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하산하여라! 본문
소은이는 요즘 어떤 돌발 행동으로 나와 남편을 웃게 만든다. 아주 심각하거나 아주 진지한
상황에서, 혹은 내 목소리가 야단치려고 높아지려 하거나, 어른이 자기 행동을 막으려는 찰나에
돌발적으로 아주 깍듯하고 예의 바르고 조신한 말이 또박또박 나오기 때문이다.
막 밥상에 수저를 놓고 상을 보고 있는데 초코파이를 먹겠다고 하면 나는 당연히 먹지 말라고
말한다. 그럼 소은이는 그래도 한 번 먹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럼 난 당연히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소은이 너 지금 이거 먹으면 밥 안 먹을 거 아냐? 그래? 안 그래? 그럼 엄마가
화 나? 안 나? 엉?" 이러면서 슬슬 흥분하면 소은이는 그때 딱 마음을 접고 차분하게 말한다.
"네. 엄마 알았습니다. 밥 먹고 먹겠습니다. 엄마!."
참 이것처럼 확실하게 내 입을 딱 막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를 탓하는 말을 하거나 내
잘못을 꼬집어주는 말을 하면 "그래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라든가 "그때 엄마 형편이
이러이러했으니 이해해 주라"라는 해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알겠어요'도 아니고 '알겠습니다',
'잘못했어요'도 아니고 '잘못했습니다', '죄송해요 엄마'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엄마. 다음부턴
안 그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니 더 이상 야단도 꾸중도 그렇다고 칭찬도 할 수 없게
깔끔하게 입을 막아 버리고 만다. 아주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진심을 다해 말하는데 내가
더 무슨 말을 하랴. 내내 소은이 고집이 세다 세다 했지만 자기 잘못을 딱 인정하거나 아니면
고집 부리느라 치켰던 꼬리를 확 내리고 잘못을 비는데….
어떤 땐 내 화를 머리끝까지 오르게 만들어 폭발 직전까지 몰고 가놓고는 딱 고만 "네! 알겠습니다
엄마, 제가 잘못했습니다. 담부턴 안 그러겠습니다" 이래버리는데 참, 실소밖에 안 나온다.
그때 기분이란 터질 듯하게 부푼 고무 풍선의 바람이 한순간에 확 빠지는 것 같이 맥없어진다.
꼭 사춘기를 맞은 아들이 화가 잔뜩 난 엄마에게 '엄마, 왜 이렇게 흥분하고 그러세요? 제가
잘못했다고 말하잖아요? 울 엄마 참, 이상하시네! 별 일도 아닌 것을' 이러면서 호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능청을 떠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또 어떤 땐 세상 이치 다 통달한
선인(仙人) 같이 '쯧쯔, 내가 어찌 하나 두고 봤더니 그럴 줄 알았다. 그래, 내 이만 할 터이니
고만 흥분을 가라앉히거라'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요즘 소은이가 내게 야단 맞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하나 있다. 소미에게 덤비면서
"야! 너어!" "야! 박소미" 한다거나 "똥개 소미!" 이러면서 막말을 서슴없이 한다는 점이다.
난 얼마 전부터 이젠 이런 말을 그냥 봐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두 딸들의 충돌에서 일단
소은이의 이런 말을 잡아 꾸중을 한다. 사실 원인 제공이야 소미가 먼저 하는 경우도 많다.
먼저 밀치거나 뺏거나 끝까지 자기가 가진 걸 내주지 않으면서 약을 올리면 소은이는 그냥
"빨리 줘어! 그럼 내가 소미라고 그런다, 정말 그런다? 엉?…… 야이! 박소미!" 이러면서 울화통
터지는 심정을 말로 풀어낸다.
몇 번 말로 타이르다가 얼마 전 한번은 크게 매를 든 적이 있었다. 언니에게 "소미야!"
"박소미!" "너!" 이런 말로 언니처럼 굴거나 "바보 똥개!" "죽을래?" 이런 나쁜 말 쓰면
엄마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처음으로 쐐기를 박으면서 호되게 매를 두어 번 쳤다. 그런데
그 후 조심하는 빛이 역력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예의 그 말들이 튀어나오면서 내 주의를
받았다. 소미는 그럴 때마다 쪼르르 달려와서 일러바치지만(이게 더 얄밉다)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매를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 혼자 속으로 앞서 호되게 매를 든 일을 앞으로도
몰아서 한 두어 번은 더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매와 감정을 아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바로 오늘. 한 며칠 소은이가 소미 이름을 불러도 들어도 못 들은 척, 소미가 일러도
엄마가 직접 잘 들었을 때 혼을 내겠다고 한 터라 내내 미뤄두고 있었는데 오늘 소은이는
정면에서 들키고 말았다. 무슨 일로 둘이서 싸우다가 소미가 소은이를 밀어서 넘어뜨리자
약이 바싹 오른 소은이가 "야이! 박소미 너어!"하는 소릴 옆에서 들었다. 나는 조용히 가서
냉장고 덮개 옆 주머니에 넣어둔 매를 들고 와서 아무소리 없이 발의 복숭아뼈 아래 부분,
발꿈치 쪽을 딱딱 두 번 때려줬다. 그 동그란 눈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쇠꼬챙이 같은
소리로 울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
"엄마, 잘못했습니다. 내가 언니한테 잘못했습니다. 박소미 이런 말 이제 안 그러겠습니다 엄마."
