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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원

근황

M.미카엘라 2010. 12. 22. 17:29

무소식이 희소식인 것만은 아닙니다.

제가 조용해도 생활도 마음도 조용한 건 아니거든요.^^

성탄과 연말이 다가오는 이즈음에 군인아파트에 살면

군인들 전출과 전입에 온 마음이 다 싱숭생숭 심란하기 그지없는데

올해는 그런 움직임 없는 민간아파트 살면서도 마음이 별로 평화롭지는 않습니다.

 

소미의 사춘기가 그다지 심하지는 않습니다.

내년에 중학교 2학년, 이 열다섯 살이 최고조에 달할 거라는 예보도 들리지만

이만만 하다면 감사한 일이다… 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이 됩니다.

 

근데 제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은 어디일까요?”

정답은 에베레스트도 칸첸중가도 아닌 ‘내가 지금 오르는 산’이라고 합니다. 

들려오는 다른 집 아이들에 견주면 소미는 꽤 착하게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저 역시 바로 ‘제 딸이기 때문에’ 힘이 드네요.  

 

내가 기른 아이 맞나 싶게 낯설 때가 많습니다.

과민하기가 등에 가시가 붙은 사람 같습니다.

분명한 칭찬 아니고는 누가 조금만 농담으로라도 소미는 어떻다 라고 하면

그걸 곡해해서는 그날 절 붙들고 그 분은 왜 그러시냐, 기분 나쁘다, 속상하다… 하며 쏟아냅니다.

 

초딩 소은이가 과자 굽고 요리에 관심 많으니 어른들이 많이 귀여워하는데,

그러다보니 기특해하고 칭찬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고,

이런저런 요리 이야기도 아이와 많이 나누게 되고,

작은 요리도구 같은 것도 사서 손에 들려주시고 하니 그것도 또 문제입니다.

왜 어른들은 온통 소은이 소은이 그러냔 거죠.

난 PD가 되고 싶은데 그럼 지금 뭘 해야 하냐고 난리입니다.

 

아, 정말 미치겠습니다.

중학생 됐다고 1년 사이에 다 큰 것처럼

초딩 알기를 발가락 사이에 때만큼도 안 쳐주면서 이건 무슨 유치한 뒤끝의 향연이랍니까?

엄마독점욕, 질투 이런 건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내리사랑이라는데 내가 큰애한테 뭘 서운하게 한 건가,

아니면 애정을 너무 많이 준 부작용인가 잘 모르겠어서 우울합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사랑을 어떻게 자로 잰 듯, 전자저울에 잰 듯 그렇게 잴 수 있겠느냐,

하지만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너와 소은이가 받은 사랑은

각각 다 합해서 흔들어보면 그 부피와 중량이 거의 같을 거다,

왜냐면 ‘솜손’은 둘이면서 하나고

‘솜손’은 바늘이자 실처럼 한 꾸러미로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라고요.

너 그런 말하면 너한테 사랑 주신 분들 서운하게 만드는 거라고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잠자코 듣고 있긴 하더군요.

 

어젠 소은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만리장성 쌓듯

나물을 무치는 제 옆에서 늘어놓습니다. 상세하게 본 듯하게 말이죠.

방에서 나온 소미가 한 마디 합니다.

“어후~ 언제 끝나냐 그 말. 참...입도 안 아프냐 넌?”

이에 굴하지 않고 소은이는 아직 멀었다며 또 재잘거립니다.

저는 응응 거리며 계속 맞장구치며 듣고 있었죠.

그랬더니 소미가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그러고 보면 엄만 대단해. 참 잘 참아. 인내심이 쩔어.

어쩜 한 마디도 짜증 안 내고 그걸 다 듣고 계시냐….”

저는 속으로 말했지요.

‘하이고야~ 내가 그대를 참아준 건 생각 못하는군.’

남편도 일요일 날 저랑 장보러 가서 그러더군요.

“그래도 너 참 잘 참더라. 아까 소미가 대답도 않고 그러는데도…”

 

뭐 요즘 제가 그런 칭찬을 쪼매 듣고 삽니다.

칭찬을 들을 줄 몰랐고 칭찬 받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칭찬을 듣기까지 사실 제 속은 날마다 와글와글 혼자서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이런 소리를 하더군요.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인데요.

