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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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

긴 여행 짧은 여행

M.미카엘라 2011. 1. 20. 13:31

 

 

길을 떠나다

나를 ‘이모’라고 부르는 딱 한 녀석. 언니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오직 한 녀석. 내 조카가 먼 길을 떠났다. 2010년 12월 25일 성탄절이 막 시작된 그 추운 밤에 녀석은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황망히 세상을 떠났다. 이제 성년식을 6개월 남겨놓은 대학 새내기 1학년. 우리에게 이제까지 그보다 더한 악몽은 없었다.

 

살아있는 우리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 그 어디든 떠날 곳이 간절히 필요했다. 엄청난 일을 겪고도 그렇게 길 떠날 힘이 남아 있었던 건, 떠나지 않고 이 참담한 일상에 몸을 두는 일이 고통의 시간에 얼마나 무거운 족쇄를 채워 시간을 더디 가게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가 1년 같은.

 

다른 풍경, 다른 온도는 마약처럼 우리를 잠시 잠깐이라도 고통에서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동안 잠시라도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그 춥고 긴 고통의 겨울밤을 녹여줄 수 있는 조금 더 따뜻한 곳, 조금 더 해가 긴 곳, 조금 더 푸른 생기가 있는 곳을 찾아 제주로, 일본 남단의 섬 오키나와로, 순천으로, 원주로 허적허적 돌아다녔다.  

 

 

 

 

 

활기의 전사들

오키나와로 1월 8일 떠나는 것은 이미 계획되어 있던 가족여행이었다. 2년 전 북해도로 떠났던 친정의 여자식구 12명이 다시 뭉치는 여행이었다. 일본 최북단을 갔었는데 이번엔 일본 최남단이다. 예약된 여행을 열흘 남짓 남겨놓고 생각해볼 것도 없이 취소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잠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여행 안 가면 그 시간에 또 뭐 할 건데? 이미 비워둔 시간, 할 일 뾰족하게 있어?”

 

다들 크고 작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으나, 가장 엄청난 일을 당한 작은 언니를 중심으로 나머지 어른 4명, 아이들 4명은 떠나기로 했다. 이번엔 큰언니, 수녀언니, 작은 올케언니, 큰조카가 빠졌다. 나도 언니 때문에 더 가는 것이 낫다 싶었다. 언니도 다른 사람 아닌 가족들하고만 함께 가는 여행이니 기운을 냈다.

 

‘우리 아무 생각하지 말자. 최대한 분위기 환기할 수 있는 즐거운 일에 집중하자.’

이게 이번 여행의 모토였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며칠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견뎌보자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그게 가능했던 게 우리 여행엔 네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미, 소은이. 그리고 혜빈이, 수빈이. 큰조카는 자기는 못 오고 이 두 아이만 친정엄마와 동생에 묶어 보냈다. 우리는 이 네 아이 때문에라도 이번 여행을 무산시킬 수 없었다. 2년 동안 여행비에 보태려고 세뱃돈과 용돈 등을 모으며 너무나 손꼽아 기다려온 아이들의 설렘과 기대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충격이 컸을 이 사건을 환기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행 중에 절실히 깨달았다. 아이들이 없으면 여행의 활기가 반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아이들은 웃음을 주었고 어른들을 좀 더 움직이게 했고 그러면서도 어느새 쑥 커서 전혀 힘들게 하거나 귀찮게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자기들 스스로 했다. 북해도 여행 때보다 훨씬 자랐다. 사춘기에 있는 소미와 그 언저리에 놓인 혜빈이 때문에 걱정을 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설에 떡국을 먹으면 쪼로록 15세(소미), 14세(혜빈), 13세(소은), 12세(수빈)가 되는 네 아이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다.