또 예의 그 꼬리 내리기 말투인데 다른 날은 웃음이 나왔지만 오늘은 갑자기 가슴이 확 아팠다.
그렇다고 태도를 갑자기 바꿀 수가 없어서 가만히 눈만 들여다보며 있는데 소미가 옆에서
거들었다.
"엄마, 나도 잘못한 거예요. 제가 소은이를 밀었어요. 소은아, 미안해. 언니가 먼저 잘못했어."
"괜찮아. 나도 미안해 언니."
"괜찮아."
나는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저희들끼리 속사포로 주고받으며 모든 일을 깔끔하게 확실하게
마무리하고 만다. 소은이는 나 같으면 울음소리만 쏟아져 나와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은데
울음에 확 젖은 목소리로도 사과하고 사과 받고 할 말은 다 했다. 소미에게 힘이 조금 더 센
네가 소은이를 화나게 하긴 아주 쉽다, 그렇다고 그 힘을 아무 데나 쓰면서 소은이를 약 올리면서
화나게 하는 것도 나쁘다고만 해두고는 그 이상 더 잔소리는 안 했다. 하긴 무슨 할 말이 더
있을까.
내가 늘 매를 들고'애 잡는' 일을 되풀이한 것도 아닌데 '이거 내가 너무 잡았나?'하는 생각이
순간 스쳤지만 그냥 넘기고 말았다. '그려, 철든 겨! 우리 딸들이 철든 겨!' 이러면서 억지
위로를 하면서.
'그래, 딸들아, 이제 하산하여라 .이 어미가 가르칠 일이 아무 것도 없구나.'
*6월 7일 대전 현충원에서
할아버지께 절 올리는 소미, 소은이.


상황에서, 혹은 내 목소리가 야단치려고 높아지려 하거나, 어른이 자기 행동을 막으려는 찰나에
돌발적으로 아주 깍듯하고 예의 바르고 조신한 말이 또박또박 나오기 때문이다.
막 밥상에 수저를 놓고 상을 보고 있는데 초코파이를 먹겠다고 하면 나는 당연히 먹지 말라고
말한다. 그럼 소은이는 그래도 한 번 먹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럼 난 당연히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소은이 너 지금 이거 먹으면 밥 안 먹을 거 아냐? 그래? 안 그래? 그럼 엄마가
화 나? 안 나? 엉?" 이러면서 슬슬 흥분하면 소은이는 그때 딱 마음을 접고 차분하게 말한다.
"네. 엄마 알았습니다. 밥 먹고 먹겠습니다. 엄마!."
참 이것처럼 확실하게 내 입을 딱 막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나를 탓하는 말을 하거나 내
잘못을 꼬집어주는 말을 하면 "그래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다"라든가 "그때 엄마 형편이
이러이러했으니 이해해 주라"라는 해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알겠어요'도 아니고 '알겠습니다',
'잘못했어요'도 아니고 '잘못했습니다', '죄송해요 엄마'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엄마. 다음부턴
안 그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니 더 이상 야단도 꾸중도 그렇다고 칭찬도 할 수 없게
깔끔하게 입을 막아 버리고 만다. 아주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진심을 다해 말하는데 내가
더 무슨 말을 하랴. 내내 소은이 고집이 세다 세다 했지만 자기 잘못을 딱 인정하거나 아니면
고집 부리느라 치켰던 꼬리를 확 내리고 잘못을 비는데….
어떤 땐 내 화를 머리끝까지 오르게 만들어 폭발 직전까지 몰고 가놓고는 딱 고만 "네! 알겠습니다
엄마, 제가 잘못했습니다. 담부턴 안 그러겠습니다" 이래버리는데 참, 실소밖에 안 나온다.
그때 기분이란 터질 듯하게 부푼 고무 풍선의 바람이 한순간에 확 빠지는 것 같이 맥없어진다.
