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전투적 자세(?)에 대한 햄릿식 고민 본문
날씨도 선선해지고 소미도 미술학원이 즐거운 눈치라 이제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기
려는데, 엊그제는 얼굴에 꼬집힌 자국을 가지고 학원에서 돌아왔다. 그다지 흉터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었다. 날카로운 것들로 찍찍 긁힌 것처럼
작은 상처가 서너 군데 났고 울긋불긋했다. 그것도 우리 집에 놀러오셨던 분이
먼저 아시고 말씀해주셔서야 알았는데, 그제야 학원에서 돌아온 소미의 말이
생각났다.
"엄마, 나는 호승이가 좋아요. 오늘은 초이 아줌마가 초이 데리고 PX 간다고 해서
오늘은 호승이 손을 잡고 걸어왔어요. 근데 인혜가요, 소미를 막 괴롭혀요. 막 밀고
괴롭혀요."
나는 그냥 "그랬구나. 근데 인혜? 인혜가 왜 그러지? 참 이쁘고 착하게 보이던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소미의 동갑내기 친구 초이도 아침에 미술학원에
가면서 제 동생에게 이랬다고 한다.
"희래야, 따라오지 말고 집에 있어. 인혜가 괴롭혀!"
사실 나는 이런 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뭐 애들끼리 싸우고 때리고 할 수도
있지 하는 쪽이라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편이다. 이제까지 거의 소미가 맞고
빼앗기고 하는 쪽이었는데도 오히려 그런 성품을 고맙게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나와 아주 다르다. 대부분 남편과 나는 아이를 기르는데 많은 부분을
하나로 모아 육아원칙을 정리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아직도 일치를
보지 못했다.
남편은 하루에도 기본으로 두 번 이상은 집으로 전화를 해서 딸들의 안부를 묻는다.
소미가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에는, 요 '쪼만한 딸래미'가 뭐하면서
그 네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해서 거의 안달이 난 것 같다. 전화를 해서는 와서
무슨 말을 하더냐, 얼굴 표정은 밝더냐, 점심은 뭘 먹었다고 하더냐, 많이 먹었다더냐
따위의 질문을 하고, 집에 와선 군복도 벗지 않은 채 소미를 안고서 또 그런
걸 묻는다.
그날도 나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상황보고'를 했다(남편이 부대에서 '상황보고 한다'는
소릴 잘하는데 나도 전화에다가 아이들 얘기할 땐 그 '상황보고'라는 걸 하는
느낌이 든다). 소미가 얼굴을 꼬집혀 왔다는 말도 무심하게 했다. 아, 그런데
곧 내가 실수했음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또 흥분하기 시작했다. 참
이 자리에서 표현하기 부끄럽고 어려운 말로 그야말로 난리가 난 것이다.
소미 이모, 그러니까 친정언니는 남편의 이런 모습에 질색을 한다. 딸 사랑이 지나치게
예민하고 과격하다는 것이다. 남편은 소미가 입만 야무졌지 덩치도 또래보다
작은 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부분 늘 맞고 물리고 꼬집히고 자기 장난감도
빼앗기고 하는 게 부아가 난다고 했다.
소미가 누군가에게 반격의 몸짓을 했다고 '보고 받게 되면' 남편은 당장 신바람이
나서 그 상황을 듣고 또 듣고 싶어하니 정말이지 아무도 못 말린다. 남편은 빗자루를
가지고 노는 소미에게 누가 때리면 그런 빗자루로라도 팍 세게 한 대 때려주라고
말한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누군가와 저녁을 먹게 될지 모르겠다고 한 것 같은데, 잘은 모르지만 소미를 빨리
보고 '전투적인 교육'을 시킬 요량으로 그냥 일찍 퇴근한 것처럼 보였다. 아이고!
귀를 틀어막던지 해야지 또 예의 정신교육이 시작되었다.
"소미야, 인혜가 때리고 꼬집을 때 어떻게 했어?"
"그냥 그러지 마라 그랬어요."
"왜 한 대 때려주지 그랬어."
"빗자루가 없어서요."
푸하하하! 그때 마침 때릴 빗자루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못 때려주었다는 변명이
너무 웃겨서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면 주먹으로 아프게 한 대만 때려주지 그랬어."
"그건 나쁜 일이에요."
