하나씩 들고 칼같이 공항에 다 모이니 정말 대단하다. 옛날 영화에서 본 여인천하 아마조네스 군단 같다. 일본 중에서 가장 위도가 높고 눈이 많다는 북해도라 하니 두툼한 점퍼에 부츠, 모자, 목도리, 장갑 등으로 완전무장을 했다. 12명의 합산 나이 406세. 평균나이 33.8세. 양호하다. 우리 딸 소미와 소은, 우리 손녀 혜빈이와 수빈이가 쪼로록 12살, 11살, 10살, 9살로 평균연령 확 낮춰줬다.
ㅎㅎ
<눈밭의 추억>
그래도 완전무장은 좀 오버였다. 해양성 기후라 생각보다 포근한 북해도인 걸 나는 좀 알았지만, 그래도 2년 전 여행 한번으로 그곳 기후를 단정할 수 없어서 잘난 척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갔던 그 때보다 바람도 없이 훨씬 포근했다. 그 전날까지 내린 엄청난 눈으로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고 아사히카와 공항 근방을 날 때부터 모두들 환호했다. 수북하게 눈을 인 푸른 전나무가 빽빽한 산을 내려다보며 북국을 실감했다.
어른 아이가 따로 없었다. 여행 내내 눈밭만 보이면 들어가서 웃고 떠들고 때로 뒹굴었다. 가이드가 아이들을 위해 상점에서 빌려온 눈썰매를 너도 나도 타보고 부츠와 양말을 모두 적시고도 행복했다. 여기저기 곳곳에 슬로프가 휑하니 비어있는 한가로운 스키장이 보일 땐 모두 작은 조카 지숙이를 불러 고문(?)했다.
“지숙아! 저기 봐라. 또 스키장이다! 히히... 너 괴롭겠당.”
올 겨울 거금을 들여 숙원이던 스노보드 장비를 구입한 설원스포츠 마니아인 조카는 사실 삼삼오오 젊은 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스키여행을 왔어야 할 꽃띠 처녀다. 리프트 기다리지 않고도 바로바로 탈 수 있는 한가한 스키장이 지천에 널린 것을 보는 조카의 몸이 얼마나 근질근질했을까. 고모들은 유럽으로 가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드니 친구들이랑 북해도 스키여행을 한번 계획해 보라고, 돈 보태주겠다는 말은 하지도 않으면서 염장만 질렀다.
겨울은 눈이 있으면 다 되는 여행이었다. 어딜 가든 뭘 보든 다 좋다. 버스로 긴 이동이 있을 땐 시간이 아까울 법도 하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았다. 눈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눈이 흔하지 않은 도쿄나 오사카, 교토 같은 일본다운 여행지보다 눈이 내려 겨울 자연풍광을 제대로 만끽한 북해도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현주언니는 북유럽 같은 데가 아니라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했다.
<12선녀탕>
내가 우리 언니들이랑 북해도를 오고 싶다 생각한 건 온천 때문이다. 온천이야 우리나라도 있지만 눈 내리는 노천온천에 반했고 숙소가 온천가에 있기 때문에 3일 중 대도시 삿뽀로에 머문 날만 빼고 이틀은 숙소에서 언제 어느 때나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대로 언니들은 너무 좋아했다. 대중온천탕에는 수녀언니만 빠졌지만 객실에 나오는 뜨거운 물도 모두 온천수라니 온천을 한 것이나 진배없다. 큰 새언니는 여행 오기 전에 어깨와 목이 많이 아팠는데 정말 많이 편안해졌다고 좋아했다. 블로그를 하는 언니들과 나는 ‘12선녀탕’의 노천온천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만 잘못하면 한국인 망신을 넘어서 경범죄로 걸릴까봐서 참았다. ㅋㅋ
네 아이들은 물이 뜨겁다며 생각보다 오래 온천욕을 하지 않았다. 더 큰 이유는 아무래도 넷이 함께 자는 다다미방에서 노는 일이 더 즐거웠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노천온천에서 바라본 맑은 밤하늘에 뜬 쨍한(?) 보름달은 내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소빈 걸스>
소미 소은이에게 혜빈이와 수빈이는 조카다. 9살 수빈이는 솜손에게 꼬박꼬박 ‘이모!’라고 부르지만, 소미와 소은이 사이에 낀 11살 혜빈이는 솜손 모두에게 이모 소리가 잘 안 나오는 모양이다. 애들이니 쉽지 않을 것이다. 소미에겐 ‘언니’ 소은이에겐 이름을 부른다. 이것 때문에 혜빈이가 한번 크게 운 적이 있다. 냅둬유~ 크면 다 교통정리가 될 터.