꼭 사춘기를 맞은 아들이 화가 잔뜩 난 엄마에게 '엄마, 왜 이렇게 흥분하고 그러세요? 제가
잘못했다고 말하잖아요? 울 엄마 참, 이상하시네! 별 일도 아닌 것을' 이러면서 호주머니에
손 찔러 넣고 능청을 떠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또 어떤 땐 세상 이치 다 통달한
선인(仙人) 같이 '쯧쯔, 내가 어찌 하나 두고 봤더니 그럴 줄 알았다. 그래, 내 이만 할 터이니
고만 흥분을 가라앉히거라'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요즘 소은이가 내게 야단 맞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하나 있다. 소미에게 덤비면서
"야! 너어!" "야! 박소미" 한다거나 "똥개 소미!" 이러면서 막말을 서슴없이 한다는 점이다.
난 얼마 전부터 이젠 이런 말을 그냥 봐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두 딸들의 충돌에서 일단
소은이의 이런 말을 잡아 꾸중을 한다. 사실 원인 제공이야 소미가 먼저 하는 경우도 많다.
먼저 밀치거나 뺏거나 끝까지 자기가 가진 걸 내주지 않으면서 약을 올리면 소은이는 그냥
"빨리 줘어! 그럼 내가 소미라고 그런다, 정말 그런다? 엉?…… 야이! 박소미!" 이러면서 울화통
터지는 심정을 말로 풀어낸다.
몇 번 말로 타이르다가 얼마 전 한번은 크게 매를 든 적이 있었다. 언니에게 "소미야!"
"박소미!" "너!" 이런 말로 언니처럼 굴거나 "바보 똥개!" "죽을래?" 이런 나쁜 말 쓰면
엄마가 용서하지 않겠다고 처음으로 쐐기를 박으면서 호되게 매를 두어 번 쳤다. 그런데
그 후 조심하는 빛이 역력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예의 그 말들이 튀어나오면서 내 주의를
받았다. 소미는 그럴 때마다 쪼르르 달려와서 일러바치지만(이게 더 얄밉다)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매를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 혼자 속으로 앞서 호되게 매를 든 일을 앞으로도
몰아서 한 두어 번은 더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매와 감정을 아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바로 오늘. 한 며칠 소은이가 소미 이름을 불러도 들어도 못 들은 척, 소미가 일러도
엄마가 직접 잘 들었을 때 혼을 내겠다고 한 터라 내내 미뤄두고 있었는데 오늘 소은이는
정면에서 들키고 말았다. 무슨 일로 둘이서 싸우다가 소미가 소은이를 밀어서 넘어뜨리자
약이 바싹 오른 소은이가 "야이! 박소미 너어!"하는 소릴 옆에서 들었다. 나는 조용히 가서
냉장고 덮개 옆 주머니에 넣어둔 매를 들고 와서 아무소리 없이 발의 복숭아뼈 아래 부분,
발꿈치 쪽을 딱딱 두 번 때려줬다. 그 동그란 눈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쇠꼬챙이 같은
소리로 울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
"엄마, 잘못했습니다. 내가 언니한테 잘못했습니다. 박소미 이런 말 이제 안 그러겠습니다 엄마."
또 예의 그 꼬리 내리기 말투인데 다른 날은 웃음이 나왔지만 오늘은 갑자기 가슴이 확 아팠다.
그렇다고 태도를 갑자기 바꿀 수가 없어서 가만히 눈만 들여다보며 있는데 소미가 옆에서
거들었다.
"엄마, 나도 잘못한 거예요. 제가 소은이를 밀었어요. 소은아, 미안해. 언니가 먼저 잘못했어."
"괜찮아. 나도 미안해 언니."
"괜찮아."
나는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저희들끼리 속사포로 주고받으며 모든 일을 깔끔하게 확실하게
마무리하고 만다. 소은이는 나 같으면 울음소리만 쏟아져 나와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은데
울음에 확 젖은 목소리로도 사과하고 사과 받고 할 말은 다 했다. 소미에게 힘이 조금 더 센
네가 소은이를 화나게 하긴 아주 쉽다, 그렇다고 그 힘을 아무 데나 쓰면서 소은이를 약 올리면서
화나게 하는 것도 나쁘다고만 해두고는 그 이상 더 잔소리는 안 했다. 하긴 무슨 할 말이 더
있을까.
내가 늘 매를 들고'애 잡는' 일을 되풀이한 것도 아닌데 '이거 내가 너무 잡았나?'하는 생각이
순간 스쳤지만 그냥 넘기고 말았다. '그려, 철든 겨! 우리 딸들이 철든 겨!' 이러면서 억지
위로를 하면서.
'그래, 딸들아, 이제 하산하여라 .이 어미가 가르칠 일이 아무 것도 없구나.'
*6월 7일 대전 현충원에서
할아버지께 절 올리는 소미, 소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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