"그래, 소미가 먼저 남을 때리는 건 나쁜 일이야. 그런데 다른 애가 소미를 때리면
그러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한 대 아프게 때려도 괜찮아."
남편은 소미의 가는 팔목을 잡고 이렇게 주먹을 쥐라는 둥 저렇게 '꽁'소리나게
때려주라는 둥 실전에 대비한 훈련교육에 한창이었다. 남편은 정당방위를 얘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때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주 못마땅했다. 별 걸 다 가르친다고
타박을 했더니, 자기는 조카 도연이(소미 고모의 딸. 소미보다 7개월 늦게
태어남)보다 소미가 턱없이 작고 힘없는 것이 속상하다며 엄마가 되어 가지고
자꾸 애들을 그렇게 약하게 가르치면 안 된다고 되레 나를 나무랐다.
도무지 합의점이 없었다. 자꾸 제 아빠가 작은 쿠션 하나를 들고 권투선수가 샌드백
두들기듯 주먹으로 때려보라고 시키니까, 소미가 시큰둥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뱉는
말에 우리부부는 그대로 넉다운이 되었다.
"아빠, 이제 그만해!"
자신 없는 일, 잘 할 수 없는 일을 자꾸 시키는 것이 싫다는 뜻으로 보였다.
<때리는 걸 가르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남편은 고민이 없지만 내겐 자식을 기르는 일로서는 새롭게 등장한 고민 내지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집에서는 내가 옆에서 말릴 수도 있었고 막아줄 수도
있었지만, 이제 미술학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간섭할 순 없지 않은가.
덧붙이자면 제부의 오버액션에 혀를 두르는 우리 언니에겐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있다. 언니는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이렇게 가르쳤다. 절대 먼저 때리지는 말아라,
그 대신 맞았을 땐 꼭 두 배로 돌려주어라, 단 신체 중에서 목 위쪽은 손대지
말아라 따위다. 1월생이라 한 살 먼저 입학해서 동급생보다 훨씬 작고 약해
보이지만 조카는 호락호락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야무진 면이 있다.
언니에게 아이 기르는 문제로 많이 도움도 받고 의논도 하고 있지만, 언니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는 그른지는 나는 정말 아직도 모르겠다.
려는데, 엊그제는 얼굴에 꼬집힌 자국을 가지고 학원에서 돌아왔다. 그다지 흉터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었다. 날카로운 것들로 찍찍 긁힌 것처럼
작은 상처가 서너 군데 났고 울긋불긋했다. 그것도 우리 집에 놀러오셨던 분이
먼저 아시고 말씀해주셔서야 알았는데, 그제야 학원에서 돌아온 소미의 말이
생각났다.
"엄마, 나는 호승이가 좋아요. 오늘은 초이 아줌마가 초이 데리고 PX 간다고 해서
오늘은 호승이 손을 잡고 걸어왔어요. 근데 인혜가요, 소미를 막 괴롭혀요. 막 밀고
괴롭혀요."
나는 그냥 "그랬구나. 근데 인혜? 인혜가 왜 그러지? 참 이쁘고 착하게 보이던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소미의 동갑내기 친구 초이도 아침에 미술학원에
가면서 제 동생에게 이랬다고 한다.
"희래야, 따라오지 말고 집에 있어. 인혜가 괴롭혀!"
사실 나는 이런 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뭐 애들끼리 싸우고 때리고 할 수도
있지 하는 쪽이라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편이다. 이제까지 거의 소미가 맞고
빼앗기고 하는 쪽이었는데도 오히려 그런 성품을 고맙게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나와 아주 다르다. 대부분 남편과 나는 아이를 기르는데 많은 부분을
하나로 모아 육아원칙을 정리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아직도 일치를
보지 못했다.
남편은 하루에도 기본으로 두 번 이상은 집으로 전화를 해서 딸들의 안부를 묻는다.
소미가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에는, 요 '쪼만한 딸래미'가 뭐하면서
그 네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해서 거의 안달이 난 것 같다. 전화를 해서는 와서
무슨 말을 하더냐, 얼굴 표정은 밝더냐, 점심은 뭘 먹었다고 하더냐, 많이 먹었다더냐
따위의 질문을 하고, 집에 와선 군복도 벗지 않은 채 소미를 안고서 또 그런
걸 묻는다.
