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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司祭)의 부모

M.미카엘라 2008. 12. 17. 15:32

 

 

나는 어제 대전의 한 성당에서 있었던 천주교 대전교구 부제서품 미사에 다녀왔다. 부제는 가톨릭 신학생이 사제(신부)가 되기 이전 단계로 강론, 세례, 혼배(결혼식)주관, 본당 운영, 그 외 사항에 있어서 사제를 보좌하는 일을 한다. 부제는 고백성사를 비롯해 몇 가지만 빼놓고는 사제와 거의 같은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평생 부제직만 수행하는 ‘종신 부제’도 있다고 한다.

 

어제 부제품을 받은 내가 아는 부제님은 좀 특별하다. 수녀언니네 수도회가 배출하는 첫 아프리카 출신 부제님이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7년간 선교활동을 했던 수녀언니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어네스트 므윌라’라는 이 부제님을 알게 되면서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 어네스트 부제님은 언니네 수도회에 입회하여 우리나라에 왔고 대전가톨릭신학대학에서 공부하며 사제를 향한 발걸음을 떼었다.

 

 

 부제님, 그거 아세요?

안경 쓰시니까 옛날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데스몬드 투투 주교님 닮으셨써용!

헤어만 좀 뽀글하시면 제맛이 날 건데...아쉽당.^^

 

 

1998년에 왔으니 벌써 10년째 한국생활에 우리말도 진짜 잘하신다. 낯설고 물설고 말도 선 나라에서 진짜 고생도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어네스트 부제님의 뒤를 이어 잠비아에서 성소(聖召)에 뜻을 두고 입회하는 형제자매들이 많아진 언니네 수도회는 이런 잔치가 있는 날 여러분이 함께 모일 땐 한결 풍성한 인적 구성(?)을 자랑한다. 이런 모습을 보며 어네스트 부제님은 한편으론 자신의 발걸음에 무거운 책임감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이몬 수사님(좌)과 데이빗 수사님(우)

와우~ 데이빗 수사님은 흑인인권운동가였던 말콤X와 너무 닮았다.  

나 이런 닮은꼴 찾아낸다공,  울언니한테 혼났당!!

그래도 어쩌... 넘 닮았는 걸.

 

 

나도 서품식은 처음 보았다. 서품자들이 제대 앞에 쭉 엎드린 모습도 영화에서나 봤지 실제로는 처음이다. 뭐랄까,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가슴부터 뭉클해왔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보통 사람에게도 유명한 음악 프랑크의 ‘생명의 양식’을 체임버오케스트라와 성가대가 들려줄 땐 눈물이 핑 돈다. 모두 제 잘난 맛에 사는 인간세상 아닌가. 그런데 그대로 엎드려 가장 낮은 자세를 취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표현할 수 없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꼈다.

 

 

  

 

미사가 끝나고 새 부제님들이 큰 박수를 받고, 이어 주교님이 그의 부모님들을 일어나시게 청하여 다시 큰 박수를 받게 하셨다. 잠비아의 사제서품식에선 부모님이 아들이 입을 사제복을 고이 접어들고 입장하여 직접 아들에게 사제복을 입혀준다는데 어네스트 부제님은 부모님이 오시지 못했다. 마음이 짠했다. 얼마나 부모님 생각이 날까. 부제님의 부모님은 얼마나 아들 생각이 많이 날까. 많은 가톨릭 신자 중엔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라도 자식이 사제(司祭)의 길을 가는 일엔 고개를 젓는 분이 제법 있다. 여러 가지 까닭이 나름대로 다 있으실 것인데 나 역시 얼치기 신자이자 자식이 있는 부모로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세상의 모든 훌륭한 것들은 고통을 치러야만 비로소 얻는다. 사제와 수도자의 길이 성직(聖職)인 까닭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희생과 사랑을 통해 타인까지도 구하려는 선한 삶의 의지를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 같이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부정과 부패가 중독되어 자리 잡은 시대에 선한 의지를 몸으로 실천하는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일인가를 우리는 모두 잘 안다.