청소년 인권을 다룬 부분에서 글쓴이가 어디서 들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지랄 총량의 법칙’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는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것이려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습니다.

사춘기에 호르몬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었습니다.

 

- 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18쪽에서

 

너무 재밌어서 깔깔대며 읽었습니다.

다른 건 책 덮고 나면 오래지 않아 잘 잊히는데 이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요즘 제 화두라 그럴까요?

 

근데 이 ‘지랄’은 쉽게 어떤 것에 빠지게도 만듭니다.

게임에 빠진 아이, 코스프레(만화캐릭터처럼 실제로 꾸며 입는 것)에 빠진 아이,

만화책에 빠진 아이, 몸치장에 빠진 아이, 이성교제에 빠진 아이, 채팅에 빠진 아이,

드라마에 빠진 아이, 대중스타에 빠져 팬질을 일삼는 아이…

주변에서 보면 아이들이 빠지는 분야도 제각각입니다.

 

맛있는 거!

화장품!

옷!

 

소미 자기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거라고 합니다.

화장품이라봐야 스킨로션에 선크림 대용으로 비비크림 바르고

살짝 발그레해 보이는 립 그로스 바르는 정도지만,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별별 화장품 다 가지고 와서 쇼쇼쇼를 하는 모양인데

나이 들어 보여서 크게 따라하고 싶진 않지만 재미는 있는 모양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화장 쇼쇼쇼!

집에 오면 맨날 그 이야기를 중계방송 합니다.

광틴트, 물틴트 이런 입술용 화장품, 저는 잘 알지도 못하겠습니다.

눈의 검은자가 커보인다나 하는 값싼 서클렌즈를 사가지고 학교 와서

눈이 시뻘개지도록 넣어보려 안간힘을 쓴답니다.

드림렌즈 착용 5년 구력의 소미가 능숙하게 껴주면 좋다고 환호한다네요.

참 웃다가도 걱정됩니다.

 

맨날 교복을 입다가 사복을 입을 일이 있는 날이면

그 전날 아주 집을 전쟁터로 만들어놓습니다.

그저께 그랬습니다.

학교가 일제고사를 안 보게 되어 담임선생님 재량 아래 학교 밖 나들이를 하는데

대학로 가서 연극을 보기로 했다며 한껏 마음이 부풀었습니다.

티셔츠 바지, 치마, 가디건, 레깅스, 가디건, 외투, 모자, 머플러, 부츠 있는 대로 다 꺼내놓고 패션쇼를 합니다.

 

다 좋습니다.

이런 거 저런 거 저는 맘껏 다하게 해줍니다.

허락받으려고 말 꺼내는 거 지나친 거 한두 번 빼고는 거의 다 허락했습니다.

다만… 제발 소은이를 소 닭 보듯 하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이좋게 지내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싸우지만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소은이 대하기를 사자가 가젤 잡듯 합니다.

뭐가 못 마땅한지 눈을 바로 뜨지 않고 중딩 애들 표현대로 ‘야리기’ 일쑤입니다.

덱덱거리고 짜증을 내고 화를 냅니다.

소은이가 고집 세게 굴고 가끔 언니에게 깐죽대는 건 있지만 그래도 소미가 너무합니다.

급기야 제가 더 이상 못 참고 정색하며 들고 일어서면

반 이상은 농담인데 엄만 괜히 그러신다며 꼬리를 내립니다.

무슨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고 리얼하게 하냔 말입니다.

어느 날은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소은이만 보면 짜증나고 화난다고 토로도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을 쓰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에휴~

제가 블로그에선 조용하지만 생활이나 마음은 이렇게 광화문 사거리 같습니다.

광화문 사거리는 오갈 시간을 알려주는 신호등이나 있죠.

저는 온통 빨간색 점멸등만 깜빡이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소미도 내가 언제 그랬냐 하며 평온을 되찾을 때가 오리란 걸 믿지만

하루하루 이 소란과 분쟁을 마주하는 일은 녹록치가 않네요.

 

아, 벌써 내일 모레면 크리스마스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우리 소미 마음에도 따뜻하게 오시길 바라며

그래도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우리 큰 딸 소미 도로테아를 위해

성당에 가서 오래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세상의 그 모든 중학생 자녀의 엄마들!

새해에도 파이팅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행복한 성탄과 새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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