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운명 콘서트 본문
2005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의 임시수도 라말라에서 연주되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가장 귀에 익은 유명한 이 교향곡을 그렇게 긴장하며 듣긴 처음이다.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 현장은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을 들고 있는 것처럼 터질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중동의 가장 민감한 분쟁지역에서 자신의 재능을 숭고한 가치를 위해서 쓰는 젊은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순간 성자처럼 느껴진다. 이런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참 가슴 뻐근하게 하는 데가 있다.
‘실천하는 음악가'라는 별명이 붙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유대인이다. 중동 평화를 위해 정치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팔레스타인 출신 세계적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와 마음을 모아 1999년 오케스트라 '웨스트 이스턴 디반'을 창단한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웨스트 이스턴 디반’의 결성 과정과 연주회 모습을 통해 평화를 전하는 음악의 힘을 그린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화해의 시작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이란,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아랍계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다른 국적, 배경, 계층, 문화를 가진 이들이 음악 안에서 하나가 된다. 오케스트라 이름은 동서양의 소통을 지향하며 쓴 괴테의 만년시집 제목을 그대로 가져왔다는데, 우리말로 번역된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 오케스트라”가 처음엔 무슨 뜻인가 했다. 알고 나니 차라리 그냥 영어발음 그대로 부르는 게 의미가 한결 빨리 다가올 것 같다. 영어에 젬병인 내가 영어보다 우리말이 더 어색하게 다가온 건 처음이다.
다니엘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사이드
단원들이라고 자국의 정치 환경이나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바렌보임은 “우리는 음악하는 사람이니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온도차가 느껴질지라도 서로 대화하여 이해를 넓혀나가도록 유도한다. 거기서 바렌보임은 자신은 ‘관용’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용’은 그 말 속에 이미 강자의 우월감이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속으로 ‘헉!’했다. 그 좋은 말에 그런 관점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편협한 나를 깨웠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2004년 이스라엘 국회가 수여하는 울프상을 받게 되었는데 그의 수상소감이 내겐 살 떨리게 파격적이다. 시상을 한 대통령 앞에서 이스라엘 헌법정신을 이야기하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가 잘못된 것임을 역설하는데 보는 내가 다 긴장되어 숨이 막힌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면서도 수상자로 결정한 재단이나, 그의 소신 있는 수상소감이나, 뒤이은 울프재단 측 관계자의 유감표명이나 모두 큰 소란이나 방해 없이 진행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라면 저런 일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평화에 대한 열정과 의지,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견고한 신뢰와 우정이 마음을 뜨겁게 덥힌다. 라말라 공연을 보지 못하고 2003년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사이드를 자신이 얼마나 의지했는지, 홀로 잘해낼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바렌보임의 인터뷰가 그래서 더 찡하다. 새삼 발견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가 한 권 있다. <오리엔탈리즘> 두툼한 이 책 인내심과 집중력이 있어야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기회에 한번 도전해볼까 한다.
영화를 보고 나니 지난 해 8월 내한한 다니엘 바렌보임과 이 오케스트라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임진각 콘서트를 갈 걸. 입장료가 적지 않았을 테니 영화 속에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베토벤 교향곡 5번과 7번 등 오래도록 좋아했던 음악을 내내 들을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해야겠다. 영화시사회는 처음이었는데 9월 6일에 개봉한다지만 가까운 상영관에서 손쉽게 만날 수 있을 영화는 아닌 것 같아 초대해준 율리님이 참 고맙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 좋은 영화를 보는 삼삼한 기분을 선물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