 

엄청난 환경파괴가 오는 줄 알지만 당장 우리 동네나 나에게 건설이나 개발 이익이 돌아온다면 대운하 건설까지도 은근히 찬성으로 돌아서고, 사교육에 대해서 있는 대로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던 사람이 자식 성적이 뚝 떨어질 땐 그 ‘빡쎈’ 학원순례에 자식을 밀어 넣는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데 나 혼자 꼿꼿한 척 보여 손가락질 받을까봐 꺼려지기도 하고, 나 살기도 바쁜데 뭔 환경보호? 뭔 아프리카 기아돕기? 뭔 불우이웃? 그런 한가한 돈 있으면 나부터 좀 도와주라! 하는 농담도 서슴없다. 나 역시 그런 이중성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이것이 우리들의, 이 시대의 십자가인 줄 알고 최소한의 노력만 하고 살 뿐이다.

 

그런 때문인지 내가 사제의 부모들이 다시 보이는 이유도 자식의 숭고한 결정 앞에 묵묵히 혹은 열정적으로 지지하며 더 이상 내 아들이 ‘나만의 아들’이길 포기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아들’ ‘소외된 사람들의 아들’ ‘고통 받는 이웃의 아들’로 내놓는 과정을 지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부모는 자식이 성장하여 아들 딸 낳고 오순도순 식구대로 자주 오가며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그 최소한의 소망조차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사제의 부모 마음에 마음이 쓰인 건, 아직 턱없이 어리지만 딸이 수녀님이 되겠다고 하는 말을 꾸준히 들어왔기 때문이다. 성소는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지만 정말 다 커서까지 그런 생각이 변함없을 때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부제서품식에서 나는 오래도록 이 부분에 대해 묵상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 같아선 “예” 할 수 있는데, 나중에도 그럴 수 있을지 이 나약하고 간사한 인간, 장담할 수 없다. 그저 꾸준한 기도만이 내가 할 수 있는 길이고 그 응답은 다른 분이 하시는 일이니 기다릴 밖에.

 

 

 어네스트 부제님의 영적지도자셨던 아일랜드 수사님

영국의 <아더왕> 같은 영화에 나오시면 제대로일 분위기를 가지셔서

우리 민간인들 두 눈이 띠용~ 했다.

ㅎㅎㅎ

 

 

어네스트 부제님은 1년 후쯤 사제서품을 받게 되는데 사제서품을 받으면 잠비아로 돌아가실 것이다. 한국보다 할 일이 훨씬 많을 고국에서 시작하는 사목활동이 얼마나 가슴 벅차실까. 아무쪼록 어네스트 부제님의 사제서품식엔 부모님이 꼭 오시길 바란다. 어쩌면 서품식을 잠비아에 가서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부모님이 오실 수 없다면 차라리 그렇게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부모님 자리가 휑해서 내가 봐도 허전하다.

 

이런 상황을 달래듯 소미는 학교에 가면서 재미있는 약봉지를 부제님께 드리라고 선물로 보냈다. (사진을 찍어두지 못한 게 안타깝다) 큰 약봉지 안에 작은 약봉지 다섯 개가 들어있는데 거기 부제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증상이 따로따로 써 있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건 그렇게 써 있는 봉지 안에 캡슐용 알약이 들어있는데, 그 캡슐을 따면 위의 병증을 치료할 처방전이 작은 종이에 돌돌 말려 들어있다.

 

1. 잠비아가 그리울 때 먹는 약

→ 매운 한국음식(불닭이나 안동찜닭)을 드세요. 아무 생각 안 나요!

2. 부모님이 보고 싶을 때 먹는 약

→ 우리 수녀이모에게 전화하세요.

3. 공부가 안 될 때 먹는 약

→ 멋진 신부님이 되신 걸 상상하세요!

4. 기도가 안 될 때 먹는 약

→ 좋아하는 성가를 크게 불러보세요!

5. 소미소은이가 보고 싶을 때 먹는 약

→ 소미에게 전화하세요! 010-○○○○-△△△△

 

사실 소미 소은이를 이 부제서품식에 학교 빼먹고라도 데려가려고 했는데, 전날도 아빠 부대 이·취임식 행사에 참석하느라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아서 갈등 끝에 나만 다녀왔다. 그래도 아이들의 선물과 카드에 감동한 부제님의 표정이 밝아 그 아쉬움이 많이 가셨다. 참, 소은이는 난이도 높은(^^) 새 그림이 있는 잠비아 국기와 태극기를 직접 그리고 그 사이에 하트표시까지 한 카드에 축하의 메시지를 적었다. 무슨 한*잠 정상회담 같은 분위기가 물씬 난다.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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