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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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나무에 피는 꽃

M.미카엘라 2003. 4. 23. 11:02
아이들이 평소보다 유치원에서 일찍 왔다. 비가 흩뿌리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마중 나갈까
했는데 문을 열어보니 의외로 밝은 표정이다. 그런데 소미 손에는 소은이 가방이 들려있었다.
"아니, 소은이 가방을 왜 소미가 들고 와?"
"있잖아요. 소은이가 계단 올라오려고 하는데 가방이 무거워서 힘들대잖아요."
"그래서 소미가 들고 온 거야?"
고개를 끄덕거린다.

나는 기특하고 이뻐서 오버액션에 호들갑을 떨며 후한 칭찬을 해줬다. 정말 내 마음 그대로였다.
요즘 소미가 하도 소은이를 미워하고 구박을 해서 내가 아주 감동을 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의외로 소은이는 웬만하게 억울하지 않고는 소미에게 대들지는 않고 울어버리는 편인데(집안
기강 차원에서 난 대드는 일에 대해 야단을 좀 한다), 이렇다보니 소미의 일방적인 구박이
한두 번 눈에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집에서는 그렇게 싸우고 울고 으르렁거리면서도 일단 집을 나서면 행동이 좀 달라지긴 하는
모양이다. 저번에는 한번 유치원 버스에서 졸다가 내린 소은이를 소미가 업고 오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몸무게가 동생보다 겨우 1kg 밖에 많지 않는 것이 휘청거리며 겨우 걷는 모습이라니…….

그래서 오늘 얼마 전부터 생각 속에서만 가지고 있던 일을 바로 실천했다. 아이들 간식을
차려주고 나서 잡지 과월호를 가지고 '착한 나무에 피는 꽃'을 만들었다. 요즘 선생님들도
그렇게 하시는지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 선생님은 착한 일을 하거나 숙제를 잘해오는
아이들에게 별 모양의 색종이를 주셨다. 그걸 받으면 집에 가지고 와서 별을 모으는 16절지
종이판에 붙였다. 하나, 둘 모아지는 재미가 컸고 마음이 뿌듯해 올 즈음, 다 모은 별판을
가져가면 선생님이 학용품을 상으로 주셨다.

나는 약 2주전에 그 생각을 했다. 더 잘하려고 했고 더 착한 일을 하려고 했던 그 때를 생각하며
좀 의도적이긴 하지만 나도 벤치마킹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큼직한 종이에 나무
한 그루를 만들고 거기에 꽃을 35개 붙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착한 일을 하면
꽃을 하나씩 주어 붙이게 한다. 꽃이 다 피면 큰 서점에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주면서 어떤
책이든 소미와 소은이가 고르는 책을 토달지 않고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일곱 살이 된 소미는 웬만한 꾸중에는 노여워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좋은 말로 나긋나긋하게
하는 말은 아예 귀담아듣지도 않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고 말도 안 되는 고집만
부린다. 나는 이런 소미와 싸우면서 슬슬 지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눈에 보이는 칭찬과 상을
통해 좀 '교화'를 해볼까 하는 꼼수가 있다.

소은이는 자기 것을 받아들고 그런가보다 무덤덤한데 소미는 생각대로 아주 좋아했다. 눈에
보이는, 큰 칭찬을 아주 좋아하는 소미를 잘 알기 때문에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소미에게 동생의 가방을 들어준 일을 다시 한번 칭찬하면서 꽃을 하나 주었다. 그리고 두
아이를 불러놓고 꽃을 주는 기준을 몇 가지 말했다.

1. 꽃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은 엄마다. "엄마 나 착한 일 했으니까 꽃 주세요"하면
안 된다. 착한 일인지 아닌지는 엄마가 알아서 판단한다.
2.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꽃을 기대하면 안 된다. 어른들께 인사하기, 유치원
다녀와서 손 씻기, 자기 전에 이 닦기, 장난감 치우기 등등.
3. 한번 꽃 받은 일을 세 번 네 번 한다고 해서 그때마다 모두 꽃을 줄 수는 없다.

내가 말을 마치자 소미가 기막힌 제안을 해왔다.
"엄마, 그런데 우리가 너∼어무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해요? …… 아! 그럼 붙였던 꽃을
도로 떼면 되겠다. 어때요? 좋은 생각이죠? 엄마"
에구구, 자기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걸 알긴 아나 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이랬다.
"아니야. 엄만 그걸 도로 떼는 일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해. 풀로 붙인 걸 다시
말끔히 떼는 일이 어렵기도 하고, 잘한 일은 잘한 것으로 칭찬 받고 잘못한 일은 꾸중을 듣거나
혼이 나야지 뭐! 잘한 일하고 못한 일하고 섞는 건 반대야. 꽃이 피었다, 떨어졌다, 다시 피었다
너무 이상하지 않겠니?"
"네, 알겠어요. 그럼 우리가 아주 열 번씩 많이 잘못하면 그때 꽃을 떼세요."
"하루에 그렇게 많이 잘못하는 일이 생길까 뭐? 왜에? 그렇게 말 안 듣게?"
"히∼ 아니요."
배시시 웃는다.

꽃을 남용할 생각은 없지만 첫날이니 만큼 소은이에게도 하나 주고 싶은데 마침 '꺼리'가
생겼다. 늘 아이들이 요구르트나 우유 같은 걸 먹으면 용기나 컵을 내 컴퓨터 책상에 수북히
쌓아놓곤 해서 내가 제발 좀 쓰레기통에 넣거나 부엌에 갖다놓으라고 잔소리를 하는데 좀체
고치질 못한다(남편도 그러긴 한다). 그런데 오늘 소미는 떠먹는 요구르트를 두 개나 먹고
그대로 내 책상에 두었는데, 소은이가 다 먹고 날 때마다 부엌에 가서 버리는 거였다. 내가
손뼉을 치며 "소은이 꽃 당첨!"하니까 왜 그러나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서 나란히 꽃이 한 개씩이다. 그런데 거기서 또 소미의 궁금증이 생겼다.
"엄마, 근데요. 이 나무 잘 길러서 제가 먼저 꽃을 다 피우면 어떡해요? 그러면 책을 못 사는
소은이가 약오를 거 아니예요. 그러니까 두 사람 다 사주세요."
"소미 마음이 착한 마음이긴 하지만 그건 안 돼지. 약속은 약속이잖아. 그러면 이 나무를
기르는 의미가 없지. 먼저 꽃을 다 피운 사람이, 꽃을 못 피운 사람을 좀 기다려서 서점에
같이 가겠다고 하면 그건 좋아."
"알았어요."

참 건설적으로, 좋은 '제도'를 정착시키려고 모든 협상도 마무리했는데 왠지 좀 찜찜한 부분이
있다. 아무래도 잘못한 일에 대한 제도의 마련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말 무진장 안 듣고
뺀질거리며, 소은이 구박하고 때리는 일이 줄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미운 일곱 살'이니 그냥
둬? 했다가도 이건 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인 듯 싶다. 소리쳐서 야단하는 회수도 줄고 매를
드는 일도 더 적어질 것이고 조금 더 이성적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이건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겠다(여러분들의 고견을 듣겠습니다).

그런데 '착한 나무에 피는 꽃'을 적당한 곳에 붙여놓고 보니, 이거 누가 보면 옛날 선생님을
따라했다고 생각하기보다 동네 슈퍼나 치킨집, 피자집을 벤치마킹했다고 생각하겠다. 열 개
모으면 치킨 한 마리가 공짜! 열 개 모으면 피자 한 판과 콜라가 공짜! 많이 애용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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