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본때를 보여주마! 본문
정말이지 이제는 머리에 쥐가 난다. 에누리 없이 딱 두 달을 두 딸과 하루종일 지내다보니
내가 이 표현이 절로 나온다. 소은이는 욕심은 많은 것이 그냥 막무가내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려고 하고, 소미는 내가 말을 하면 그냥 어디서 개가 짖나 한다.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정신을 빼면서 집안을 온통 난리를 만들고 도대체 말을 듣지 않는다.
새해 들면서 소미가 놀랍게 변했다.
요즘은 '미운 일곱 살'이라는 표현이 꽤 점잖은 축에
속할 정도다. 일곱 살을 표현하는 말로 엄마들 사이에선 꽤 험악한 여러 표현이
통용되지만,
정말 겪어보니 오죽했으면 그런 표현들을 했을까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제 그 연령이
점차 낮아져 네 살, 다섯
살이 절정기이고 오히려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이면 철든 축에 속한다는
소리도 들리니 쓴웃음만 나온다.
지난 일요일. 이곳
군인성당은 미사 시간이 9시 30분으로 꽤 이른 편이다. 늦잠은 고사하고
일요일이라 해서 괜하게 마음놓았다가 미사에 늦기 딱 십상이다.
신부님이 11시에 또 다른
부대의 미사가 있으셔서 그렇다하니, 단순한 생각으로 미사시간을 늦춰달라고 부탁드릴
일이 아니었다. 미사가
일찍 끝나니 일요일 하루가 더 쓸모 있어서 좋긴 하다.
그 날도 8시 반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서두르는데 역시 두 딸들이 문제였다.
일어났으면서도
도무지 협조적인 데가 없었다. 꼼꼼하게는 아니라도 이 닦고 세수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말로 계속 준비하자고 타일렀다.
그러나 이 나이가 좋은 말로 한다고 먹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 미칠 노릇이다. 웬만하게 칭찬 섞고 격려까지 양념 쳐서 말을 하면 듣기
마련인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은근한 협박을 하면서 말의 수위가 높아져 가는데 콧방귀도 안
뀌었다.
"소미, 소은이
그러면 집에 있어! 아빠 엄마만 다녀올게. 지금 너무 시간이 없어서 안 되겠다."
"엄마가 씻겨주세요."
"그래, 엄마 말대로 오늘은
그러는 게 좋겠다. 이제 유치원도 다닐 건데 그렇게 뭐든지 해달
라고 하면 안 되지. 아무래도 아빠, 엄마가 너무 우리 소미, 소은이한테
뭐든 다 해준 것
같다. 그렇게 다해주는 게 사랑하는 건 아냐."
"아니예요. 할 거예요. 아빠 엄마!"
입으로만 그 말을 하고
내복 입은 채로 몸은 터럭 하나도 움직여 일어날 기미를 안 보였다.
뭐 특별히 재미있게 노는 것도 아니면서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 우리 갑시다. 소미, 소은이 집에 있게 해야겠어요."
남편이 나를 보면서 신발을 신었다.
"아,
그래요. 정말 너희들은 집에 있어. 알았지? 늘 외출 때마다 이렇게 엄마를 애 먹여서야
어디 살 수 있니? 뭐 하나 순조롭게 순순히 하는
게 없잖아. 이 닦는 거나 세수하는 거나 먹는
거나 옷 입는 거나. 그래? 안 그래? 진짜야. 오늘은 너희들끼리 집에 좀
있어봐!"
그 순간 나는 정말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남편과 의미 있는 눈길을 주고받았다. 남편은
'괜찮을까?' 하는
망설임과 불안함을 비추면서도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혹시 내가 후딱
챙겨줘서 데리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는 것도
같았다.
아이들은 아빠가 나가는 소리를 듣고서냐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저희들은 내복 차림인데
그렇게 믿는 아빠는 나갔고
엄마는 옷을 갈아입으니 이제 급할 대로 급했다. 욕실에서 칫솔에
치약을 짜면서 소리쳤다.
"으앙! 엄마 나도 갈
거예요."
"엄마 할게요. 지금 할게요."
소은이는 벌써 울고불고 난리였다. 이도 닦아야겠고 엄마도 잡아야겠고 입에 치약 거품을
잔뜩
문 채로 욕실 문턱에서 안절부절이었다. 우느라고 이를 제대로 닦을 리 없었다.
"너무 울 것도 없어. 엄마가 PX 갔다 올 때도
너희들끼리 두고도 가잖아. 그냥 그렇게 생각해.
엄마는 지금 가도 미사에 좀 늦을 거야."
나는 구두를 신었다.
"안돼!
안돼! 우리도 데리고 가요!"
