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뼘 성장드라마
병원을 찾기까지 본문
요즘은 밥 차리기가 영 눈치 보인다. 이거 이 정도면 밥상 꼴이 괜찮은 건가? 밥상이 좀 성의가 있어 보이나?
입맛에 맞는 게 있을까? 너무 기름기가 많지 않을까? 맛있는 냄새는 좀 풍기나? 밥상을 훑어보면서 재빨리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면서 가볍게
긴장한다.
소미 때문이다. 벌써 두어 달이 다 되간다. 설 무렵 일 주일 정도 두고, 두세 차례 심하게 토한 이후 입맛이 싹 달라져서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인다. 눈에 띄게 식욕이 뚝 떨어졌고 가리지 않고 잘 먹던 식습관이 완전히 뒤집어져서 잘 먹던 것, 좋아하던 것들까지 변덕을 부리며 거부했다. 특히 비위가 아주 약해져서 자주 구역질을 했다. 아이에게 할 표현으로 적당하지 않지만, 더도 덜도 아니게 꼭 입덧하는 임산부 같이 식욕에 변화가 심하고 비위가 자주 틀어졌다. 소미는 그 구토사건 이전에는 놀랄 정도로 잘 먹었다. 2박 3일간 친구와 오랜만에 아이들 데리고 쉴 겸 놀 겸 갔던 곳에서 친구는 밥은 밥대로 잘 먹고 과일, 빵, 우유, 과자 등 먹을 것을 입에 달고 사는 소미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때 먹는 양은 다이어트 '쫌' 한다는 아가씨들보다 더 먹는 것 같았다. 너무 마른 편이라서 살이 좀 쪘으면 하고 늘 바랬던 나로서는, 평소 골고루는 먹지만 많이 먹는 편이 아닌 소미가 지난 겨울 내내 그냥 신통방통하고 기특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생선회, 생굴, 온갖 나물무침, 야채샐러드 같이 보통 아이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도 잘 먹고, 생전 처음 보는 낯설고 거친 음식도 망설임 없이 "엄마, 이거 뭐예요? 저 한 번 먹어볼래요"하는 말로 늘 나를 기쁘게 했던 딸인데, 나로서는 걱정과 스트레스가 꽤 컸다. "엄마 그만 먹을래요." 처음 한 며칠은 밥이 먹기 싫거나 뭔가 욕구불만을 구토 연기로 표현하는가 싶어서 얄미운 생각에 야단을 하기도 했다. 엄마가 반찬을 못해서 미안하다, 맛없는 반찬 때문에 먹기 싫은 거구나(정말 그땐 그런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면서 아이 마음에 못을 박기도 했다. 그랬더니 눈물을 글썽거리며 "엄마, 이건 내가 그러는 게 아니예요. 내 마음이 그러는 게 아니예요"하면서 울었는데, 그때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 그 날부터 눈치 주거나 언짢은 기색은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눈칫밥과 엄격한 표정관리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면서도 애를 데리고 병원 가는 걸 오늘까지 주저주저 했던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일단 내가 스트레스를 준 책임으로 아이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니 더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구토 증세는 보통, 아이들이 하기 싫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 혹은 그 일에 대한 거부의사를 드러내는 일시적인 증상이라는 말도 많이 듣고 내가 본 적도 있어서, 소미도 그런 것 아닐까 했던 것이다. 남편도 좀 더 두고 보자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소미가 아주 안 먹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웬만큼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 보충은 하는 편이었다. 때가 아니라도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먹게 내버려두니까 그럭저럭 한 끼는 아주 잘 먹고, 한 끼는 좀 부실하게, 그리고 아침은 아예 못 먹었다. 그리고 떠먹는 요구르트는 아주 좋아했다. 아주 안 먹지 않고 놀기도 잘 노니 호들갑을 떨며 병원에 가자니 그도 좀 쑥스러웠다. 그러나 일 주일 전, 나는 좀 이름난 소아 한방병원을 예약했다. 내가 꽤 오래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크게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집과는 또 환경이 다른 새 유치원에서는 점심을 좀 잘 먹으려니 했는데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소미가 식사를 잘 못한다고 "어디가 많이 아픈 건가요?" 한다. 선생님이 "소미, 감기 들었니? 그래서 입맛이 없니? 하고 물었더니 고개만 끄덕이더라는 것이다. 별달리 아는 병원도 없었는데 이 한방병원은 무엇보다 우리 집에서 꽤 가까운 곳에 있어서 맘에 들었다. 이게 심리적인 문제인지, 신체적인 문제인지 좀체 판단이 서지 않아 인터넷으로 상담을 하니, 특별히 심리적 변화를 가져올 환경에 놓였던 게 아니고 크게 체한 후에 분명 달라진 것이라면, 그 체증이 오래 가시지 않으면서 소화기능이 아주 떨어진 것일 수도 있으니 내원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소견이 올라왔다. 그래서 금요일 오후에 병원을 갈 예정이다. 애들이 아프면 마음 한 구석이 덜컥하며 "내가 뭘 잘못했나?"하는 게 엄마들 심정인 것 사실인가보다. 내가 이런 걸 이제야 실감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은 '애들이 뭐 크다보면 그럴 수 있지. 엄마가 뭐 완벽한 인간이냐? 아니면 죄인이냐?' 하면서 꽤 의연한(?) 마음으로 애들을 돌봐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자책이 앞선다. 아이가 아픈 것이 '내가 스트레스 줘서 그런 탓인가 보다' 해놓고도 이렇게 질질 두어 달 가까이를 끌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몸이 안 좋은 것을 빨리 알아채야 하는데 그걸 못했으니 정말 내 탓이 아닌가? 오늘 놀이터에서 돌아와 흙강아지가 된 소미를 샤워시키는데 정말 몸이 너무 '없다.' 그래도 유치원의 해님반 중에서 자기보다 작은 애가 네 명이나 더 있다는 걸 자랑한다. 그것도 자랑이라고. 하긴 소은이는 자기보다 작은 애가 세 명이나 더 있다고 자랑하는 판국이니 말해 뭐하랴. 이 시점에서 아이들 성장기록의 의미로 두 줄만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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