 

   

 

     

 

   

 

   

 

 

 

위로의 섬

왜 또 일본이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나이층이 다양한 우리 식구들에게 그만한 비용으로 안전하고 쾌적하며 가장 만족도가 높은 곳은 일본이 단연 으뜸이다. 오키나와는 따뜻하고 바다빛깔이 인근 어느 나라 바다보다 아름답다고 해서 결정했다. 같은 일본인데도 북해도와는 딴판이다. 가장 일본답지 않은 일본 땅이다. 일본말과 글을 쓰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 같다. 일본 최대의 미군기지 이미지 정도만 있는 내게 동남아와 중국의 문화가 짙게 배어있는 오키나와는 겨울에 여행하기 딱 좋은 부드러운 바람과 햇볕을 가지고 새로운 남국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꽃, 나무, 산 같은 자연을 좋아하는 언니는 혹한의 우리 땅을 떠나서 2시간 만에 거짓말처럼 만난 꽃피고 나무 푸른 오키나와에 매료되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추워서 어깨 움츠리고 시리고 아픈 마음 꽁꽁 싸매고 힘들어하다가 이 곳에 와서 몸과 마음에 한결 풀리는 기분이었다. 특히 첫날이 그랬다. 준비해간 늦가을 혹은 초겨울 옷이 약간 덥다 싶을 정도로 훈훈했다. 이 기온은 큰 위로이자 선물이었다. 둘째 날부터는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간간이 흩뿌리며 날씨가 좀 협조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춥다고 할 수는 없는 날씨였다. 며칠 전 먼저 다녀온 제주보다 훨씬 포근했다.

 

우거진 원시림,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최소한의 개발, 흐린 날씨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다채로운 푸른 빛깔을 뽐내는 산호초의 바다, 멋은 없지만 무서운 태풍을 견뎌야 하는 튼튼한 가옥도 인상적이다. 자연에게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언니에겐 오랜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만큼 오래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때로는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위로와 치유라면 얼마나 길든, 얼마나 깊든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만 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라는 ‘만좌모’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기막힌 절경이었는데, 그 미친 듯 부는 바람과 일정할 방향 없이 흩뿌리는 비 탓에 ‘엄브렐러 쇼(umbrella show)’(우리와 같이 버스를 타고 여행한 어떤 분이 하신 표현)만 하다가 돌아온 것만 아쉽다.

 

   

 

   

 

    

 

    

 

     

 

 

 

 

 

스시 없다

찾아보면 왜 없을까만, 우리는 오키나와 여행 중 회와 초밥은 구경도 못했다. 있었다고 해도 언니는 못 먹었을 것이다. 내내 죽만 먹다가 여행 오기 며칠 전부터 겨우 채식 위주의 극히 가벼운 식사만 해오던 언니는 육류와 해산물 생식을 하면 탈이 났다. 더구나 오키나와는 돼지고기 요리가 많다. 전에도 일본음식은 입에 안 맞아했지만 그래도 언닌 북해도보다는 낫다고 했다. 싱거운 북해도 음식보다 오키나와는 간간한 게 차라리 좀 낫다고 한다. 따끈한 단팥죽을 제일 맛있게 먹는다.

 

빨갛게 잘 쪄진 실한 게 다리는 단연 모두에게 인기였다. 자르고 파내고…

“고모! 이렇게 해봐!”

수월하게 살을 빼내는 방법을 조카가 시범을 보이고 우리는 따라해 보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그 과정도 재미로 알고 거기에 몰두한다. 우리 소미는 수많은 공정을 거쳐 게살을 빼내어서 먹지 않고 접시에 모아두더니 손 씻고 와서 포크로 우아하게(?) 먹는다. 집에서 소미가 귤 먹는 방법이 생각났다. 좀 크다 싶은 귤을 침 삼키고 참으며 얇은 속껍질까지 모두 깨끗하게 까서 주황색 속살만 접시 쫙 이쁘게 깔아두었다가 한꺼번에 먹는다.

 

아, 그리고 오키나와는 파인애플이 참 맛있다. 엄청나게 큰 파인애플 농장에 갔었는데 거긴 그야말로 ‘올 댓 파인애플’이다. 와인부터 식초, 카스테라, 화장품, 비누, 방향제 등등 파인애플로 만드는 상품이 셀 수 없이 많다. 따라서 관광객들이 사가지고 가는 양도 엄청나다. 제주의 감귤 상품을 생각하면 우선 그 가지 수에 놀란다. 우리의 공금 관리를 맡은 나는 함께 하지 못한 가족들을 위해 파인애플 카스테라와 음료를 샀다. 은은한 파인애플 향이 나는 카스테라는 그 맛이 참 일품이다.

