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못 먹는 고사리 본문
살림하는 사람들은 안다. 자신의 약점을. 유난히 신경 쓰는 부분, 특히 잘하는 주 종목이 있는 반면, 하기 싫어서 안 하는 부분이나 잘 못해서 피하는 부분도 있다. 청소만 해도 그렇다. 가스렌지 주변이나 어디나 그다지 깨끗하지 않지만 행주는 백옥같이 하얗게 삶아 빨아서 켜켜이 쌓아놓고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행주는 살짝 꼬질한 편인데 걸레는 완전 깨끗해서 행주 같은 집도 있다. 또 어떤 분은 부엌 바닥은 살짝 끈적한 감이 있어도 설거지하는 개수대 음식 찌꺼기 스텐레스 거름망은 늘 뭐 하나 걸려있지 않고 깨끗하다.
난 그렇게 깔끔하게 살림을 잘하지 못한다. 깔끔하게 보는 사람이 있는 건 내가 정리정돈은 그냥저냥 좀 하고 살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약점은 ‘닦는 일’이다. 집안 일 중 제일 하기 싫은 게 밥도 아니고 설거지도 아니고 빨래도 아니고 행주나 걸레 들고 구석구석 먼지나 얼룩 같은 거 닦는 일이다. 청소기는 하루에도 두세 번도 돌리기도 하지만, 가구나 물건에 쌓인 먼지는 며칠에 한 번씩 보이는 데만 닦고 만다. ^.^
그런데 요즘 나를 괴롭히는 건 머리카락이다. 두 딸들이 매일 샤워하고 멀리 말리느라 그 긴 머리에서 빠진 머리카락들이 거실이고 방바닥에 널려있다. 소미는 좀체 머리를 묶지 않고 풀고 있기 때문에 더하다. 뽀얀 먼지를 봐주겠는데 머리카락은 안 봐진다.
“솜손! 드라이하거나 머리 한 차례 빗고 나면, 방바닥에 떨어진 자기 머리카락 좀 손으로 쓸어 모아서 똘똘 말아 버릴 수 없겠니?”
“엄만, 무슨 머리카락이 그렇게 많다고 그러세요? 난 잘 안 보이는데....”
두 애들 렌즈를 하고 안경을 써도 내 시력만 못하니 내가 시범적으로 한번 모아줘 봤다.
“이거 봐봐. 난 머리카락이 고사리 만하게 보여서 괴로워. 완전 고사리처럼 보여.”
“우헤... 고사리? 머리카락이 고사리 같다구요? 으히히히~”
무릎을 꾸부리고 한참 들여다보더니 “진짜 많긴 하네” 한다.
드문드문 잘 쓸어 모아 버리기는 하는데 여전히 내 좋은 눈에는 택도 없다.
“솜솜! 고사리 쓸어 담아!”
“손손! 고사리 또 많이 떨어졌다!”
잔소리가 계속 된다.
“이거야 원, 볶아 먹지도 못하는 고사리가 왜 맨날 이리 방바닥에 돋는 겨?”
내가 하루는 이렇게 투덜대니 “우웩~ 생각만 해도 더러워 엄마!” 이런다.
지난 해 친정식구들과 함께 갔던 북해도 여행. 온천을 하고 나온 탈의실에서 본 미혼으로 보이는 일본여성을 잊을 수 없다. 드라이로 긴 머리를 말리면서 세면대쪽에 자기 머리카락이 얌전히 떨어지도록 주의하며 말렸다. 머리를 다 말린 후 떨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모아 돌돌 말아 버린 건 물론이다. 언니가 먼저 보고 나를 툭툭 치며 보라 했는데, 우리나라 공중목욕탕에선 좀체 볼 수 없는 장면이 최근 다시 생각났다. 일본 온천에서 그런 여성을 한두 명 더 본 것 같다. 그래서 탈의실 다다미 바닥을 유심히 보았는데 머리카락이 떨어져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은이가 며칠 전 2박 3일 학교수련회를 다녀왔다.
얼굴이 새카맣게 타고 목이 쉬어서 온 아이가 나한테 이 말부터 한다.
“엄마! 나도 경험했어요.”
“뭘?”
“고사리.”
“고사리?”
“다들 머리 긴 여자 애들이 여럿이 한 방에서 자니까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장난 아니예요. 진짜 고사리야 완전. 얼마나 보기 싫은지 몰라. 내가 애들한테 머리카락 치우자고 맨날 잔소리했어요. 히히....”
각자 자기 것만 잘 치우면 된다. 자기만 잘하면 된다. 남 이야기 할 것도 없다. 자기만 잘하면 된다. 머리카락이 됐든 고사리가 됐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