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그래 슬픕니까? 본문
비는 떨어지는 곳에서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낸다.
아스팔트에 떨어지는 소리, 우산에 떨어지는 소리,
차 지붕에 떨어지는 소리, 흙길 위로 떨어지는 소리....
우리의 오월이 이런 저런 일로 다양한 빛깔을 내는 것처럼
한 하늘에서 내리는 같은 빗방울은 그렇게 모두 다른 소리를 낸다.
포도송이처럼 달린 노란색 풍선에 빠르게 부딪치는 빗소리.
처음이다.
발바닥마저 간지럽게 무언가 속삭이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아주 멀리서 들리는 잔 파도소리 같기도 하다.
홀로 한 사람의 삶을 반추하는 나의 오월은
호젓한 만큼 그 아픔 또한 피부가 데이듯 생생이 살아난다.
자전거, 밀짚모자, 장화…
이런 물건들이 이제 어쩌지 못하는 슬픔의 상징으로 남는다.
"나는 평화공존이 실용주의의 토대라고 생각한다."
대북정책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담긴 메모가 눈길을 잡는다.
육필이 주는 생생함 앞에서 여전히 믿기지 않는 먹먹한 마음을 애써 달래고,
추도식이 끝나고 울려 퍼지는 고인의 육성은 잘 다독여왔던 눈물샘의 둑을 끝내 터뜨리고 만다.
(* 클릭하면 큰 사진)
“그래(그렇게) 슬픕니까.”
우산 속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내게 옆에 서있던 흰머리 초로의 신사가 묻는다.
“꽃이 없네요. 나는 세 개나 있는데… 이거 하나 받으세요.”
그 분이 건네는 하얀 국화꽃을 받아들며 주섬주섬 눈물을 훔치지만 어디서 왔냐는 말에 메인 목 때문에 빨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쳐다만 보니 그 분이 다시 말한다.
“나는 대통령의 학교 친굽니다.”
“학교 친구시라면… 부산상고…?”
“예. 저 앞에 동기생들 자리가 있는데 난 쪼매 늦다보이 우의도 몬 받고 이래 뒤에서 봅니다.”
김해 시내에 산다는 이 분은 추도식이 끝나고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앞자리에 앉았을 법한 친구 분과 통화를 간단히 하고, 나와 마을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했다. 그 분 덕분에 복잡한 가운데서도 참배하는데 헤매지 않을 수 있었고 고인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친구들요? 일년 동안 여러 차례 만났어도 아무 말도 안 합니다. 대통령 얘기 누구도 먼저 꺼내지도 지나가는 말로도 안 해요. 그냥 딴 이야기 하다가 헤어집니다. 아무 말도 몬해요.”
“참 용기 있어요. 그런 사람 쉽게 없습니다. 남이 곤란한 일 당하는 거 그런 거를 몬 보는 사람이라. 지도 억수로 가난해서 1년 학교 꿇어 왔으면서 몬 사는 다른 친구 생각을 더 한다 아임니까?”
“맨날 도서관에 가서 살아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좋은 대학 나와 웬만하게 성공했다카는 사람들도 이 친구보다 책 마이 읽은 사람 벨로 없지 싶어요.”
“저어~기 저쪽으로 빌라도 좀 지었는데… 친구들이 고향에서 모여 살자케서 하나 둘 집짓고 모여들던 중이었는데…”
회한과 아쉬움에 젖어 가만가만 내게 이야기를 하던 이 분께 빗속 천막에서 종이컵에 든 커피를 한 잔 대접하니 한결 마음이 따뜻하고 위로가 된다.
“우리 동네 왔으니 내가 대접해야 카는데… 다음에 또 봉하에 올 꺼지요? 여긴 가을도 참 좋아요.”
그땐 혼자 오지 말고 가족들 다 데리고 오라며 명함을 건네신다.
“내가 대통령 대신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습니다.”
김해시 생림면의 모 산업 대표 김OO 선생님.
덕분에 비오는 봉하 마을에서 두 번째 추억이 쌓인다.
일 년 전 고인이 되어버린 그 분이 없는 마을에서, 그 상실의 들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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