나는 사실 이번 여행기를 내 블로그 컨셉에 맞게 아이들 모습만을 쓸 요량이었다. 히히, 근데 쓸 거리가 사실 많지 않다. 내가 애들하고 뭘 했어야 말이지. 나는 정말 편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밥도 넷이 모여서 알아서 잘 먹었고, 넷이 한방에서 잘 놀고 잘 자고, 버스에서도 둘씩 짝지어 앉아서 잘 다녔으며, 잠시 다툼과 갈등이 있을 땐 혜·수빈의 에미인 내 큰조카가 알아서 교통정리를 했다. 또 자잘한 치다꺼리는 수녀언니가 도맡아 해주고 같이 놀아주기도 해서 나는 정말 완전 노났던 시간이다. ㅎㅎㅎ
네 아이들의 놀이가 절정을 이룬 날은 노보리베츠 온천가에서 묵었던 둘째 날 밤이다. 아이들은 테이블에 찻잔 8개를 쭉 가지런히 차려놓고 좌석을 다 정해놓은 후 우리 어른 여덟 명을 자기들 방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거기서 일명 ‘소빈 걸스’의 공연은 펼쳐졌다. 넷이 똑같이 노란 유카타를 입고 ‘노바디’를 부르며 춤을 추는데 더 이상 우리에게 원더 걸스는 없었다. 어른들이 모두 넘어갔다. 간드러지는 트로트 ‘무조건’, 동요 ‘네잎클로버’와 ‘숲속을 걸어요’까지 프로그램 구성도 훌륭했다.
공연을 마친 뒤 우리는 저마다 이 스타들과 따로따로 나가서 사진 촬영을 했고, 큰 언니는 통 크게 각각 네 아이에게 모두 금일봉을 내렸다. 어른도 아이도 만족도는 200%였던 밤이다. 이 노보리베츠 온천가의 근처 지옥계곡에는 아직도 부글부글 끓는 곳이 있던데, 그날 밤 어찌나 ‘소빈 걸스’가 들썩여놨는지 어느 순간 유황천이 치솟아 오르지 않았을까 한다.
최연장자인 우리 큰언니는 여행 중에 네 아이 모습을 보며 내내 놀랐다. 저렇게 적응 잘하고 잘 다니고 잘 놀아 제 에미들 성가시게 하지 않는 애들 첨 봤다고. 에이, 뭐 그 정도 가지고스리… ㅎㅎ
<대형사고>
이보다 더 클 수 없다. 대형사고다. 나랑 누구는 차라리 어느 한 사람이 어디서 넘어져서 무릎팍이 좀 깨진 정도의 사고와 바꾸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다. 현주언니가 1박 2일 동안 찍은 사진을 모두 날렸다. 언니는 카메라의 용량에 한계가 있으니 한꺼번에 다 찍어대지 말고 좀 나누어서 찍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삐수니 언니가 첫날과 둘째 날을 집중적으로 찍고 나머지 사람들은 섭섭지 않게 그러나 느슨하게 조금만 찍었을 뿐이다.
그런데 자기 카메라 용량을 좀 늘릴 수 있을까 싶어서 사진크기를 줄이려다가 잘못해서 ‘포맷’을 눌러버렸다.
170여장의 주옥같은 사진을 모두 날렸다. 사진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가 모두 5개였는데 뭐가 부족하다고. 나는 그게 화가 났다. 다 합해서 족히 1000장은 넘게 찍을 수 있는 양이다.
조카랑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언니가 우리 방에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들어와 “얘들아, 클났어. 사진 다 날렸어”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니 그 웃을 수 있는 거지 정말 머릿속이 다 하얘지는 것 같았다. 소빈 걸스의 노바디 촬영을 막 마친 직후다. 눈썰매 탄 사진, 눈밭에서 미친 듯이 놀았던 사진, 전날 수녀언니만 빼고 11명의 여자가 일본식 옷인 유카타를 쫘악 입고 아주 근사하게 찍은 사진, 그리고 바로 직전에 찍은 노바디 동영상까지.
이 대형사건이 터진 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을 정리하면 이거다.
“현주 지가 날렸으니 그래도 다행이야. 우리가 날렸어봐. 다 죽었어.”