욕실에서 소미가 악을 쓰며 울었다. 소은이는 두 볼을 타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너무
애처롭게 울어서
잠시 마음이 약해졌다. 그러나 이걸 기회로 한 차례 기선을 잡자 싶었다.
"소은아, 울지 말고 냉장고에서 요구르트 꺼내먹고 빵도 먹어.
어딨는지 알지?"
소미는 계속 악을 쓰고 울면서 발발 동동 구르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런데 소은이가
의외로 마음을 확
바꿔 체념한 듯했다. 엉엉 서럽게 울면서 쥐어짜는 목소리로 하는 말.
"네에, 엄마. 그, 그럼 흐흑, 그럼 다녀오세요. 그리고 허헉,
미사, 미사 끝나면 빠, 빨리
오세요오?"
오히려 떼를 쓰면서 우는 게 나았다. 애가 갑자기 그러는데 순간 정말 마음이
아팠다.
"응. 알았어. 이제 소미, 소은이가 외출하는데 준비를 제때 하지 않으면 이렇게 두고 갈
거야 알았지? 엄마 나가면 문
잠가!"
그리고는 매몰차게 문을 쾅! 그리고 다다닥 계단을 내려갔다. 두 아이가 고성으로 지르는
울음소리가 1층에서도
들렸다.
"괜찮을까? 너무 울다가 어떻게 되는 거 아냐?"
"한 번 이래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성당이 먼 것도 아니고.
길어야 두 시간도 안 걸리는 데 뭘.
가스불도 다 잠갔고 위험한 물건도 없으니까 괜찮아. 요것들 한번 매운맛을 봐야 정신
차리지.
적어도 외출할 때만이라도 이번 일 생각하면 잘 하겠지."
"하긴, 우리가 너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주긴 했어. 이제 스스로
하게 해야지."
"난 아냐. 사실 자기가 좀 그랬지. 아마도 애들이 나보다 아빠한테 더 배신감을 느낄 걸
아마."
"……"
"너무 걱정 마. 애들이 생각보다 포기가 빨라. 아마 조금 있으면 히히덕대면서 냉장고에 있는
거 꺼내먹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난리를 치며 놀 걸."
한 시간 조금 넘어서 미사가 끝났다. 나는 밖으로 나와 차를 한 잔 마시고 집으로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소미가 말짱한 목소리로 받았다. 나도 언제 그랬느냔 듯이 최대한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로 엄마 아빠 미사 끝났으니 곧
가마 했다.
소미와 소은이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떠먹는 요구르트를 먹고 있었다. 소은이는 반갑게
잘 다녀오셨냐고
깍듯하게 인사하고 소미는 약간 눈을 흘겼다. 아직도 화가 나있다는 표시였
는데 남편이 "소미, 아직도 화났어?" 그러면서 간지럼을 태우니
그냥 까르르 넘어가면서 풀렸다.
"오래 울었어?"
(소미)"네, 조금 전에도 울었어요."
(소은)"아니요. 금방
끄쳤어요. 빵도 먹구요, 요플레도 먹구요, <동요세상> 다 봤어요. 저번에
선재네 집에서 못 본 거요."
그럼 그렇지, 내
말이 많긴 맞았다. 혼이 나긴 난 모양이지만 말짱한 얼굴이었다.
이제 오늘 미사준비 하는 걸 봐야겠다. 오늘은 미사가 11시에
있으니 시간도 넉넉하다. 머리에
쥐가 나기 전에 한번씩 나를 위해서라도 충격요법을 써야 살겠는데, 이것도 자주 하면 효과가
없으니
조심할 일이다. 애들 따라서 나도 목소리만 커지고 꾸중이 잦아지는 요즘이라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애들 땜에 내 못된 성질이 더 심해지는
건지, 내 성질 때문에 멀쩡한 딸들
성질 '베리는' 건지 헷갈리는 무혈전쟁이 날마다 이어진다.
아, 그런데 유치원 입학식이
이제 코앞이다. 달력 속의 3월 5일이 아주 크게크게 확대되어
보인다. 이제 전열을 가다듬고 진정하면서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들과 사이좋게
잘 지낼
궁리를 해야겠다.
*사진 설명: "엄마, 엄마! 이리 와 보세요"하는 소리가 나서 방에 가보니, 두
아이는
이런 모습으로 침대 위에 서 있었다.

'사랑충전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착한 나무에 피는 꽃 (0) | 2003.04.23 |
---|---|
병원을 찾기까지 (0) | 2003.03.20 |
화려한(?) 전입신고 (0) | 2003.02.04 |
그의 가방과 그녀의 가방 (0) | 2003.01.10 |
나는 지난 밤 그녀가 한 일을 알고 있다 (0) | 2002.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