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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 적

M.미카엘라 2003. 5. 21. 00:49
소은이가 놀이터에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호들갑스럽게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 급해요. 급해!"
"왜?"
대답은 하지 않고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땀이 찬 바지와 팬티가 수월하게 벗겨지지
않는지 무던히 애를 쓰다가 변기에 걸터앉은 후 평온(?)을 찾았다.

"소은이 쉬가 무진장 급했구나. 계단도 쉬지 않고 올라왔겠네?"
"쌀 거 같아서 다리 아파도 참고 올라왔어요. 근데요 엄마 이제 대변, 소변 그렇게 말하세요."
"왜에? 쉬라고 하면 안돼?"
"안돼요."
"그래? 오줌도?"
"언니가 이제부터 대변, 소변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요."
"에이! 괜찮아. 소미, 소은이는 아직 어린인데 뭐. 괜찮아."
"안돼요. 엄마. 이제 엄마도 대변, 소변이라고 하세요. 어른이 쉬가 뭐예요."
하이, 참! 소은이 요것이 야무지게 나한테 훈계까지 한다. 그런데도 나는 웃겨서 돌아서서
흐흐, 클클 웃었다. 대변이라고? 소변이라고?

참으로 오랜만에 2년 전쯤 칼럼을 뒤져서 몇 개 읽었다. 다 잊었다고 생각한 그 때 일들이
새록새록 손에 잡힐 듯 그려진 상황이 내가 써놓고도 흥미롭게 읽혔다. 잘 써서가 아니라
일기라는 기록물의 의미를 제대로 느낀 바가 컸다. 쓰지 않았다면 다 잊혀져서 흔적도 없을
시간을 잡아둔 셈 아닌가?

그 중에서 제53호 <다시 가르치는 유아어>가 무릎을 치게 했다. 미사 중에 "똥 마려워요.
오줌 마려워요"하며 나와 제 아빠를 당황하게 하고 민망하게 만든 일이 있었는데 요즘 상황과
견주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때 나는 차라리 아이답게 애교 있게 "엄마, 응가
마려워요, 쉬 마려워요"라고 말하라고 가르쳤었다.

오늘도 소미와 소은이는 '똘똘이가게' 놀이를 하고 있었다. 똘똘이가게 주인인 소미가 이것
저것 열심히 팔고 손님인 소은이는 열심히 사 나르다가, '손님'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똘똘이 아줌마, 제가요, 대변, 소변 둘 다 누고 오께요. 금방 오께요. 그 동안 많이 팔고
계세요."
이제 소은이는 완전히 대변, 소변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었다(으익! 표현도 이상해라! 대변,
소변이 입에 붙어?). 다리를 건들대면서 앉아 노래를 부르는 소은이에게 나는 갑자기 테스트
삼아 묻고 싶었다.

"근데 소은아, 대변이 뭐야?"
"아이 참, 엄만… 쉬잖아요."
그러면 그렇지! 알고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역시 수준(?)이 있었다.
"그럼 소변은?"
"응가잖아요."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듣고 있던 소미가 왁자하게 난리였다.
"이그, 소은아! 너는 내가 그렇게 갈켜줬냐? 대변이 응가고 소변이 쉬지. 어휴 차암!"

나는 소리 내서 낄낄 한참을 웃었고 소은이의 잘난 척은 일단 거기서 멈췄다. 부엌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는데도 이상하게 한참 조용했다. 노래도 안 부르고 떠들지도 않았다. 애 민망하게
너무 웃었나 싶었는데 소미가 소리쳤다.
"엄마, 난 소은이가 저래서 화장실 가는 게 싫은 거예요. 좀 보세요."

소은이는 어린이용 변기에 앉아서 거의 누운 듯한 자세로 변기 뚜껑으로 기대어 있었다.
눈은 게슴츠레하고 자기가 놀이를 하다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얼굴이었다.
"저거 보세요. 아주 한번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안 해요."
"엄마, 난 변기 앉아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여기서 밥도 먹고 과자도 먹고 그럴 거예요."

하는 말마다 어이가 없다. 다했으면 냉큼 나오라고 했더니만 대답은 없고 그 자세에서 잘
보이는 거실 텔레비전에 심각하게 눈길을 주었다. 돌아보니 TTL광고였다. 시리즈로 나오는
이 회사의 특이한 광고에 두 아이는 늘 눈을 떼지 않았다.

예쁜 소녀가 침대 위에서 무릎을 세우고 앉아 방안 가득한 하얀 양떼들을 보면서 하는 말.
"넌 양 몇 마리 키워?"
그때 잠자코 있던 소은이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받아서 하는 대답.
"한 마리. 양재형 양!"

변기에 혼자 올라가지도 못해서 '쉬'소리 할 때마다 내가 더 화들짝 몸을 재게 놀렸던 때 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소은이가 변기에 앉아 나를 두고 개그까지 한다. 조금 더 커서 사춘기가
되면 남들 앞에선 화장실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일도 부끄러워 할 때가 있을 것인데,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은 이 글이나 읽어야 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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