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거기가 어디라고 본문
“소미 도착”
문자가 왔다. 4시도 안 됐는데 벌써 해가 지며 아름다운 노을이 가득한 노르웨이 남부 도시의 공항 모습을 찍은 사진과 함께. 보낼 때도 아무렇지 않게 보냈는데 독일에서 2주 있다가 런던을 거쳐 드디어 노르웨이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좀 마음이 출렁한다. ‘거기가 어디라고, 혼자 그 먼 데를 네가 기어코 갔냐....’ 싶은 게.... 독일에 계신 언니가 부족한 짐을 더 챙겨서 보내주시며 이 쪼꼬만 애가 이리 무겁고 큰 가방을 두 개나 들고 해 빨리 지고 추운 나라에 간다 생각하니 짠하단 의미로 문자를 보내셨을 때만 해도 무덤덤, 걱정 마시라 잘 할 거다 말했다.
얼마나 무식한지 나는 교환학생이 돈만 주면 학교에서 다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학교는 자격 기준에 맞는 학생을 선발만 할 뿐, 하나부터 열 가지 모두 스스로 해야 했다. 선발 후에는 모든 걸 메일로 그 나라 학교 측과 직접 소통하며 준비한다. 비자, 기숙사, 수강신청, 학사일정, 심지어 ‘네가 원하면 이케아 침구 세트를 사서 넣어줄 수 있다. 신청하겠니?’라는 작은 문제까지 답을 했다.
거기가 어딘데 그 먼 데까지 보냈나 생각해보면 지난 해 여름이 생각난다. 소미가 두 달의 유럽여행에서 돌아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소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행을 가보니 자기 자신을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는데 소심하고 겁 많고 망설였다. 이리저리 생각 많이 하고 주저하느라 좋은 경험의 기회를 많이 놓쳤다고 했다. 좀 달라지고 싶지만 쉽진 않다고 했다.
가족 단톡방에서 “안전제일”만 외치는 아빠의 문자메시지를 같이 간 친구가 보고는, 무덤덤한 자기 집과 비교하며 웃었다 했다. 나중에 그 친구 엄마와 만나보니, 거긴 반대로 무조건 앞만 보고 “레츠 고!”를 외치는 딸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소미와 함께 가서 다행이라 했었다. 그렇다고 두 아이가 각각 소심과 레츠고 양 극단에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냥 흘려듣지 못했고 고민했다.
그 후 나는 소미의 말을 남편에게 전하며 설득했다. 현역군인으로 한 20년, 그것도 사건사고 처리하는 군대 경찰로 살다보니 그에겐 “안전이 제일”이었다. 점검하고 확인하고 조심하고.... 나도 덩달아 그런 면이 적지 않았다. 첫아이 소미에게 이런 부모의 생활방식이 학습되고 내면화된 건 당연했다. 나쁜 건 아니지만 과하면 정말 소심쟁이 쫄보가 된다. 귀가시간 시시각각 체크하지 말 것, 어디 갔을 때 인증샷 요구하지 말 것, 걱정이 되도 짐짓 무덤덤한 척 티 나게 걱정하지 말 것, 염려의 말 대신 격려의 말을 할 것 등등. 다행이 남편은 내 말을 흘려 듣진 않은 모양으로 이후 그런 요구는 하지 않았다.
(노르웨이 도착 후 자기 얼굴 넣어 처음 보내온 사진)
소미는 낯선 나라로 도전을 선택했고 우린 흔쾌히 다녀오라 했다. 과목당 학점을 넉넉하게 주는 북유럽 대학에서, 그것도 겨우 한 학기 동안 뭐 대단한 학문을 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낯선 문화에서 경험하는 다른 공부에 기대를 건다. 흔한 말로 견문을 넓히는.
그리고 자기 손으로 자기 생활을 책임지는 연습을 위해 보낸 이유가 가장 컸다. 비록 아직은 부모 돈으로 유학하지만,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 자기 손으로 장봐다가 해먹고, 자기 옷 자기가 직접 빨고 관리하고, 문단속, 불단속, 청소 등등 스스로 해보라고 1인실 기숙사에 넣었다. 세계에서 물가가 최고로 비싼 나라인 노르웨이는 외식비가 상상 이상으로 비싸고 식재료는 그나마 우리나라 수준이거나 그보다 조금 싼 편이라 직접 조리해서 먹어야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걸 소미도 알고 갔다.
무엇보다 그곳에서의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낯선 곳에서 혼자 살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으로 외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인지, 후일 더 길게 외국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이 모든 것을 가늠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1년을 휴학했더니 공부에 발동 걸리는 데 한참 걸려 힘들다 하면서 죽을동살동 한 학기를 시험과 과제, 팀플로 자주 밤을 새면서도 공부는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전공과목과 과목 사이에 공통된 어떤 것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며 이해가 안 됐던 것이 이해되고 깨닫게 되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머리가 트이는 것 같다고 했다. 재미있으면 잘 하겠다 나 혼자 생각했는데, 성탄절 이틀 전 독일에서 “아버지 어머니 축하드립니다. 전액장학금입니다”라는 문자와 함께 지난 학기 성적표를 보내왔다.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성적이다. 다들 너무 열심히 해서 기대할 수 없다더니.... 고맙고 고마웠다.
종강 4일 만에 떠나 3주 만에 타국의 대학에서 다시 개강이다. 편안하게 자신에게 가장 충실할 수 있는, 다시 없을 이 시간을 즐기다 오라 했다. 해가 빨리 지는 긴 겨울 나라에서 혹시 우울해진다면 독일 이모가 주신 비타민D를 먹으며 황현산 선생의 수필집을 생각하기 바란다. “밤이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