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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원

개명(改名)

M.미카엘라 2009. 12. 21. 03:18

 

닉네임을 바꿉니다.

 

부모님이 자식들 이름 중 유일하게 작명가에게 거금 오천 원 주고 지은 이름.

한글이나 한자나 모두 영락없는 남자이름.

그래서였는지 면사무소 직원이 실수하여 호적에 ‘남자’가 되었던 이름.

이제 슬슬 철날 무렵인 일곱 살 때

동네사진관에서 울고불고 하며 누드사진 찍어 성별정정 신청했던 이름.

남녀공학 중학교에서 유일하게 남학생반에 편성됐던 이름.

펜팔 했던 여자친구 부모님이 딸에게 오는 편지의 봉투를 보고 근심했던 이름.

예쁜 이름 가진 친구들 부러워하며 철없는 어린 시절 한 때 부모님을 원망했던 이름.

그러나 군대 안 간 것만도 다행이라고 감사하게 된 이름.

 

온라인에선 다들 어감 좋고 의미 있고 좋은 이미지가 생기는 이름들을 가지고 쓰는데,

그럼에도 이 파란만장한 사연을 가진 이름을 실명 그대로 내걸고 시작했던 블로그 글쓰기 10년입니다.

자기 이름 앞세운 상호나 브랜드 네임처럼 나름대로 내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적어도 나를 속이지 않는 진솔한 글쓰기를 하자는 다짐으로

그냥 제 이름 그대로 시작했던 게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바꿔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제 블로그의 주인공인 두 딸의 컴퓨터 활용능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긴 꼬리가 밟힐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때 문득 자기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공간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찾겠지요.

 

제가 실명으로 글을 쓴다는 것을 어렴풋이 아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블로그를 드나들고 제 글에 간섭하고 사전 검열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도 최대한 아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글쓰기를 하겠지만

까칠한 청소년기를 맞을 아이들에겐 엄마가 쓰는 자기들 이야기가

뭐든 맘에 안 들고 예민한 문제고 눈엣가시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나중에 더 커서 읽으면 그런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알고,

자기들이 더 재미있게 읽을 독자가 될 거면서도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계속 쓰고 싶습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 모습도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또 이 시기는 제가 사춘기의 딸들에게 매번 다 하지 못하는

제 속엣 말들이 쌓여 더 많이 글로 풀고 싶을 것입니다.

 

제 욕심으론 성인식을 하는 그날까지 써보고 싶습니다.

그 날을 위하여 오늘의 이 닉네임이 보안의 한 방편이 되길 바랍니다. ^.^

 

그러나 저는 뭐로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본명이 편한 분들은 계속 그렇게 불러주세요.

 

('양치기' 작명 스토리는 프로필을 클릭해서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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