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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손의 솜씨

행복한 방학

M.미카엘라 2013. 1. 25. 17:19

 

소미가 독일로 떠나고 소은이는 쾌재를 불렀다. 자기를 괴롭히는 언니 없는 방학은 온전한 휴식이 될 거라며 좋아했다. 공항에서 둘이 포옹이나 하라 했더니 서로 손사래를 쳤다. 오글거린다나?

“우리 안 친해요. 갑자기 웬 친한 척은? ㅎㅎ”

오글거리는 건 ‘쑥스럽다’, ‘낯간지럽다’ ‘닭살 돋는다’쯤이 될까. 둘이 똑같이 오글거리는 짓 하나 안하고 쿨하게 헤어졌다. 그래놓고 카톡으로 수다는 자주 떠는 품이다.

 

애들이 이번 방학에 숙제가 한 줄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난 참 좋다. 아무 부담 없이 그냥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거 하는 방학이니, 비록 겨울방학이 한 달밖에 안 되지만 진정 방학이다. 학교 숙제 아니라도 할 것 많은 요즘 애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참 탁월한 선택을 선생님들이 하셨다.

 

방학에 언제는 실컷 못 놀았다고 이번 방학엔 실컷 놀 거라는 소은이는, 방학하고 한 보름을 탱자탱자 놀더니 방학 계획을 그제야 세운다. 다 못 지켜도, 한 가지만 지키는 계획이어도 계획은 세운다는 게 소은이 평소 생각이다. 개학해도 또 며칠 학교 안 가고 봄방학이니 2월까지의 계획을 한꺼번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동그라미 그려서 일일계획도 세우고, 너무 놀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양심상 영어 수학 공부는 쬐끔씩 해주고, 그리고 큰 계획 서너 개의 세부계획을 세운다.

 

1. 베이킹 계획

2. 독서 계획

3. 문화생활 계획

 

이게 굵직한 계획이다. 뮤지컬에 꽂혀서 <오페라의 유령>을 2개월 전에 예매해놓고 보고오고도 2편을 더 봤다. 어른들이 주신 용돈 꼬깃꼬깃 모아놓고 좀체 안 쓰던 돈을 탈탈 털어 냈다. 또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을 두 번이나 펑펑 눈물 쏟으며 봐놓고 소미가 독일에서 오면 같이 봐주러 한 번 더 가겠단다. 이런 건 꼭 언니도 봐줘야 하기 때문이라는데 자기가 한번 더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 난 안다. ㅋㅋ

 

“엄마, 왜 내가 만든 건 맛이 다 똑같을까?”

제과제빵을 집에서 책보고 하는 게 취미생활인 소은이의 고민은 방학계획을 세우며 더 깊어졌다. 쿠키도 파운드케이크도 머핀도 스콘도 자기가 보기엔 다 맛이 같다는 것이다. 난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수긍하지 않았다. 내가 한발 물러서 밀가루, 달걀, 우유, 버터가 기본 재료로 들어가는 것들이니 그럴 수는 있지만 그래도 엄마가 맛보기엔 다 다르다고 했더니, 그래도 자긴 다 똑같단다. 자기가 이제껏 만든 것 중에서 마들렌 외엔 하나도 맛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리고 책을 뒤적이며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과자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바탕 베이킹 도구와 재료들을 정리했다.

“근데 엄마, 베이킹 재료 사려면 엄마한테 미안해요. 많은 양을 만드는 것도 한 가지를 자주 만드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적은 양의 재료를 사도 너무 많이 남아서 유통기한 지나면 버리게 되기 때문에.... 그리구 과자나 빵마다 조금씩 다른 도구들이 필요한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생각 많이 해서 자주 쓸 것 같은 것 위주로 사라고 해놓고 타르트 팬과 꼬마 케이크 틀을 사줬다. 소은이는 코코넛 채 썰어 말린 것도 사고 샤워 크림의 재료가 되는 것도 샀다.

 

그렇게 준비된 후의 결론은, 이제 우리 집은 치즈케이크 안 사먹는다. 소은이가 만든 게 사먹는 것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그리고 타르트도 안 사먹을 거다. 이번엔 치즈타르트라 치즈케이크와 비슷한 느낌도 나지만 여기다 어떤 재료든 토핑만 하면 색다른 타르트가 될 거다. 그리고 처음 맛보는 코코넛 로쉐가 또 별미다. 말린 코코넛이 씹히는데 꽤 맛있다. 소은이는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고민한 보람이 있단다. 치즈케이크가 비록 꺼내는 과정에 뭉그러지긴 했지만 맛이 사는 것과 비슷하게 좋아서 괜찮다고 했다. 다음에 잘 만들면 된단다.

 

그리고 오늘 소은이는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한다. <청담동 앨리스>의 문근영, <타워>의 손예진이 세련되게 말하는 프랑스어에 반하더니, 오늘 프랑스가 배경인 영화를 보고나더니 작년에 이모가 사준 ‘프랑스어 첫걸음’이라는 책을 처음 펴들었다. 자기에게 앞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프랑스어를 지금부터 조금씩 맛보기 하겠다는 건데, 지속적으로 할지는 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언어라는 게 잘하고 싶은 마음 속 열망만으로 잘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일본어 잘하고 싶다고 한 지도 꽤 되었다. ㅎㅎ

 

그래도 별로 잔소리할 것 없이 자기가 알아서 잘 보내는 방학이라 나도 편하고 마음이 평화롭다. 이제 소미가 돌아오면 집안이 또 시끄러워질 테지만, 소미는 소미대로 소은이는 소은이대로 잘 보낸 겨울방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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