우리 식구들 그래도 순하고 착하다. 다들 무진장 속상했을 터 날린 사람은 오죽할까 하며 아깝단 소리만 할 뿐 심하게 안한다. 우리 소은이는 현주이모가 사진 제일 좋아하고 사진 제일 열심히 찍고 좋아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현주이모가 제일 속상할 거라며 속찬 소리를 했다.
나는 아주 못되가지고 100년 동안 갈굴 거라고 했다. 100년 동안 갈굴 거다. 1년에 한번씩 100번. 100년이 너무 길면 1년에 10번씩 10년으로 줄여줄 요량도 있다. 씨이~ 이 정도면 싸게 쳐준 거다 머. ㅎㅎㅎ
현주 언닌 내가 아는
감각적인 사진연출의 귀재이며
순간포착의 여왕이다.
그래서 그녀의 날아간 사진이 더 아쉽고 아까운 거다.
사건 이후 남은 그녀의 사진은 거의 도시에서 찍은 사진.
자연속에서 그녀의 사진은 더 빛나는데...
<식신(食神)>
여행에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있을까. 더구나 첫 해외여행인 사람이 일곱 명이다. 일본은 가깝지만 우리가 도착하는 아사히카와는 우리나라에서 가는 일본여행지 중에서 가장 먼 곳. 2시간 40분 비행 중에 나오는 기내식은 누구보다 아이들이 즐거워했다. 조그만 숟가락과 포크, 앙증맞은 봉지 양념들, 떠먹는 요구르트 용기 같은데 나오는 물, 모두 소꿉놀이 같았을 것이다.
일본음식은 모두에게 즐거운 음식은 아니었다. 어른 중엔 수녀언니와 현주언니, 조카 지숙이가 칼칼하고 매운 음식이 거의 없고 약간 들큰한 맛이 느끼했는지 일본식은 즐기지 않았다. 뷔페식이 몇 끼 되어서 입맛에 맞게 골라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의외로 우리 큰언니는 일본음식이 맞는다 하고 두 올케 언니들도 잘 드신다.
나는 이번 여행으로 누구보다 가장 완벽한 ‘레저용 몸’를 가지고 태어난 것을 온 식구가 공인했다. 난 어딜 가도 잘 자고 너무 잘 먹고 잘 돌아다닌다. 일본음식도 맛있다. 우리 솜손도 나와 비슷해서 일단 먹고 본다. 소미는 워낙 먹는 일엔 도전적이어서 낯선 음식도 일단 아주 소량이라도 가져다가 대부분 맛을 본다. 소은이는 별로 안 그런 편인데도 요즘 요리학원도 다니고 요리에 부쩍 관심을 가지고부터 낯선 음식도 많이 먹어봐야 한단 생각으로 낫또도 먹고 우메보시도 먹어봤다고 했다.
우리는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식사 말고도 밤참 삼아 라멘을 먹었다. 영어 진짜 못하는 일본 사람들을 답답해하며(우리 중에 수녀언니는 영어가 유창하다), 할 수 없이 준비해간 포켓용 일본어회화 책을 턱밑에 들이대며 더듬더듬 삿뽀로 시내의 라멘골목도 찾아갔다. 하필 북해도 최고의 환락가라는 스스끼노와 인접한 곳에 있어서 줄줄이 걸어가는 우리 12명의 모습은 너무 웃겼다. 요상한 차림의 삐끼 언니 오빠들이 호객행위를 하는 그 거리에서 그 밤중에 수녀님이나 미성년자 아이들은 아무래도 안 어울린다. 우리는 우리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까 속닥대고 킥킥대며 보무도 당당하게 작은 라멘집을 완전 점령했다. 우리 라면처럼 얼큰한 맛은 없지만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식재료가 영양을 채운 괜찮은 맛이었다.
오타루의 명물 라벤다 아이스크림, 신선하고 진한 요구르트, 온천욕 이후 방에서 마시는 시원한 삿뽀로 맥주도 잊을 수 없다. 다들 몸무게가 1,2킬로씩 쪘을 거라고 난리다.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하겠단 사람도 있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가족이 해산 직전에 들른 식당에서 먹은 저녁메뉴는 수많은 나물이 즐비하고 청국장과 콩비지가 보글거리는 보리밥집. 나물과 청국장, 고추장과 참기름을 섞어 비빈 그 밥을 어찌 조금 먹을 수 있겠는가. 다이어트고 뭐고 썩썩 비벼서 참으로 맛있게도 먹었다.