그날도 나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상황보고'를 했다(남편이 부대에서 '상황보고 한다'는
소릴 잘하는데 나도 전화에다가 아이들 얘기할 땐 그 '상황보고'라는 걸 하는
느낌이 든다). 소미가 얼굴을 꼬집혀 왔다는 말도 무심하게 했다. 아, 그런데
곧 내가 실수했음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또 흥분하기 시작했다. 참
이 자리에서 표현하기 부끄럽고 어려운 말로 그야말로 난리가 난 것이다.
소미 이모, 그러니까 친정언니는 남편의 이런 모습에 질색을 한다. 딸 사랑이 지나치게
예민하고 과격하다는 것이다. 남편은 소미가 입만 야무졌지 덩치도 또래보다
작은 게, 태어나서 지금까지 대부분 늘 맞고 물리고 꼬집히고 자기 장난감도
빼앗기고 하는 게 부아가 난다고 했다.
소미가 누군가에게 반격의 몸짓을 했다고 '보고 받게 되면' 남편은 당장 신바람이
나서 그 상황을 듣고 또 듣고 싶어하니 정말이지 아무도 못 말린다. 남편은 빗자루를
가지고 노는 소미에게 누가 때리면 그런 빗자루로라도 팍 세게 한 대 때려주라고
말한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누군가와 저녁을 먹게 될지 모르겠다고 한 것 같은데, 잘은 모르지만 소미를 빨리
보고 '전투적인 교육'을 시킬 요량으로 그냥 일찍 퇴근한 것처럼 보였다. 아이고!
귀를 틀어막던지 해야지 또 예의 정신교육이 시작되었다.
"소미야, 인혜가 때리고 꼬집을 때 어떻게 했어?"
"그냥 그러지 마라 그랬어요."
"왜 한 대 때려주지 그랬어."
"빗자루가 없어서요."
푸하하하! 그때 마침 때릴 빗자루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못 때려주었다는 변명이
너무 웃겨서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면 주먹으로 아프게 한 대만 때려주지 그랬어."
"그건 나쁜 일이에요."
"그래, 소미가 먼저 남을 때리는 건 나쁜 일이야. 그런데 다른 애가 소미를 때리면
그러면 안 된다는 뜻으로 한 대 아프게 때려도 괜찮아."
남편은 소미의 가는 팔목을 잡고 이렇게 주먹을 쥐라는 둥 저렇게 '꽁'소리나게
때려주라는 둥 실전에 대비한 훈련교육에 한창이었다. 남편은 정당방위를 얘기하고
있었지만 나는 때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주 못마땅했다. 별 걸 다 가르친다고
타박을 했더니, 자기는 조카 도연이(소미 고모의 딸. 소미보다 7개월 늦게
태어남)보다 소미가 턱없이 작고 힘없는 것이 속상하다며 엄마가 되어 가지고
자꾸 애들을 그렇게 약하게 가르치면 안 된다고 되레 나를 나무랐다.
도무지 합의점이 없었다. 자꾸 제 아빠가 작은 쿠션 하나를 들고 권투선수가 샌드백
두들기듯 주먹으로 때려보라고 시키니까, 소미가 시큰둥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뱉는
말에 우리부부는 그대로 넉다운이 되었다.
"아빠, 이제 그만해!"
자신 없는 일, 잘 할 수 없는 일을 자꾸 시키는 것이 싫다는 뜻으로 보였다.
<때리는 걸 가르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남편은 고민이 없지만 내겐 자식을 기르는 일로서는 새롭게 등장한 고민 내지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집에서는 내가 옆에서 말릴 수도 있었고 막아줄 수도
있었지만, 이제 미술학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간섭할 순 없지 않은가.
덧붙이자면 제부의 오버액션에 혀를 두르는 우리 언니에겐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있다. 언니는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이렇게 가르쳤다. 절대 먼저 때리지는 말아라,
그 대신 맞았을 땐 꼭 두 배로 돌려주어라, 단 신체 중에서 목 위쪽은 손대지
말아라 따위다. 1월생이라 한 살 먼저 입학해서 동급생보다 훨씬 작고 약해
보이지만 조카는 호락호락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야무진 면이 있다.
언니에게 아이 기르는 문제로 많이 도움도 받고 의논도 하고 있지만, 언니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는 그른지는 나는 정말 아직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