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최초의 친구, 최고의 친구 본문
선재, 채구, 소미, 소은
소미는 6학년 13살, 소은이와 선재는 4학년 11살, 채구가 3학년 10살이다. 이 아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나이도 조금씩 다른데. 2000년경 이 아이들 아빠가 군인으로 모두 육군교도소에서 근무하며 만났으니 편의상 ‘교도소 동기들’이라고 할까? ㅋㅋ 지금은 솜손 아빠만 군인이고 두 아빠는 민간인이지만 대화 중에 군대의 추억을 빼먹으면 섭할 정도로 우리들 사이에 군은 평생 갈 인연의 끈이다.
지난 연말, 전주에 살던 선재네 모자가 서울에서 일하는 아빠와 같이 살기 위해 이사를 오면서 이제 선재네와 채구네는 우리 집에서 3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산다. 선재 엄마가 친정에서 푸성귀 가져왔다고 가져다 먹으라고 할 거리, 다 읽은 책 선재 동생 읽으라고 후다닥 묶어서 가져다줄 거리, 차 마시러 가겠다고 전화 한 통 넣고 입은 옷 그대로 찾아가 편안하게 저녁시간을 보내다 올 거리이고 그런 사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릴 때 한때 볼링에 꽂혀서 남편들 퇴근하면 모두 동네 볼링장으로 달려가 출근도장을 찍었다. 채구가 완전히 아기라 유모차에 태우고도 휴일엔 하루에 두 번도 갔을 정도니 확실히 미친 시절이다. 선재와 소은이가 레인으로 올라가려는 걸 끄집어 내리고 잠이 깬 채구 안아 달래고 그러면서도 귀찮은지 모르고 했을 정도다.
하루해가 긴 여름날. 아빠들은 다들 바쁘고, 사고 치고 손 많이 가는 아이과 좁은 군인 아파트에서 하루 종일 씨름하던 여자 셋은 서로서로 큰 힘과 위로가 되어주며 나름대로 즐겁게 육아와 살림을 했다. 때로 점심밥도 돌아가면서 준비해서 먹고, 무엇이든 나눌 것이 있으면 즐겁게 나누어 먹거나 쓰고, 누가 밖에 볼 일이 있으면 편하게 아이를 봐주었다. 그 때 나는 채구엄마와
번갈아가며 애 봐주며 함께 운전면허를 따기도 했다. 우리 소미소은이의 사회성은 이때 길러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벌써 모두 10살을 넘어섰다. 서로 아빠들 근무지가 달라 헤어지고 한 둘 전역하면서도 아이들이 잊지 않을 정도는 띄엄띄엄 만나면서 인연을 이어왔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가까이 살게 되니 지난 어린이날
도 하루 뭉쳐 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도시락을 싸들고 장흥아트파크에 가서 아이들을 풀어놓고 어른들은 편안하게 하루를 지냈다.
어쩌면 네 아이는 서로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몇 박 며칠을 놀게 해준다고 해도 헤어질 땐 ‘별로 놀지도 못했다’고 투정할 아이들이다. 우리는 애들보고 "대학생 되어 넷이 배낭여행 간다고 하면 허락할게. 지금 못 논 것 그때 가서 물리도록 놀아라. 알았지?" 한다. 기본적으로 아빠 엄마 닮아 순하고 착한 두 남자아이가 소미 소은이한테 잘 맞춰주기도 하고, 남자아이들 못지않게 몸으로 노길 좋아하는 솜손이 선재나 채구스타일에 맞는다.
그리고 선재와 소은이 이야기는 특별히 좀 더 말하고 싶다. 1999년 여름 출생인 두 아이는 강보에 싸인 시절부터 친구다. 나는 소은이가 생후 8개월인 2000년 2월부터 이 성장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 무렵부터 두 아이가 친구된 것이다. 생각해보니 선재와 소은이는 벌써 10년지기 다 되었고 내 블로그 나이도 이와 같이 한다. 그 덕분에 초창기 육아일기엔 선재와 소은이 이야기가 제법 많다. 돌이 지난 후부터 만나기만 하면 끈질기게 싸웠던 두 아이의 쌈닭시절 이야기는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이곳에 남아있어서 웃음 짓게 한다.
"쌈닭 두마리" 바로가기 http://blog.daum.net/somson/43635
힘이 세고 야구를 좋아하는 선재. 반듯한 존댓말에 예의바른 행동(할아버지한테 무릎 꿇고 두 손으로 술 받는 아빠 모습을 본 것인지, 소미누나가 따라주는 사이다도 꼭 그런 자세로 진지하게 받는 녀석이다), 익살스러운 뱃살 춤을 선보이는 능청, 하지만 마음이 약하고 착해서 눈물도 흔한 녀석이다. 요즘 한참 식욕이 좋아서 제 엄마를 살짝 근심하게 만들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이 녀석이 남의 집 아들이란 생각이 안 들고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아마도 어릴 때부터 공동육아 비슷하게 두 아이가 가깝게 지내고 함께 커가는 걸 본 덕분이지 싶다.
아직은 동성친구처럼 잘 논다. 사춘기를 만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만, 잠시 뜨악해한다 해도 결국 더 크면 다시 좋은 친구 사이가 될 거라 믿는다. 생각해보니 두 아이는 서로에게 최초의 친구다.
늘 만나고 싶어 하는 네 아이, 헤어질 땐 늘 섭섭해하는 네 아이(선재가 전주에 살 때는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 놀다가 돌아갈 때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재미있는 생각, 즐거운 놀이로 시간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 정말이지 빈 말이 아니라 나는 소망한다. 이 블로그에 네 아이의 배낭여행 소식을 올릴 수 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