<기념품>
기념품에 목숨 거는 것은 단연코 아이들이다. 작고 올망졸망한 물건이 많은 일본의 상품은 아이들을 매료시키고도 남았다. 솜손과 수빈이는 오타루의 오르골 박물관에서 오르골을 사고 노보리베츠 시대촌에서는 큰새언니가 아이들에게 기념품 한 가지씩 고르게 해주었다. 좀더 큼직한 걸 골라도 좋았을 건데, 아이들이 정말 작은 기념품만 고르니 우리 큰새언니 조카와 손녀가 참 이뻤을 것이다. ㅎㅎ
돌아오는 날, 기념품에 가장 신경을 쓰는 소은이에게 수녀이모가 평생 기념에 남을 선물을 해주었다. 사비를 탈탈 털어 일본에서 만드는 유명한 칼이라는 ‘세라믹 칼’을 아담한 사이즈로 하나 사준 것이다. 요리학원 다니며 요리 하는 걸 요즘 제일 좋아하는 조카에게 칼을 건네주며 언니가 했던 말은 ‘훌륭한 요리사가 되어라’가 아니고 “소은아, 좋은 취미 잃지 말라는 의미로 이모가 주는 선물이야”였다.
칼은 사람 사이의 정을 싹뚝 벨까 싶어서 그냥 주는 게 아니고 백 원짜리 하나라도 돈을 받고 주는 거라고 해서 수녀언니가 그 설명을 했는데도, 한번 수중에 돈이 들어가면 좀체 안 나오는 우리 소은이는 처음엔 안 받아도 좋다고 한다. 이런 당황스러울 데가… 수녀언니는 겨우 10엔짜리 동전 하나 받아내고 줬다. 참, 선물하기도 힘들다.
칼이 무진장 좋긴 했다. 도자기로 만든 칼이라는데 꼭 장난감처럼 가볍고 이쁘장하게 생겨가지고 우째 그렇게 잘 드는지 진짜 놀랐다. 절삭력이 장난 아니다. 여자 관광객들에게 최고 인기 상품이라고 한다. 근데, 집에 와서 소은이 허락도 받지 않고 내가 그 칼을 젤 먼저 쓰다가 초장부터 손을 살짝 베였다. 어허, 주인이 따로 있는데 어디서 감히…하면서 칼이 내게 일침을 놓은 것 같다. 손손, 가끔씩 빌려줘. 너도 조심해서 쓰고. 대따 무서워... ㅠ.ㅠ
<7월을 기약하며>
이번 북해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나는 여행은 ‘어디로’보다 ‘누구와’ 갔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다시 체감했다. 먼 일도 아니고 불과 2년 전에 다녀온 곳이지만 나는 하나도 서운한 것이 없다. 우리 언니들과 조카, 내 아이들과 손녀들과 다녀온 것이 아직도 꿈만 같다. 그렇게 오래도록 감기가 떨어지지 않더니 현주언니는 기침을 거의 떼버리고 왔고, 나는 건조해서 내내 헐어있는 코를 눈과 온천의 땅에서 며칠 보내며 말끔히 나아서 돌아왔다.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탔던 일행 중 어떤 분은 놀랐다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 대식구가 움직이며 시간 한번 어기지 않고 그렇게 일사분란하냐고. ㅎㅎㅎ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물었더니 모두 여행이 좋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민속촌격인 노보리베츠 시대촌이 여러 공연물을 관람해서 가장 재밌었다고 하고, 눈썰매 타고 놀았던 추억은 평생 못 잊을 거라 했다. 우리 소은이는 북해도가 우리나라였으면 좋겠다며 너무너무 좋다고 입에 침이 마른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소은아, 일 년 중 반이 눈이 오는 북해도도 좋지만 여긴 7월도 그렇게 덥지 않고 쾌적한 게 너무 좋댄다. 이 담에 커서 엄마 생일 선물로 북해도 라벤다 밭 구경하게 해주라. 응?”
우리 소은이는 내 그런 부탁은 흔쾌히 받아준다. 치부책에 꼼꼼히 말한 날짜랑 잘 적어두었다가 이 담에 커서 첫 월급 타기 시작하면 들이밀어야지. ㅎㅎㅎ
<시차적응>
공항에 도착한 우리 소은이의 말이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고작 일본을 3박 4일 다녀온 애가 한 3년 머물다 온 사람처럼 말한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아, 난 저 한글이 일본글씨 같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일본말 같애. 우리나라에 왔는데도 이상하게 다 낯선 것 같애. 한동안 적응이 안 될 것 같애.”
우리는 말했다.
“시차적응은 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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