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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말,말,말!

엽기적인 그녀들의 말, 말, 말! (1)

M.미카엘라 2002. 8. 27. 16:20

<크리스마스 선물>
소은이는 산타할아버지가 넉넉한 집 한 채를 선물했다. 볼을 뺀 볼텐트인데 전에 친구집에 가서 스누피가 그려진 천으로 만든 장난감 집을 보고 그거 갖고 싶다고 몇 날 며칠 말했던 터다. 집 좁은 것 애써 무시하고(접어넣을 수 있으니까) 스누피는 아니었지만 '무스티'라는 고양이가 그려진 집을 샀는데, 그 안에 들어가 너무 좋아하며 기껏 잘 놀아놓고는 오늘 저녁 괜한 시비를 걸었다.
"엄마, 나 무스티집 싫어. 왜 무스티집 샀어? 난 스너피집이 좋아."
"엄마가 산 게 아니고 산타할아버지가 주신 거잖아."
"산타할아버지는 왜 히니가 스너피집 갖고 싶댔는데 무스티집 줬어잉∼."
"스누피집보다 더 크고 넓잖아. 서있을 수도 있고. 더 좋으니까 그걸 선물해주신 거야."
"아냐. 히니는 무스티집 싫어. 엄마, 산타할아버지한테 바꿔 달래잉∼. (갑자기 천장을 쳐다보며) 산타할아버지 히니는 스너피집이 좋다고 그랬는데 왜에, 왜에 무스티집 줬어요잉∼. 바꿔줘요오."
내 참, 그러고도 그 밤에 그 무스티집에서 잠들었다.

<저금통>
중국집에 갔다. 우리 네 식구와 일주일을 혼자 지내는 선재 아빠와. 그 중국집은 연말을 맞아 어린이 고객들에게 작고 투명한 돼지저금통을 선물했다. 저금통에는 "돈 모아 짜장면 먹자'라는 코믹한 문구가 써있었는데, 소미, 소은이는 물론 자리에 없었던 선재 것까지 받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소미가 제 것을 두고 왔다. 부득부득 소은이 걸 제것이라고 우기고 소은이는 악착을 떨며 울었다. 선재 아빠가 소은이에게 선재 것 가지라고 주니까 안 받으면서 한다는 말.
"안돼요. 그르면 선재가 난리치자나요."

<뒤죽박죽 사극천하>
소미가 말했다.
"소은아, 우리 '여인천하 놀이' 할래? 나는 중전마마하고 너는 세자해."
그러면서 '복성군' 어쩌고 해가면서 고어체 말투를 흉내내며 조금 놀더니만, 갑자기 소은이가 방밖으로 나와서 두 다리 벌리고 서서 한 팔을 높이 치켜들며 나한테 한다는 말.
"나는 태조 왕건이다!"
참고로 나는 요즘 텔레비전 시청을 어린이 프로그램 말고는 세 편의 사극만 편식하고 있다. <여인천하> <명성황후> <태조왕건>
오늘은 <명성황후>를 보는데 또 소미 왈.
"엄마 저 분홍색 한복 입은 사람 누구예요?"
"응, 중전마마."
"어, 중전마마가 달라졌네!"
"응, 지금 중전마마는 좀 나쁜 일이 생겨서 쫓기고 있거든. 그래서 평소하고 다른 옷을 입은 거야."
"아냐, 여인천하 중전마마 아니잖아."

<온천 가면>
"소은아, 오늘은 아빠 따라 가서 온천해. 알았지?"
"아니에요. 히니는 아빠 따라 남탕에 안 갈 거예요."
"왜에? 아직 히니는 애기라서 가도 괜찮아. 엄마가 힘들어서 그래. 엄마는 언니랑 갈게."
"아니에요. 히니는 남탕에 안 가고 '애기 남탕'에 갈 거예요. 애기 남탕."
으잉? 애기 남탕? 그런 것도 따로 있나?