 

 

   

 

   

 

   

 

 

 

 옷이 날개!

우리가 모두 여자들이라 옷에 관심이 많다. 외국인이 한복 입고 사진 찍는 것처럼 우리도 ‘류쿠무라’라는 민속촌에서 일본 전통복장을 입어보기로 했다. 기모노까지는 아니지만 뭐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겉옷을 빌려 입고 소품을 챙기니 그럴싸하다. 다섯 명이 옷을 입고 세 명이 카메라를 들었으니 왁자하지 않을 수 없다.

 

다 같은 동양 사람이니 제법 테가 나고 예쁘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 사이에 선 조카가 단연 이쁘다. 곧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언니랑 나는 ‘지숙이 쟤 한참 물 올랐다. 사진이 다 이쁘다’고 소곤댔다. 우리 소미는 그렇게 졸라서 앞머리 내려 자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하얗고 이쁜 이마를 드러내 올린 머리였다면 더 예쁘지 않았을까 어른들은 이구동성인데, 소미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안 웃고 센치한 표정이 어른스럽다 생각하는지, 영 웃지 않아서 사진이 많이 아쉽다.

 

옷 입혀주는 아가씨들이 참 성의 있다. 소매 밖으로 조카가 입고 간 옷의 소매가 살짝 나왔는데 그냥 두어도 모를 것을 빠르게 다가가 안으로 넣어서 정리해준다. 자기들 전통 옷이 잘 입혀지길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 조카는 옷이랑 소품 다 돌려주고는 깜빡 귀에 꽃은 그대로 꽂고 버스 타는 쪽으로 나오는 바람에 모두 웃었다. 화들짝 놀라서 돌려주고 왔다. 우리가 좀 정신을 빼다보니 그 아가씨들도 잊은 모양이다.

 

 

   

 

   

 

 

 

점프! 점프!

우리나라에 점프 사진이 유행된 지 좀 되었다. 파란 하늘로 뛰어오른 사진. 그 순간을 포착해서 멋진 사진을 만드느라 여행지 가면 폴짝폴짝 뛰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십대와 이십대가 절반 이상이다. 점프사진의 귀재들!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심지어 그런 줄 몰랐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네 아이는 객실 침대에서도 점프를 하며 찍은 모양이다. 심하게 흔들렸지만 현장감은 제대로다.

 

어디론가 날아오르는 비상의 의미가 있는 ‘점프’. 새해엔 이 점프의 의미가 내포된 덕담을 주고받는다. 어깨를 펴고 날아오르라, 더 크게 성장하라, 더 발전하라, 더 돈 많이 벌어라, 도전에 성공하라…. 그런 덕담을 할 사이도, 할 정신도, 할 기분도 없이 1월이 스멀스멀 간다. 그래도 우리는 시간이 한없이 더디 간다. 이유는 분명하지만 그래도 움츠린 채 어두움 속에서 시간을 견디어서는 안 되지 않나 싶다.

 

일부러 뭐라도 하고, 무엇에든 집중해야 산다. 늘 여행하며 살 수만은 없다.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그 여행을 위해 일상에 집중해야 한다. 밥도 먹고 잠도 자야 한다. 나는 언니가 하기 힘든 일을 오늘 혼자 조용히 해버렸다. 녀석이 세상에 왔다간 흔적을 정리하고 나오며 구청 앞마당 쉼터 구석에서 한바탕 혼자 울었다.

 

녀석이 떠난 긴 여행을 생각한다. 이젠 울지 않을 생각이다. 내일 모레가 그 녀석 생일인데, 성당에 가서 녀석을 위한 연미사를 할 것이다. 묵주 기도를 시작해야겠다. 어찌되었든 편안히 놓아주고 빌어주어야 녀석이 세상으로 내려오기 전 있던 그 자리로 사뿐히 날아오르지 않을까. 천사의 자리든 별의 자리든. 바르고 착하고 여렸던 그 녀석 분명 그 둘 중 하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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