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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을 떼며 목청 높이는 여자

M.미카엘라 2000. 9. 20. 10:57
태어난 지 만 14개월 12일만에 소은이 젖을 떼는 데 성공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성공하는 것 같다. 오늘로 만 나흘째 소은이는 젖을 한 방울도 안 먹었고,
탄력붕대 두 장으로 칭칭 동여맨 내 가슴은 몸살날 듯 무섭게 단단한 채 아리고
쑤시더니 이제 조금 진정 기미를 보인다. 속이 적잖게 부대낀다는 젖 말리는
약을 먹지 않고도 비교적 수월하게 젖이 삭는 걸 보면 소미 11개월 먹이고
소은이를 이만큼 먹인 덕분이라고 본다.

요즘 우리 나라 모유수유 추세로 봐서는 그래도 꽤 오래 먹인 축에 속하는데도 막상
돌 무렵에 '이젠 떼야지'하는 생각을 할 때부터 마음이 무겁고 아프고 심란했다.
그래도 아직 그럭저럭 잘 나오는데, 이렇게도 젖 먹는 걸 좋아하는데, 이젠
나랑 눈맞추고 행복에 겨워 빨다 놀다 하는 이 예쁜 모습을 볼 수 없겠지, 밤에
깨서 울면 어찌 달래나 하는 생각들로 며칠을 보냈다.

또, 아직 아긴데 조금 더 먹여라, 시간이 걸려도 억지로 떼지는 말고 횟수를 줄이면서
서서히 떼라, 다 떨어지게 되어 있다 하시는 어른들의 말씀을 크게 위로 삼으며
유예기간을 두듯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또 어언 두어 달이 지났다.

그러나 이제 젖맛을 안 소은이는 간식 내지 취침 전후 기분전환 음료수 정도로 젖을
먹으면서도 점점 내 속을 읽은 듯 집요하게 젖을 먹으려 들었다. 그 쪼끄만 꼬막손을
쫙 펴서 제 가슴을 팡팡 치며 쭈쭈 달라는 시늉을 하는 걸 보면 마음이
확 약해졌다. 심지어는 내 옷 아랫자락을 삐끗 들추고는 애달픈 표정으로 공세를
펼 때도 많으니 "에라, 까짓 것 옛날엔 학교 갔다와서도 먹었다는데"하며
줘버렸다.

그러나 이 여유 속에 걱정이 남모르게 쌓였으니 그만큼 젖떼기가 점점 어렵다는
생각 탓이었다. 소미가 젖뗄 때 손톱만큼도 고생을 안 시켰기 때문에 소은이가
이렇게 집착을 하니 젖떼기 그 어려움을 잘 모르는 통에 더 겁이 났다. 그래서
이 방을 찾아주시며 세 아이를 모두 나보다 긴 시간 동안 모유를 먹여 기르신
존경하는 민들레 님에게 메일로 SOS를 외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내 몸이 요즘 육아 외에도 여러 가지 일에 너무 지치고 힘겨운데,
그것도 젖떼기를 부추기는 까닭이 되었다. 아기 낳기 전보다 몸무게는 한 3킬로
정도가 늘 더 있었는데 최근 완전히 빠졌다.

추석 이후, 10월이 오기 전으로 날잡고 나는 모질게 결심했다. 품을 파고드는 젖먹이
자식을 떼어내는 일만큼 독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런 자식을 아예 안 보려고 한
사흘 친정에 맡기는 분도 많지만, 소은이는 낯가림이 아직도 제법 있고 친정도
멀어 내겐 그런 복도 없었다.

밤이 문제였다. 소은이는 젖병도 그럭저럭 물고 빨대컵으론 더 우유를 잘 먹는다.
밥도 잘 먹고 군것질도 잘해서 낮엔 밖에서 놀리고 하면 문제가 없는데, 하룻밤
에도 기본으로 두 번, 많으면 서너 번도 깨서 우는데 그땐 어이하나. 이제까지는
눈감고도 끌어다가 누워서 젖만 먹이면 나도 소은이도 만사 좋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날은 잠결에도 눈을 감은 채 그 꼬막손으로 제 가슴을 때리며 우는데
정말 가슴이 아리고 쓰려 물리적인 고통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남편도 없는데
더욱 자주 깨서 울고 여간해서 달래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맘이 약해졌지만
이렇게 많이 울렸는데 여기서 실패한 후, 또다시 시작할 땐 또 이만큼을 또
울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어금니를 깨물었다. 고생은 한 번만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며 업어서 달래려고 했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펄펄 뛰며 울다가, 뒤로 넘어지며 울다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서 나에게 안기다가,
다시 가슴을 치다가를 반복했다. 베개를 끌어다가 거기를 탁탁 치며 나보고
누우라고, 그리고 젖달라고 애원까지 하는 걸 내가 다 알아먹겠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 독한 어미를 이기지 못하고 우유로 목을 조금 축이고
젖병을 든 채 지쳐 잠들었다. 나는 '소은이 선생님' 하고 싶게 고마웠다.

다음 날 아침. 평소엔 여덟 시 반에 깨는데 일곱 시부터 깨서 울었다. 불어서 건드리지도
못하게 아픈 가슴을 안고 밤새 잠을 못 잔 나는 죽을 맛이었지만, 옷을 든든히
입히고 유모차를 태워서 아침 산책을 나갔다. 바깥 공기를 쐬고 돌아오니
기분이 좋은지 우유를 한 컵 먹었다. 내게 용기가 생겼다. 하루종일 열심히 몸바쳐
놀아주고 입 궁금할 새 없이 먹을 것을 갖다바치며 지난 일요일을 보냈다.

그러면서 젖을 또 여러 번 찾긴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포기가 빨라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쯤엔 성공을 확신했다. 이 정도면 수월한 편이지 하며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소은이를 볼 때마다 지금도 죄지은 것처럼 가슴이 졸아든다. 내가 울음이
잠시 잦아들었을 때 "소은아, 이제 젖은 그만 먹자. 우리 소은이 다른 것도
다 잘 먹잖아, 응? 넌 행복한 거야. 엄마젖 많이 먹은 거라구" 하니까 등에 업혀서
다시 서럽게 서럽게 울던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안아서 달래고 업어서 재우고 당분간 밤 고생은 변함없을 것 같다. 젖병 물고 자는
것을 아직 모르는데, 뭐 좋은 것 아니니까 버릇들이지 않을 것이며 되도록 빨대컵을
쓰게 할 생각이다.

모유수유는 엄마의 매무새를 늘 단정치 못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모유 먹이기를
어렵게 만드는 아주 못된 분위기가 있다. 난 6개월만 지나면 엄마젖이 영양가가
없어진다는 웃긴 속설을 진작부터 믿지 않았다. 그건 과학적으로 미친 소리
임이 증명되기도 했다. 두 돌까지는 양은 줄지언정 영양에는 문제가 없단다.
이것이 또 하나 모유의 신비가 아닐까.

또 이렇게 젖떼기의 아픔과 고생스러움이 끝으로 남아있다. 소은이 경우보다 더
어렵게 떼거나, 실패하거나 한 사람들을 보기도 보고 듣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젖먹이는 일은 이 모든 어려움을 충분히 뛰어넘는 가치가 있다. 나는 아주
불가항력의 조건이 생겼을 때를 빼고는, 젖먹이기를 쉽게 포기하는 엄마들이
많이 줄어들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련다.

나는 이제 내가 좋아하는 원피스를 입어도 되겠구나. 아픈 가슴이 꽃무늬 원피스처럼
조금 밝아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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