<그림책을 보며>
우리집엔 실물사진이 아주 시원하게 많이 실린 큼직한 영어그림책이 있다. 이 책은 영어가 아니라도 그 그림 때문에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데, 선재와 채구가 놀러오는 날엔 소은이까지 합세해서 삼파전의 싸움으로 서로 보겠다고 쟁탈전이 벌어지곤 한다(책 소개를 하자면 예림당에서 펴낸 <나의 첫영어책>이다. 값은 10,000원인데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인터넷 서점에서 사면 할인이 된다).
이 그림책을 보며 소은이가 말했다.
"엄마, 나 이거 사주세요."
"뭔데에?"
그러면서 그림책을 보니 바이올린하고 바이올린 활이 나란히 놓인 사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거요 엄마. 바이올린하고 맴매!"

 

<누나 같은 말투>
크리스마스날 저녁에 세 가정이 볼링을 치러 갔다. 우리 식구는 어딜 다녀온 차였는데 앞좌석 카시트에서 잠든 소미를 때문에 내가 집에 들어가서 필요한 것만 잠깐 가져오고 차를 그대로 운행했다. 그런데 선재가 냉큼 우리 차에 올라탔다.
한참을 가는데 어두운데다가 그것도 뒷좌석에서 나랑 소은이랑 같이 앉아 가던 선재가 엄마를 찾으며 울먹였다. 내가 남편에게 선재가 앞좌석에 앉았으면 절대 울지 않을 텐데 이런다고 하면서 달랬다. 소미가 잠자고 있으니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 소은이의 완벽한 누나 같은 말투.
"선재야. 앞에 앉고 싶어서 그래? 그른데 어떡하지? 소미 누나가 자고 있는데… 그냥 뒤에 타고 가야겠다. 할 수 없지 뭐."
남편도 나도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말은 옮길 수 있어도 말투를 옮길 수 없는 게 한이다.

 

<슈렉>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 <슈렉>을 빌려서 소미와 소은이가 먼저 보기 시작했다. 우리말 녹음이고 아무리 애니메이션이라도 두 아이에겐 좀 어렵다 싶었지만 생각 밖으로 잘 보았다. 나는 왔다갔다 일을 하면서 가끔씩 화면에 눈길을 주기만 했던 터라 처음 피요나 공주가 뚱뚱해진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소미야, 피요나 공주가 왜 저렇게 뚱뚱해졌어?"
"아, 그거요? 공주님이 어릴 때 마녀의 젖을 받아먹어서 그런 거예요."
"마녀의 젖? 그으래? 참 재미있다 응?"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그런 후 내가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참 비슷하게 듣긴 했지만 아주 다른 내용인 것을 알고 박장대소했다.
피요나 공주는 '마녀의 젖을 받아먹어서' 뚱뚱해진 것이 아니라, '마녀의 저주를 받아서' 밤이 되면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로 변한 것이었다. 하긴 마녀가 피요나 공주를 미워했는데 왜 젖을 먹였겠는가. 클클!

 

<촌수>
시누이 집에 갔을 때 조카 도훈이가 달려가서 와락 제 엄마에게 안겼다. 고모가 손짓하니까 소은이도 막 달려가 안기려는데 도훈이가 "오지 마. 우리 엄마야!"하며 제동을 걸었다. 소은이 왈.
"그래, 우리 엄만 저기 있어. 넌 엄마고 난 고모지."
소은이는 사람과 사람의 촌수나 관계를 정확하게 집어서 말하는 편이다. 좀 놀라운 건 A라는 어떤 한 사람하고의 관계라도 A와 자기(소은이), A와 자기 친구의 관계가 다른 것을 알고 그에 맞는 호칭을 정확하게 쓴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내가 소은이에게 사탕을 하나 주면 선재나 채구가 냉큼 뒤따라온다. 그때 사탕을 받아든 소은이가 선재를 보며 하는 말.
"우리 엄마가 사탕 줬다아∼. 너도 가서 이모(선재는 날 이모라고 부르니까)한테 사탕 달라고 그래."
고만한 아이들은 보통 "너도 가서 우리 엄마에게 사탕 달라고 그래" 하기 쉬운데 소은이는 자주 그런 식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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